갓생, 루틴, 비건, 건강……. 요즘은 세대를 막론하고 ‘자신’을 위해 관리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건강하게 잘 살기’는 하나의 문화나 유행처럼 번지던 때도 있었다. 다이어트 열풍이 한창일 때였던가. 내가 먹은 음식, 하루 동안 활동량을 에스엔에스에 기록처럼 올렸다. 내가 이만큼 살았다는 모습을 누군가가 봐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젊을 때는 몸이 고장 난다는 상상을 해본 적이 없다. 밤을 새워도 다음 날 학교, 회사를 갔고, 끼니를 거른 채 커피로 버텼다. 사회 초년생 때에는 술이 잘 받지도 않으면서 회식자리에서 끝까지 잔을 들었다. 지금 보면 젊은 날의 패기도 독기도 뭣도 아니었다. 화장실로 가 속을 몇 번이나 토해내면서 또 마셨다. 참는 게 사회생활이고 버티는 게 성실함이라 배웠으니까. 지금은 절대 상상할 수 없는 일이지만 예전에는 그랬다. 몸이 혹사 당해도 금방 회복될 것이라 믿었다. 나는 아직 젊으니까.
시간이 지날수록 회복의 유효기간이 점점 길어졌다. 어느 순간부터 피로는 쉽게 가시지 않았고, 감기나 몸살이 걸리면 수액을 맞거나 며칠은 누워있어야 피로가 사라졌다. 오랫동안 무리하고 방치한 탓이었을까. 몸이 아픈 건 갑작스럽지 않았다. 그저 몸은 오래 참아줬다가 신호를 보냈을 것이다.
아픔을 경험하고 나서야 건강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년 전 두 차례의 수술과 다른 기저질환 진단을 받으며 스스로를 원망했다.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를 해야 하다니. 내 인생은 왜 이럴까. 온갖 자책을 하다가 하늘을 보며 성을 내기도 했다.
이십 대 초 중반까지만 해도 젊음이 영원할 줄 알았다. 몸이 아픈 후에는 건강염려증이 심해지고 조금 더 예민해졌다. 조금만 아파도 병원에 가는 버릇이 생겼다.
건강해져야겠다고 마음 먹은 순간부터 식단 관리에 들어갔다. 샐러드, 과일, 밀가루 금지. 그런데 문제는 그때부터였다. 모범적인 식단이라고 믿었지만 삶의 질이 급격하게 내려갔다. 정확히는 사는 게 재미가 없었다. 아빠의 잔소리도 점점 늘어갔다. 딸의 건강을 위해 몸에 좋다는 채소, 과일을 검색해 장을 봐서 직접 대령했다. ‘약이라고 생각하고 먹으면 맛있어’ 나는 인상을 쓰며 쓰고 맛없는 것들을 억지로 먹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 이런 생각을 했다.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몸을 지키고 있는데 마음은 점점 궁핍해졌다. 건강해지려고 시작한 일이 오히려 나를 예민하고 피곤하고 지치게 만들었다. 나는 나를 조금씩 느슨하게 풀어놨다.
정말 먹으면 안 되는 음식을 제외하곤 조금씩 먹기로 했다. 건강을 위해 힘을 주어 애쓰지 않는 대신 조절하기로 했다. 조금 덜먹고, 참는 날도 있지만 가끔은 허락하는 날도 만들어 주는 것. 극단적인 식단 대신 균형을, 금지 대신 생활을 선택했다. 평생 참는 삶 대신에 가끔 맛있는 음식을 먹고 웃기로 했다.
어렸을 때만 해도 매 끼니 밥만 먹으면 물릴 때가 많지 않았는가. 정말 많이 아파보고 건강을 되찾았지만 삶을 숨 막히게 조이지 않으려고 한다. 잘 먹고, 잘 쉬고, 가끔은 즐기면서 오래 걸어가기로 한다.
그 정도면 충분하니까. 예민하지 않고 웃으면서 적당히 맛있는 거 먹고, 운동하면서, 소소한 재미를 찾으며 사는 게 건강 아닐까. 오늘은 매운 게 당겨서 떡볶이를 시켰다. 샐러드 옆에 떡볶이를 한 접시 놓는다. 그리고 생각한다. 이렇게 사는 내가 예전보다 훨씬 건강하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