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팀 에디테라
출판사: 임팩터(impacter)
*메멘토(MEMENTO): ‘기억하라’는 의미의 라틴어
‘기록’이 ‘생존’이 된 요즘. 습관 내지 취미 카테고리에 있던 소소한 활동이 언제 이렇게 체급을 키웠나 싶다. 기록은 이제 하나의 거대한 흐름으로 자리를 잡았다. SNS 피드만 둘러보아도 금방 알 수 있다. 일상에서부터 커리어에 이르기까지 외부에 자신을 어필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로 부상했다. 영상, 사진, 단문의 글과 같이 다양한 형태의 기록물은 지금도 쉴 새 없이 업로드되고 있다.
여기에 콘텐츠 호흡까지 점점 더 짧아지는 중이다. 30초도 안 되는 시간 안에서 최대한 승부를 보려는 추세다. 자극적으로 흐르는 내용은 사람들의 시선을 쉽게 훔친다. 쇼츠 영상 하나를 우연히 보게 되면 저항 없이 빨려 들어가는 일도 다반사다. 그렇게 각종 이슈를 영혼없이 섭렵한다. 생각은 고일 틈조차 없이 곧바로 휘발된다. 시선은 무의미하게 계속 밖으로 뻗어 나간다.
이럴 때 쉽게 놓치는 것이 ‘느림’과 ‘밀도’다. 잠깐이라도 내 사유에 온전히 집중한 적이 있었나? 순간일지언정 무언가를 깊이 탐색하고 파헤친 적은? 질주하다 숨을 고르는 것처럼 시선을 다시 안으로 천천히 돌릴 때다. 이번만큼은 거대한 흐름을 외면해 보기로 한다.
좇아야 할 것 같고 잘하고 싶은 일종의 의무감은 던져 버리고 툭툭 삐져나오는 나의 생각들을 존중하기로 했다. 이 메모리북 앞에 있으면 그 일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다.
너그러운 기록 저장소 <메멘토 북>

<메멘토 북>은 ‘기억’하기를 격려하는 ‘메모리북’이다. 책은 돌아서면 휘발되는 찰나의 생각과 순간을 귀중히 간수할 수 있는 저장소 역할을 한다. 페이지 곳곳에 배치된 여러 가지 흥미로운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어느 순간 이 책의 주인공이 ‘나’라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독자로 시작해 기록하는 순간 저자가 되는 신기한 경험을 할 수 있다. 파편처럼 흩어져 있던 생각들이 모여 크고 작은 개인 서사를 만들어 낸다.
기록을 하기로 마음 먹었지만 막상 실행하는 것은 쉽지 않다. 날짜에 얽매이게 되고, 쓸 말을 고르다 한참을 멈춰 있고, 꾸준하게 밀어붙여야 무언가 남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작하기도 전에 힘이 잔뜩 들어가 버린다.
이 책은 기록을 하는 동안 겪을 수 있는 모든 상황을 너그럽게 수용한다. 당장 무얼 써야할지 모르겠는 막막함, 자꾸만 단어를 고르고 정제하려드는 강박감, 빈칸 앞에서의 두려움까지전부 이해해준다. 이리저리 튀는 생각을 편하게 펼칠 수 있도록 묵묵히 바라봐 준다. 쓰고픈 날에만 원하는 만큼을 적기에 기록은 자연스레 밀도를 갖게 된다. 생각을 흘려보내지 않고 스스로 적어본다는 행위 자체를 응원해 준다.
직접 써내려 가는 오늘의 기록은 어쩌면 나에 대한 존중이지 않을까. 시절을 타지 않고 영원히 남을 소중한 무엇이지 않을까. 너그러운 기록 저장소 앞에서는 조금 더 편해져도 괜찮겠다.
사유를 돕는 다양한 질문들
책은 다각적으로 사유해 볼 만한 여러 종류의 질문을 던지고 있다. 때로는 가볍게, 때로는 심오하게 그 난도를 조절한다. 명화, 문학, 철학, 가상의 상황 등으로부터 피어난 1차 스토리를 기록자가 자연스럽게 이어받도록 한다. 기록에 있어 정답은 없으며, 그저 자유롭게 내 생각을 따라가기만 하면 된다. 나 또한 가장 끌리는 질문부터 대답을 적었다.
1. 가상 상황
*애니메이션에 나왔던 대사를 나만의 대사로 바꾼다면?

*누군가 내게 조언을 구한다면?

가장 흥미를 느꼈던 질문은 빈칸에 들어갈 나만의 대사를 만드는 것이었다. 나중에 보니까 결국 내가 듣고 싶었던 말이었다. 내가 나를 달랠 수 있는 말을 빈칸에 쓴 것 같다. 적는 데 좀 걸렸지만 그만큼 진심을 담았다.
2. 명화 한 장면

빈센트 반 고흐 작품에서 묘사된 자연 풍경을 보고 산책하면서 만났던 장면들을 편하게 적어 내려갔다. 새, 윤슬, 나뭇잎, 하늘이란 글자가 종이 위에 올려진 순간, 좋아하는 것들이 더 선명해졌다.
3. 철학적 물음


심오하고 묵직한 질문도 있었다. 철학 또는 문학에서 선별한 짧은 문장은 평소에 잘 드러내지 않던 나만의 원칙을 꺼내 보게 한다.
기록의 최종 목적지는 ‘자기 탐색’이다
당장의 생각들은 따로 흩어져 연관성이 없어 보이지만 결국 거대한 물줄기처럼 한 곳으로 모인다고 생각한다. 그 물줄기는 결국 자기 자신일 거다. 기록의 최종 목적은 나라는 사람을 깊이, 온전하게 탐색하는 것이다. <메멘토 북>이 그 의미 있는 작업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답하지 못한 페이지를 채우게 됐을 때 지금보다 조금 더 단단해져 있으면 좋겠다.
외부로부터의 영감 수집은 많은 편이지만 그게 곧 내실로 이어지는가에 대한 고민이 있다. 자꾸만 밖으로 향하는 관심만큼 내 안을 들여다보고 가꾸는 일에도 애정을 기울여야겠다. 숙제가 아닌 나라는 퍼즐을 한 조각씩 맞춘다는 느낌으로 건강하고 재밌게 스스로를 디깅(digging)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