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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당신이 스포츠물에 열광해 본 적 있다면 - 연극 '디사이딩 세트' [공연]

2026 창작산실 선정작 <디사이딩 세트>

by 김승주 에디터
2026.03.24 10:50

 

 

지난 22일, 연극 <디사이딩 세트>가 성황리에 막을 내렸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공연예술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되어 아르코 예술극장 소극장에서 약 열흘간 상연되었다. <디사이딩 세트>는 유영여고 배구부에 전해져 내려오는 괴담을 시작으로, 배구부원 개개인이 가진 고민을 다룬다.

    

 

유영여고 배구부에는 괴담 하나가 전해져 내려온다. 허무맹랑한 이야기지만, 각자 말 못 할 고민을 안고 있는 선수들을 남몰래 네트 앞에 서 본다.

 

그러던 어느 날, 체육관에 전시된 ‘자랑스러운 졸업생’의 유니폼이 사라진다. 이 불길한 사건을 시작으로, 유영여고 배구부는 점점 어수선해진다.

 

설상가상으로 팀의 에이스 여준이 다가오는 드래프트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선언하는데…과연 유영여고 배구부는 다가오는 전국 대회를 무사히 마칠 수 있을까?

 

연극 <디사이딩 세트> 시놉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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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안의 세계, 코트 밖의 세계


 

프로 스포츠의 세계는 냉혹하다. 경기장 안에 있을 수 있는 몸과 그렇지 못한 몸을 끊임없이 규정하고, 그 안에 있을 수 없는 몸은 끊임없이 탈락한다. 그런 상황에서 프로 선수들은 자신의 몸에 대해 생각할 수밖에 없다. 나의 몸은 배구에 적합한가? 나는 이 선 안에 있을 수 있는가? 오늘은 살아남았지만, 언제까지 있을 수 있을까? 코트는 과연 누가 살아남도록 결정을 내릴 것인가?

 

작중 네트 안은 스포츠의 관점에서, 원활히 기능하는 신체가 속할 수 있는 공간으로 표현된다. 그 안에 속하고자 하는 ‘지윤’은 몸이 무거워지지 않도록 지긋지긋한 다이어트를 계속하고, 리베로 ‘보라’는 크지 않은 키로 코트 안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찾는다. 구력이 짧은 ‘혜랑’ 역시, 부족한 서브를 매일 연습한다. 아이들이 매일 노력하는 이유는 단순하다. 배구가 좋기 때문이다. 그것이 자기 인생에서 중요하고 소중하며, 더 잘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구를 더 잘하고 싶은 아이들은 팀의 에이스 ‘여준’을, 그의 ‘배구하기 좋은 몸’을 부러워한다.

 

확실히 여준은 배구를 하기에 최적화된 몸을 갖고 있다. 유영여고 유니폼을 입고, 국가대표 유니폼을 입고 코트 안에 있을 때 그는 가장 빛난다. 여준은 절대로 코트 밖으로 쫓겨나지 않을 것 같다. 그러나 배구는 로테이션 스포츠이다. 아무리 잘한다고 해도 영원히 코트 안에 있을 수는 없다. 여준에게도 코트 밖으로 밀려나는 순간이 있다. 그는 자신이 서 있는 공간이 ‘여자’ 배구 경기장임을 문득 깨달을 때마다, 자신의 몸이 코트와 불화함을 느낀다. 그럴 때면 여준은 참을 수 없어진다. 배구를 사랑하는 순간에 몰입할 때는 자신의 몸과 화해할 수 있을 것 같다가도, 여성성과 불화하는 자신을 볼 때마다 코트 안에 서 있으면 안 될 것 같다는 괴로움에 휩싸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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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트 밖으로 쫓겨나는 것은 ‘부적합한 신체를 가진 사람’만이 아니다. 유영여고 졸업생 ‘은하’는과거 동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코트 밖으로 밀려나 괴롭힘을 당했다. 오랜 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그 순간은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과거 자신을 괴롭혔던 ‘자랑스러운 동문’의 유니폼이 배구부의 벽에 걸려 있는 것을, 은하는 여전히 견디지 못한다.

 

이처럼 <디사이딩 세트>에서는 수많은 서사가 교차한다. 각자가 각자의 고민과 불안을 안고 있고, 그것은 각자의 이야기가 된다. 그러나 이 각각의 인물은 자신의 이야기에만 매몰되지 않는다. 그 지점에서 이 연극의 매력이 드러난다. 각 인물이 지닌 고민은 ‘코트 안’과 ‘코트 밖’이라는 개념 아래 깔끔하게 정리된다.

 

 

 

스포츠 정신으로, 할 수 있는 걸 하면 돼


 

이 작품이 제시하는 나아갈 방향은 지극히 스포츠적이다. 스포츠의 본질은 화려한 결과 이전에 존재한다. 서브 하나, 연결 하나, 그리고 공격 하나. 하나의 팀으로서 자신의 위치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는 것, 설령 그것이 지는 싸움일지라도 끝까지 부딪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스포츠 정신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정신은 언젠가 코트 바깥으로 밀려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에 지레 도망치고 싶지는 않다는 여준의 말과 연결된다. 여준은 배구를 그만두는 대신, 팀원에게 용기를 내어 커밍아웃하기를 택한다. 각자의 서사, 특히 개개인이 가진 퀴어성의 서사는 한 코트 위에서 어우러지며 유영여고 배구부를 비로소 하나의 팀으로 완성한다. 이들의 이야기는 단순히 개인의 기록으로 끝나지 않고, 결국 운명을 가르는 ‘디사이딩 세트’의 승리로 이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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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이 남기는 깊은 여운은 이 승리가 결코 최종적인 결론이 아니라는 점에 있다. 극은 4세트에서 멈춘다. 5세트의 결과가 어떠했는지, 이들이 결국 코트 밖으로 밀려났는지 혹은 살아남았는지는 알 수 없다. 그 불투명함은 곧 ‘네트 건너편의 미래’이자, 작품을 감상한 관객들이 극장을 나선 뒤 만들어갈 살아갈 현실에 달려 있다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러므로 당신이 만약 스포츠물에 열광해 본 적 있다면, 지금 당장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는’ 스포츠 정신에 감동받은 적 있다면, 유영여고 배구부원들의 이야기를 기억했으면 좋겠다. 스포츠계에 실재하는 퀴어, 여성,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자신이 살아가는 세계와 불화하면서도 여전히 살아가기를 택한 이 아이들이 그 선택을 후회하지 않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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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합니다. 폭넓은 문화 향유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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