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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단 한 명의 배우가 만들어내는 심전도 그래프 -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생명력'이라는 감각을 느껴보고 싶다면

by 임솔지 에디터
2026.02.10 13:35

 

 

드디어 시간이 되었다. 조명이 반쯤 꺼지더니 심장 박동 소리가 들려온다. 그 소리에 맞춰 점점 어두워지고, 완전히 암전이 된다. 그리고 무대 뒤 스크린에 새벽 5시 50분을 가리키는 빨간색 숫자들이 나타나, 19세 소년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중년 여성 끌레르 메잔에게 이식되기까지의 24시간의 시작을 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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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에는 총 16명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시몽, 그를 발견한 구조 대원, 여러 명의 의사들, 간호사, 장기 이식 코디네이터, 엄마, 아빠, 여자친구, 그리고 끌레르까지. 이 인물들은 두 가지의 공통점이 있다. 모두 시몽 랭브르의 심장에 관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 그리고 모두 ‘생명력이 가장 짙을 때의 시간’ 속에 서 있다는 것이다.

 

파도 위에서 서핑을 하는 시몽, 노래로 자신의 신체를 확인하는 토마, 시몽과 사랑에 빠진 줄리엣, 의사 일을 하는 아르팡. 이렇게 모든 인물들은 묘사되는 순간 속에서 자신이 진정으로 살아있음을 느낀다. 심지어 아들의 죽음을 맞닥뜨린 마리안도 그렇다. 그녀는 어쩌면 인생에서 가장 고통스러울 순간에서 방황한다. 그런데 고통을 느낀다는 것은 곧 살아있다는 증거다. 따라서 고통 또한 생명력이며, 이로써 마리안을 포함한 모두가 자신이 처한 상황 속에서 생명력을 내뿜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시몽 랭브르의 심장이 무엇인지,

스무 살 난 육신의 블랙박스,

그것이 무엇을 걸러 내고 기록하고 쟁여 뒀는지,

정확히 그게 뭔지 아무도 모른다.

초음파가 만들어 내는 연속적 이미지만이 그 울림을 되돌려 주고,

그것을 부풀게 하는 기쁨과 그것을 옥죄어 드는 슬픔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그렇다. 오로지 그 그래프만이 그것의 사연을 들려주고,

그 삶의, 밀물과 썰물의 삶의, 개폐 장치와 역류 방지 장치의 삶의,

박동으로 점철된 삶의 윤곽을 보여줄 수 있으리라.

 

-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원작 소설 7-8p

 

 

심전도 그래프는 단 하나의 선으로 부풀어 올랐다 수축하는 심장의 움직임을 그려낸다. 그 움직임은 파도를 닮았고, 동시에 언젠가 환희에 차오르다 고통에 잠식하기를 반복하는 우리의 인생을 닮았다.

 

이 작품에서 어떤 인물의 심장은 뜨겁게 타오르고, 어떤 인물의 심장은 차갑게 식어간다. 그리고 어떤 인물의 심장은 그저 묵묵히 정상적인 속도로 박동한다. 그 모든 인물들을 단 한 명의 배우가 묘사하며, 하나의 얼굴과 몸으로 우리 삶의 다양한 이면들을 보여준다. 이로써 한 명의 배우는 모니터의 한 줄기 선이 되고, 그의 1인 다역 연기는 심전도 그래프가 된다. 이 작품이 1인극이어야만 하는 이유다.

 

이 극은 어떤 메시지를 또렷하게 비추는 극은 아니다. 심장과 죽음에 대해 이야기함에도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명확히 결론 내리지 않는다. 관객은 배우가 표현하는 인물들 중에 자신을 투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그 모든 인물을 자신과는 다른 사람이라고 판단한 채 그저 관망할 수도 있을 것이다.

 

 


 

 

어떻게 봤든 간에, 시몽의 심장이 이동하는 여정에 참여하는 모든 심장들을 바라보며 관객이 자신의 심장 또한 의식하게 하는 것. 그것이 이 작품의 목표가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 작품의 제목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에서 ‘살아있는 자’는 비단 시몽이나 끌레르만을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비르질리오가 심장을 꺼낼 때, 배우의 손 위에 있는 그 투명한 심장. 그 장면에서 마치 배우는 시몽이 아니라 모든 관객의 가슴을 연 후 심장을 꺼내서 보여주는 듯하다. 그러고는 알려준다. 우리는 살아있다고. 우리의 심장은 뛰고 있다고.

 

 


 

 

심장이 죽으면 뇌도 죽는다. 하지만 뇌가 죽는다고 해도 심장은 계속 뛸 수 있다. 죽음의 기준은 뇌지만, 죽어버린 내 몸을 끝까지 붙드는 것은 심장이다. 그러니 언젠가는 뇌보다 심장이 이끄는 길을 선택해 봐도 좋겠다고, 극을 보며 생각했다.

 

우리는 모두 서핑하듯 살아간다. 때때로 테이크 오프를 만나기도 하고, 그러다 파도와 멀어지고 돌멩이들에 흠씬 얻어맞는 날을 반복할 것이다. 그럴 때마다 삶의 마지막 순간, 몸이 떨리게 추워도 꿋꿋이 파도에 몸을 맡긴 미련한 시몽처럼, 아무것도 몰라도 그저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줄리엣에게 다가간 그처럼, 심장이 그려내는 파도에 집중하며 살아가 보는 건 어떨까 생각해 본다.

 

“지금 시간은.”

 

배우가 마지막 대사를 하고 무대 왼쪽 끝으로 걸어간다. 무대에는 다시 빨간색 숫자들이 모습을 드러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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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암전. 세찬 파도 소리가 들려온다. 귓속에서 시원하게 울려 퍼지는 이 소리는 다양한 의미를 생각하게 한다. 바다 위에서 누구보다 생기 넘치던 시몽에 대한 애도 같기도 하다. 그리고 시몽의 심장으로 새로운 삶을 서핑하듯 살아갈 끌레르의 삶에 대한 암시 같기도 하다. 또한 파도가 연속적으로 몰아치는 것이 심장의 본질이자 즉 삶의 본질이라는 의미를 내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심장이 뜀으로써 우리가 누리는 삶의 아름다움과 숭고함을 표현하는 것 같기도 하다.

 

다른 무엇보다 ‘생명력’이라는 감각이 사무치던 24시간이었다.

 

 

(이미지 출처 : 인스타그램 @project_ild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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