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집은 단순한 공간이 아니라 기억이 머무는 장소가 된다.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을 보며 가장 먼저 떠올랐던 생각도 바로 그것이었다. 이 작품은 하나의 집을 중심으로 여러 세대의 여성들이 남겨 놓은 삶의 흔적을 따라간다. 이야기는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천천히 겹쳐지는데, 처음에는 서로 다른 인물의 서사처럼 보이던 장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하나의 공간 안에서 이어져 온 이야기라는 사실이 드러난다.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

나는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 소개글이나 예고편을 미리 찾아보는 편이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의 예상 역시 관람의 재미가 될 수는 있다. 하지만 나는 가능하면 작품을 보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의미를 발견하고 싶다. 이미 알고 있는 정보를 기준으로 장면들을 끼워 맞추기보다는, 온전히 작품이 흘러가는 방향을 따라가며 스스로 이해해 보고 싶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번 공연에 대해 내가 알고 있던 정보는 딱 하나였다. 제목, '내가 살던 그 집엔'.
제목을 처음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은 ‘집’이라는 단어였다. 집은 참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힘든 하루를 보내고 돌아오는 공간이기도 하고, 사회 속에서 지친 자신을 잠시 내려놓을 수 있는 보금자리이기도 하다. 그래서 처음에는 막연하게 ‘집’이라는 공간의 따뜻함이나 소중함을 이야기하는 작품일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공연을 끝까지 보고 난 뒤에는 그 생각이 절반쯤만 맞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어떤 사람에게 집은 자신을 둘러싼 환경으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는 공간이 되지만, 또 어떤 사람에게 집은 벗어나고 싶어도 쉽게 벗어날 수 없는 장소가 되기도 한다. 같은 공간이 누군가에게는 안식처가 되고, 누군가에게는 갇힌 세계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 작품이 말하려는 ‘집’의 의미는 단순한 공간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중요한 것은 그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집이 어떤 의미가 되는지는 결국 그곳에 머무는 사람들의 삶과 관계 속에서 만들어진다.
작품 소개

제공 극단 적 / ©sol__Kim
연극 '내가 살던 그 집엔'은 2025년 창작산실 ‘올해의 신작’에 선정된 작품으로,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여성 중심의 시각에서 재해석하여1970년대 후반부터 현재까지의 시간을 배경으로 사회의 가장자리에서 살아가던 여성들의 삶을 따라간다. 급격한 산업화 속에서 자신의 자리를 찾기 어려웠던 인물들이 서로를 만나 잠시 숨을 고르고,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작품이다.
이야기의 중심에는 택시 기사로 살아가던 ‘엄마’와 화교 여성 ‘마마’가 있다. 서로 전혀 다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이지만, 어느 순간의 우연한 만남을 계기로 서로에게 작은 힘이 되어 준다. 그러나 그들의 삶은 결국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고, 그 선택과 사건의 흔적은 시간이 흐른 뒤 딸인 ‘나’에게까지 이어진다.
성인이 된 ‘나’는 과거 두 사람이 살았던 집을 찾아가게 되고, 그곳에서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 ‘꾸엔’을 만나 또 다른 이야기와 사건의 진실을 듣게 된다.

제공 극단 적 / ©sol__Kim
이 작품의 서사는 하나의 사건을 서로 다른 시선에서 바라보는 세 개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1부는 딸인 ‘나’에게 ‘엄마’가 들려주는 ‘마마’의 이야기로 시작된다. 엄마의 기억 속에서 재구성된 이 이야기는 비교적 밝고 활기찬 분위기로 그려지는데, 인물들이 리듬에 맞춰 춤을 추고 노래하는 장면들이 등장하며 마치 과거의 영웅담처럼 전개된다. 이때 ‘나’는 단순히 이야기를 듣는 존재가 아니라 무대 위에서 ‘마마’의 역할을 수행하며 기억 속 장면을 함께 재현한다.
하지만 2부에 들어서면서 분위기는 조금씩 달라진다. ‘나’는 이야기 속에서 한 발 물러나고, 무대는 보다 현실적인 시선으로 ‘엄마’와 ‘마마’의 관계를 바라보기 시작한다. 두 사람의 만남과 이별, 그리고 그 사이에서 벌어졌던 사건들의 이면이 조금씩 드러나면서 이전에 보았던 장면들이 다른 의미로 보이기 시작한다.
마지막 3부에서는 성인이 된 ‘나’가 실제로 두 사람이 살았던 집을 찾아가게 된다. 그곳에서 ‘나’는 베트남 출신 이주 여성 ‘꾸엔’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고, 이를 통해 과거의 사건 이후에도 비슷한 삶을 살아가는 또 다른 여성들의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이렇게 서로 다른 시점에서 이어지는 이야기들은 하나의 사건의 진실을 단정하기보다는, 각자의 기억과 삶 속에서 만들어진 여러 층위의 이야기를 보여준다.
누구의 이야기가 진실이 되는가

제공 극단 적 / ©sol__Kim
연극 속 인물들은 자신의 삶을 선명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마치 오래된 기억을 조심스럽게 더듬듯 이야기를 꺼낸다. 덕분에 무대는 현실처럼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꿈이나 회상처럼 흐릿하게 변하고, 관객은 하나의 사건을 명확히 따라가기보다 여러 인물이 남긴 기억의 조각들을 천천히 이어 붙이게 된다.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 김추자의 '거짓말이야' 연극 도입부 중
특히 도입부에서 울려 퍼지는 김추자의 ‘거짓말이야’는 단순히 시대를 재현하는 소품을 넘어선다. 경쾌한 고고댄스 뒤에 숨은 ‘거짓말’이라는 가사는, 극이 내내 추적하게 될 진실의 불확실성을 감각적으로 예고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끊임없이 '진실'을 추적하게 만든다.
극 중 1막과 2막은 동일한 사건을 다루면서도 시점과 분위기, 전개 방식이 조금씩 다르게 나타나 혼란을 준다. 처음에는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 구분하려 애쓰게 되지만, 공연이 끝날 즈음에는 자연스럽게 다른 결론에 이르게 된다. 어쩌면 이 작품에서 중요한 것은 객관적인 진실을 가려내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사실이다.

제공 극단 적 / ©sol__Kim
그 시대, 그 시절을 살아온 여성들의 경험은 서로 다르지만 묘하게 닮아있는데 화교 출신으로 어디에도 속하지 못한 채 폭력을 견뎌야 했던 '마마', 가족 부양을 위해 택시 운전대를 잡았던 '엄마', 그리고 차별 속에서도 자신의 자리를 지키려 애쓰는 이주 여성 '꾸엔'까지. 사회 속에서 특정한 역할을 요구받거나 자신을 설명해야 하는 순간들은 세대를 관통하며 이어진다.
그리고 여기서 인물들이 택한 '도망'은 단순히 현실로부터의 회피가 아니라, 각자의 존엄을 찾기 위한 가장 처절한 여정으로 그려진다.
처음부터 끝까지 배경이 되는 ‘집’ 역시 단순한 공간에 머물지 않는다. 누군가에게는 억압의 공간이고 누군가에게는 지키고 싶은 장소이지만, 동시에 떠나고 싶었던 모든 기억을 함께 품고 있는 곳이다. 결국 이 작품에서 ‘집’은 한 사람의 공간이 아니라, 여러 세대의 삶과 기억이 겹쳐져 만들어진 이야기의 배경처럼 다가온다.
진실보다 더 선명한 것은,

제공 극단 적 / ©sol__Kim
연극은 우리에게 정답을 주지 않는다. 대신 확실한 진실보다 더 또렷한 존재의 증명을 목격하게 한다. 무엇이 사실이고 거짓인지를 따지는 이성적 판단이 멈추는 곳에서, 비로소 그 시대를 견뎌온 여성들의 삶이 온전한 형체로 다가온다.
작품은 관객이 진실을 찾도록 유도하면서도, 역설적으로 그 질문 자체가 얼마나 무의미한지를 보여준다. 무엇이 사실인지 따지는 것보다 더 또렷하게 남는 것은, 그 시간을 통과해 온 인물들의 삶과 목소리 그 자체일 것이다.
글을 마무리하며, 마마와 엄마가 함께 피아노를 치며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힘이 될 구석이 하나도 없던 시절 속에서 두 사람이 서로에게 순수한 친구가 되어 주는 모습이 마음이 아플 정도로 인상 깊었다. 같은 처지에서 서로를 이해하고 기대는 모습은 어떤 위로나 말보다 더 크게 다가왔다. 나와 내 이야기를 공감해 줄 수 있는 친구가 있다는 것, 그리고 국적과 배경을 넘어 서로를 이해하고 이어지는 우정. 이것이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또 하나의 중요한 주제인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