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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하나의 좋은 글이 탄생하기 위해선 수정에 수정을 거듭해야 한다. 꼭 글만이 아니라 어떤 작품이든 비슷할 것이다. 가끔씩 마치 신내림이라도 받은 것처럼 단번에 완벽한 글을 써 내려가곤 하는 극소수의 경우가 아니라면,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수정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하지만 자기 자신의 단점을 스스로 발견하는 건 무척이나 어려운 일이다. 최대한 객관적으로 자신의 글을 바라보기 위해 초고를 완성하면 그대로 며칠 동안 두었다가 잊을 때쯤 다시 읽어보라는 조언이 가장 지배적이고, 또 이 방법이 실제로 꽤 유용하긴 하지만, 품이 많이 든다. 가장 좋은 방법은 다른 사람에게 글을 읽히는 것이다. 앞서 말한 방법도 결국은 내 글을 마치 다른 사람이 읽는 것처럼 스스로를 ‘낯설게 하기’가 포인트인, 같은 맥락이다. 내 단점은 안 보이고 남의 단점은 훤히 들여다보이는 것처럼, 글 역시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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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과정을 교정·교열이라고 부른다. 출판사에서 편집자들이 도맡아 하는 일이기도 하다. 작가가 초고를 써서 보내면 편집자가 그 글을 읽으며 오탈자를 발견하고, 잘못된 문법을 수정하고, 어색한 비문을 바로잡는다. 이 둘은 보통 ‘교정·교열’ 식으로 같이 붙여 불릴 때가 많아서 혼동하거나 동일시하는 사람들도 많고, 요즘은 굳이 구분하지 않는 경우도 많다고 듣긴 했지만, 개념적으로는 엄연히 다른 존재다. ‘교정’은 말 그대로 틀린 것을 바로잡는 것이다. 맞춤법이나 띄어쓰기 같은 문법적인 오류를 맞게 고친다. 누군가의 자세가 틀어지거나 젓가락질을 이상하게 하면, 우리는 자세를 ‘교정’한다고 한다. 즉, 교정에는 답이 있다.

 

반면 ‘교열’에는 답이 없다. 문법처럼 수학적인 개념이 아니다. 읽었을 때 어색한 문장을 다듬는다. 문장과 문장 사이가 자연스럽게 연결되는지, 읽었을 때 말이 되는지, 논리가 무너지지는 않는지 등을 검토한다. ‘사과’를 ‘사가’로 쓰면 누가 봐도 틀린 것이기 때문에 고쳐야 하지만, 같은 문장을 봐도 누군가는 어색하다고 느끼고 누군가는 자연스럽다고 느끼는 ‘감각’의 영역부터는 다소 까다로워진다.

 

이 둘보다는 비교적 사람들에게 덜 알려져 있지만, 다음으로는 ‘윤문’이 있다. 윤문은 글을 매끄럽게 빛내는 단계다. 교열보다 더 감각적인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때는 기본적인 수정보단, 이미 얼추 모양이 잡힌 글의 완성도를 끌어올린다. 분명 오탈자도 없고 어색하지도 않은데 왠지 그냥 안 읽히는 글(취향 때문이 아니라 글 자체가), 어쩐지 로봇이 쓴 것처럼 뚝딱거리는 문장들, 읽으면 피곤해지는 글을 읽기 좋게 정비한다.

 

이 정도의 전문적인 일은 아니었지만, 나 역시 소소하게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으며 작업한 경험이 있다. 대학에 다닐 때는 학보사를 3년간 하며 매번 다른 사람들의 원고를 읽었고, 졸업한 후에는 지인이 하는 인스타 매거진에 합류해 교정·교열 담당이 되었다. 고등학교나 대학교 때도 친구들의 과제 글을 부탁받아 읽으며 매끄럽게 해준 자잘한 경험들이 많다. 이런 식으로 다른 사람들의 글을 읽다 보면 재미있는 점이, 글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 보일 때가 잦다는 것이다.

 

물론 일반화는 할 수 없으니 재미로 보는 거지만, 대체로 성격이 급한 사람들은 글도 급하다. 논지가 휙휙 넘어가고 지나간 글은 돌아보지 않는다. 덩달아 전체적인 글의 길이가 짧아질 때가 많다. 완성된 글이 자기가 봐도 너무 짧은데 더 이상의 할 말은 없고. 이럴 때 어떡해야 하는지 물어온 친구들이 간혹 있었는데, 설명을 덧붙이는 게 좋을 만한 부분들까지 간단명료하게 줄이고 넘어가 버리는 바람에 그런 경우가 많았다. 반대로 예민하거나 꼼꼼한 친구들은 문장이 길어졌다. 글이 길어지는 건 상관이 없지만, 문장 하나하나가 과하게 길어진다. 나도 이쪽 부류에 속하는 편이다. 자신이 쓴 문장을 계속 되짚어 읽으면서 고치고, 덧붙이고, 또 고친다. 이러면 말이 유려해지기는 하는데 자칫하면 문장 하나가 두세 줄씩 차지해버려 읽는 사람을 지치게 할 수도 있다.

 

또 하나 재미있는 점은 쉼표다. 교정·교열 수업을 들었을 때 편집자 강사님이 쉼표는 정해진 답이 없는 취향의 영역이라고 하신 기억이 있다. 문법적으로 꼭 들어가야 하는 곳인데 빠졌다거나 누가 봐도 이상할 정도로 과도하게 남발하는 ‘틀린’ 경우가 아니면 개인의 자유라는 것이다. 나도 글을 읽다 보면 눈에 많이 들어오는 요소 중 하나다. 쉼표를 거의 안 쓰는 사람도 있고 정말 자주 쓰는 사람도 있다. 보통은 자신이 말을 하듯이 글을 쓰기 때문에 말하면서 휴지를 넣는 구간마다 자연스럽게 글에도 쉼표를 찍고는 한다. 자신은 어떤 타입인지 지난 글들을 다시 들춰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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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정·교열은 글을 읽고 고치는 행위지만, 본질적으로는 그 글을 쓴 사람과 읽는 사람을 잇는 통로다. 이 사람이 이 문장을 어떤 생각으로, 왜 썼을까 생각하며 고치고, 메모를 남기고, 그렇게 읽은 글을 저자에게 보내면 저자는 또 내가 덧붙인 글을 읽는다. 그 내용대로 고칠지 자신의 원래 문장을 관철할지는 저자의 자유다. 어느 쪽이든 자신이 원하는 방향이 있으면 상대를 설득해야 한다. 특히 남의 글을 고치는 입장에서는 그렇게 해야 할 정확한 근거를 같이 제시해야 한다. 결국은 그 자체로 하나의 의사소통이 된다. 네모난 원고지 위에 적힌 글자들을 보면서, 사실은 마치 거울을 보듯 그 너머의 상대를 들여다보고, 그와 연결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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