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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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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당 글에는

웹툰 <합법해적 파르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네이버 금요 웹툰 <합법해적 파르페>가 약 2년간의 휴재를 마치고 돌아왔다. 2019년 연재를 시작하였으며, 2024년 6월까지 총 233화가 연재되었다. 작가 뼈피살은 지난 2월 26일부터 매주 금요일, 다시 ‘비범한 공주님 파르페의 신묘한 모험 판타지’ 이야기를 전개해 나갈 예정이다.

 

작품의 제목을 듣는 사람들은 가장 먼저 두 가지를 묻는다. ‘합법해적이 뭐야?’, 그리고 ‘파르페가 사람 이름이야?’ 이 작품을 과거에 접해본 적 있는 사람들은, ‘다양한 여성상을 다루는’, ‘동화적인 분위기’, ‘여성 주인공들의 서사’와 같은 키워드로 <합법해적 파르페>를 기억할지도 모른다. 오랜 시간 연재되어 온 작품인 만큼, 이 작품을 다양한 수식어로 설명할 수 있겠지만 오늘 이 글에서는 작품이 논하고 있는 ‘저항’의 메시지를 다루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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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작품을 처음 접해 본 사람들을 위해 간단히 소개해 보겠다. <합법해적 파르페>의 세계에는, 세계의 균형과 질서를 유지하는 ‘중앙관리국’이 존재한다. 그리고 우리의 주인공 파르페가 타고 다니는 ‘합법 해적선 산딸기 호’는, 중앙으로부터의 임무를 수행하는 사략선이다.

 

그러나 주인공 파르페는 사실, ‘산딸기 왕국’의 숨겨진 공주이자 적법한 왕위 계승자이다. 배다른 동생과의 왕위를 건 다툼 끝에 상처를 입은 파르페는 해군 ‘반’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구하고, 선원들과의 싸움에 휘말려 의도치 않게 합법해적선 산딸기 호의 선원이 된다. 그곳에서 그는 산딸기 호의 선장 ‘벨’, 그리고 그곳에서 중앙관리국의 임무를 수행하는 직원 ‘도결문’을 만나고, 세계의 질서를 바로잡고 평화를 이루기 위해서 사라져야만 하는 어떠한 존재를 찾는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러나, 그들의 모험 중에, 사실 파르페 자신이 산딸기 호가 찾아 헤매던 존재였다는 것이 밝혀진다. 세계 평화를 지키기 위해서 파르페는 죽음을 맞아야만 한다. 온 세상이 그가 죽기를 바란다. “죽어라, 파르페!” 파르페와 친구들은 이 상황을 어떻게 헤쳐 나갈 것인가?

 

 

 

삶은 운명에 부딪히며 선택을 이어가는 것


 

파르페의 삶은 모두 누군가에 의해 조작되었다. 그 ‘누군가’는, 파르페가 삶에 미련을 남기지 않도록 만족스러운 화해의 결말을 내 주기도 한다. 때로는 그가 죽고 싶다고 생각하도록, 아주 큰 고통과 시련을 안겨 주기도 한다. 그 ‘누군가’는 파르페의 인생은 그가 죽음을 선택하도록 유도된 거짓이며, 그는 본래부터 삶을 견딜 수 없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한다. 파르페가 겪은 세계가 조작되었다는 사실은, 그의 세계가 어떠한 의미를 보장해 주지 않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허무하고 무의미한 인생인 것이다.

 

그러나 파르페는 파르페로서 살아가기를 택한다. 운명이 자신을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로 만들었을지라도, 자신이 선택할 수 없는 영역에서 조작되었을지라도, 그 모든 무의미 속에서도, 원래 ‘삶은 운명에 부딪히며 선택을 이어가는 것’이기에, 자신은 파르페로서 살아갈 것이라고 선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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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선언은 세계를 향한 저항이다. 자기 삶이 누군가의 의도 속에서 설계되었고, 그 끝이 이미 예정되어 있으며, 그 과정마저 죽음을 향하도록 유도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인간은 죽음 너머 ‘진정한 삶’이 있을 것이라 상상하며 현세에서의 삶을 쉽게 저버릴 수도 있다. 그러나 파르페는 그 무의미를 이유로 삶을 포기하지 않는다. 오히려 의미가 보장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받아들인 채, 그 위에서 선택을 이어가겠다고 말한다. 그렇게 그는 인간으로서, 불완전하더라도 자신을 선택하는 존재가 된다. 온 세상이 자기 죽음을 예정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겠다는 그의 결심은, 삶이란 누군가에게 의미를 부여받는 일이 아니라 의미를 만들어 가는 과정임을 보여 준다.

 

 

 

‘평화를 위해서’라는 말의 허구성


 

파르페 개인은 무의미한 세계 속에서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길 선택함으로써 저항한다. 그렇다면 파르페를 돕는 다른 이들은 ‘세계의 질서를 위해서 파르페를 죽여야 한다’라는 말에 어떻게 저항하고 있을까. 그들은 명제 자체에 질문을 던진다.

 

우선, 평화가 과연 누군가의 세계를 파괴할 수 있는 명분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이 던져진다. 유명한 딜레마, 트롤리 문제를 생각해 보자. 기차는 세계가 달린 선로로 치닫고 있다. 반대편 선로에는 한 사람이 묶여 있다. 이때 기차의 방향을 틀어,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옳은가? ‘세계가 멸망해도 금기는 영원하다’라고 파인 대령은 말한다. 한 사람을 죽임으로써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는 말은 아주 달콤하게 들리지만, 한 사람을 죽인다고 해서 세계가 평화로워질지 아닐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며, 설사 세계 평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하더라도 누군가의 희생 위에서 이루어진 이상 그것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다.

 

그리고, ‘평화’라는 단어에 질문이 던져진다. ‘어렴풋한 세계 평화라는 건 필연적으로 자꾸만 누군가의 입을 막고 누군가의 세상을 파괴하게 돼’라고 도결문은 말한다. 누구나 ‘평화’라는 막연한 개념을 추구하지만, 어떠한 것이 정말로 평화로운 상태인지는 관점에 따라 다르다. 그러므로 ‘세계 평화’는 대부분 힘 있는 자, 권력 있는 자의 관점에서 형성되고, 그에 따른 부수적인 피해들은 어쩔 수 없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어쩔 수 없이’ 희생된 주변적인 피해자의 입장에서, 세계는 ‘평화롭지’ 않다. 도결문은 평화에 대한 중앙관리국의 관점과 자신의 관점이 달라졌다고 선언하며, 한 사람을 담보로 평화로워지려는 세상에 저항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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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법해적 파르페>는 실존적 차원에서의 존재를 위한 저항, 그리고 실질적 의미에서의 세계를 향한 저항을 다루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독특한 세계관 속에서 다양한 에피소드와 인물을 통해, 그들의 저항은 결국 사랑에 의한 것이며, 동시에 사랑을 위한 것임을 이야기한다.

 

이 작품에서는 평화나 질서, 순리와 같은 모든 ‘옳은 것’이라고 불리는 것을 위해 주변부로 밀려난 그 반대의 것들이 주인공의 자리에 올라선다. “죽어라, 파르페!”의 세계에서, 파르페와 그 친구들이 어떤 선택으로 삶을 살아갈지, 어떻게 사랑할지, 한 명의 독자로서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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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을 좋아합니다. 폭넓은 문화 향유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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