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서브컬쳐'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하고 간 것은 아니었지만, 입장하는 순간부터 하나는 확실히 느꼈다. 이곳은 벽에 걸린 작품을 조용히 감상하는 종류의 전시가 아니라는 것을.
입구에서 리플렛을 하나 건네받았다. 리플렛은 폴더처럼 전시를 돌아다니며 마음에 드는 종이들을 수집해 끼울 수 있는 일종의 스크랩 도구였다. 이 작은 장치 하나로 관람의 태도가 완전히 달라졌다.
나는 '보는 사람'이 아니라 '고르는 사람'이 되었다.
가장 먼저 만난 공간은 서브컬처 스트릿 섹션이었다.
트렌드를 관통하는 날카로운 아티클들이 벽면을 가득 채우고 있었고, 그중 일부를 종이로 뽑아 스크랩할 수 있었다. 자극적이고 눈길을 끄는 문장들 사이에서 하나하나 읽고 고르다 보니, 정신을 차렸을 때 이미 상당한 시간이 흘러 있었다. 정보가 과하다 싶을 만큼 많았고, 그만큼 오래 머물 수밖에 없는 공간이었다.
전시에 있어서 첫 번째 섹션에서 많은 정보가 전시되어 있었다. 이렇게 많은 정보들을 놓치고 싶지 않아 오래 머물렀다. 그래서 인지 뒤쪽 섹션으로 갈수록 집중력이 떨어지기는 했지만. 그래도 돌이켜보면, 이것이 오히려 이 전시의 성격을 말해주는 것 같다.
내 취향이 반응하는 곳에서 오래 머무르고, 그렇지 않은 곳은 가볍게 스쳐 지나가는 것. 그게 이 전시가 설계한 관람 방식이었다.
B-SIDE 레코즈에서는 아티스트와 레코드숍이 추천한 곡들을 LP로 듣고, 헤드폰으로 감상할 수 있었다. LP를 찾아 QR코드를 스캔하면 음악과 인터뷰 영상까지 연결되는 구조였는데, 그중 국카스텐의 인터뷰가 있었다. 전시장에서는 바빠서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집에 가서 꼭 다시 봐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음악 리플렛에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스티커를 붙이도록 했는데, 나는 국카스텐 스티커만 찾아서 붙였다. 그게 솔직한 내 취향이니까. 다만 헤드폰 줄이 너무 짧아서 제대로 음악을 감상하기 어려웠던 점은 아쉬웠다. 몰입할 수 있는 좋은 장치였기에 더 그랬다.
독립출판 섹션인 텍스트 에비뉴에서는 각 출판사를 하나의 브랜드처럼 전시해두었다.
유유출판사처럼 이미 아는 이름도 있었지만, 나에게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전기가오리였다. 소문으로만 듣던 출판사를 처음 제대로 마주한 순간이었고, 전시를 보고 나니 구독을 해볼까, 책을 사볼까 하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겼다.
안전가옥에서 소개된 책도 눈에 밟혔다. 특히 재미있었던 건, 각 출판사를 하나의 '사람'이라고 가정하고 인터뷰 형식으로 보여주는 부분이었다. 딱딱한 소개문 대신 그 브랜드가 어떤 성격인지를 대화로 풀어냈기 때문에,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그 브랜드에 감정이입을 하게 되었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넘어갈 때마다 문이 쇼핑백 형태로 디자인되어 있었다. 사소한 장치 같지만, 이 전시가 '백화점'이라는 콘셉트를 공간 곳곳에 얼마나 세밀하게 심어두었는지를 보여주는 디테일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공간은 굿즈존이었다. 전시에서 소개된 출판사의 책, 아티스트의 작품, 일러스트레이터의 굿즈를 실제로 구매할 수 있었다. 전시의 마지막이 '감상의 여운'이 아니라 '구매의 순간'으로 끝났다.
전시장을 나오며 든 생각은 이것이었다. 나는 시간을 소비하고, 취향을 소비하고, 마지막에는 돈을 소비하는 하나의 종합 백화점에 다녀온 것이다.
이 전시의 테마인 '포스트 서브컬쳐'는 서브컬쳐가 더 이상 소수의 것이 아닌 시대를 전제로 한다. 메이저 브랜드들이 서브컬쳐와 콜라보하고, 서브컬쳐적 취향을 가진 것 자체가 선망의 대상이 된 지금. 이 전시가 보여준 것은 서브컬쳐의 '결과물'이 아니라, 좋아하는 것에 대한 '태도'였다.
좋아하는 음악에 대해 글을 쓰고, 책을 만들고, 잡지를 펴내고, 옷을 짓는 사람들. 소비에서 멈추지 않고 창작으로 건너간 사람들의 세계가 거기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