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생의 끝에서 시작으로 이어지며 계속되는 이야기 - 연극 '살아있는 자를 수선하기' [공연]

생이란, 삶이란 무엇인가
글 입력 2024.05.06 19:43
댓글 0
  • 카카오 스토리로 보내기
  • 네이버 밴드로 보내기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 플러스로 보내기
  • 글 스크랩
  • 글 내용 글자 크게
  • 글 내용 글자 작게

 

 

하나의 심장을 둘러싼 각자의 생(生)


 

극 중에는 심장의 주인 시몽을 비롯한 16인의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이들은 생의 마지막 날, 서핑을 즐기다 비운의 사고로 뇌사 상태에 빠진 '시몽'의 심장 박동을 둘러싼 채 각자의 궤도로 생(生)을 이어간다.


어쩌면 누구보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자유롭게 보낸 시몽의 심장을 비롯한 장기들은 마치 금방이라도 시몽을 생전의 활달했던 모습으로 되돌릴 수 있을 것처럼 기능하고 있지만, 세상 어떠한 가십들보다 삶과 죽음의 기로에 놓인 수술실에서의 근무가 가장 편안한 그의 전문의는 무심할 정도로 냉철하게 그가 '법적으로 죽었다'고 말한다.


시몽의 가족 마리안과 션, 그리고 연인 줄리엣에게 이 사실은 불과 몇 분 전, 그러니까 그의 죽음을 알기 전의 평범했던 일상이 몇 억 광년 쯤은 떨어진 다른 세계처럼 느껴질 정도로 가혹하기만 한데 그들 앞에는 마치 이것은 시작이라는 듯 버거운 과업이 놓이고, 그들은 그 어느 때보다 괴로운 결정을 해야한다.

 

 

20240506105640_dgsvrori.jpeg

 

 

생전의 시몽 대신 그의 가족들과 논의 해야할 '장기 기증 여부'에 대한 이야기, 시몽의 '죽음'을 이제서야 겨우 받아 들이기 시작한 그들에게 '만약 시몽이라면'이라는 가정을 들이밀고 타인의 '생'을 생각해보길 제안해야하는 장기이식 코디네이터 토마의 입장도 썩 유쾌하진 못 해 보인다.

 

그리고 그 숭고한 '생(生)'을 옮기는 수술을 집도하는 의사들, 그들은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는 자'에게서 심장을 비롯한 장기를 떼어 내어 '살아가야만 하는 자'에게 이식하는 과정을 마치 옷을 수선하는 수선공처럼 단계에 맞춰 수행한다.


그리고 그 끝에는 '살아가야만 하는 자', 심장을 이식 받은 클레르가 있다. 그의 얼굴엔 어쩐지 이 이야기에서 가장 큰 수혜를 받은 사람 답지 않은 짙은 어둠이 걷히질 않는다. 기증자에 대해 그가 알 수 있는 거라곤 성별과 연령대 정도. 그 짧막한 정보 앞에 그는 몇 번이고 고개를 숙이지만 고맙다는 말조차 할 수 없이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고통스럽지만, 그렇기에 삶이다


 

20240506105749_gacbewrx.jpeg

 

 

극을 보는 내내 느낀 점은 마리안, 션, 줄리엣, 클레르, 토마와 의사들 그 외 인물들을 비롯한 그 어떤 '살아있는 자'들의 독백에는 모두 얼마 간의 그늘을 담고 있는 듯 하는 것이다. 아이러니하게도 자신이 가장 사랑하던 파도를 온 몸으로 느끼고 사라진 시몽의 삶이 가장 자유롭고 찬란해 보일 정도였으니까 말이다.


극을 보고 나오면서 결국 진정 살아간다는 것은 고통을 감내하는 것과 다르지 않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모두는 소중한 누군가를 잃었거나, 잃을 지도 모르는 걱정을 하며 살아가고, 또한 자신의 죽음을 두려워하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모순적이게도 그렇기에 그것이 유한한 삶의 가치고, 살아있는 순간을 아름답게 만드는 요소가 아닐까 싶다. 우리는 그 모든 고통을 감내하고서라도 어떻게든 살아가야 하고 삶의 순간을 의미있게 만들고자 노력하곤 한다.


션이 생전 가장 좋아하던 파도 소리를 담은 워크맨을 아직 심장이 뛰던 그의 아들의 귀에 들려줄 때, 모든 장기들이 빠져 나간 후에도 분명히 자신의 아들인 시몽을 끌어안고 "이게 내 아들이 맞아"라며 마리안이 속삭일 때, 오지 않을 시몽의 답장을 기다리며 줄리엣이 잠에 들 때, 그리고 이식 받은 심장의 박동을 느끼며 결국은 시몽에게서 자신에게로 이어진 삶의 끈을 져버리지 못할 클레르의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말까지, 모두 고통을 감내하고 살아갈 인물들의 생(生)의 형태이지 않을까?


누군가의 삶의 끝에서 다른 이의 삶을 시작을 기워내는 수선실, 그러니까 수술실 안에서 그래프로 나타나는 심장 박동, 그 신성함 앞에서 모두가 묵념하는 그 순간. 우리는 '산다는 것'이 주는 경이로움을 보게 되고, 어쩌면 그것만으로도 삶을 이어갈 가치는 충분할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책상 하나, 의자 하나, 배우 한 명


 

20240506105932_vqccfxls.jpeg

 

 

사실상 영상 프로젝터와 함께 모든 배경을 구현하는 뒷 배경 외에 무대를 구성 하는 요소는 책상, 의자, 배우 이 3가지가 전부였다. 이는 대학로 소극장에서도 보기 힘든 단출한 무대 구성 이었기에 어떻게 이 구성 요소만을 가지고 연출을 이끌어갈지 극이 시작하기 전부터 궁금했다.


이토록 독특한 구성은 원작 소설의 호흡을 헤치지 않기 위함이 아닐까 싶은데, 원작 소설을 읽고 공연을 관람하면 확실히 많고 많은 대사들을 어느정도 쉽게 따라 갈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무대 위 배우가 쏟아내는 대사들을 듣고 있으면 마치 눈 앞에 책 한권이 펼쳐지고, 페이지가 넘어가는 듯한 이미지가 그려질 정도로 이 공연의 대사는 거의 책 학권을 그대로 옮겨 놓은 수준이었다.


그리고 배우의 표현력이 여기서 정말 돋보이는데, 그 방대한 대사를 최소한의 소품, 최소한의 배경 구현을 활용해 관객들의 머리 속 도화지에 그림을 그리듯 이미지를 만들어 나가는 데 아주 큰 역할을 해준다. 배우의 이러한 열연, 사실상 '연기 차력쇼'가 있기에 아주 간결한 구성만으로도 100분의 이야기를 채울 수 있고, 또 그렇게 덜어낸 구성이 이 작품만이 지니는 텍스트 그대로의 호흡을 지닌 공연을 구현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20240506110129_uwdancbn.jpeg

 

 

또 그 간결한 구성의 장면 사이 간극을 채워주는 긴 암전 속 사운드들도 참 인상 깊었는데, 시몽이 마지막 순간 들었을 관객석을 집어 삼킬 것만 같이 밀려오는 파도 소리, 누군가의 죽음에서 누군가의 삶 사이를 잇는 커다란 심장 박동 소리를 시야가 차단된 채 들으며 등장인물들의 상황 속에 스스로를 던져 놓고 상상해보는 나름의 재미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암전 속의 파도 소리는 객석을 나선 후 로비에서까지 이어져 있는데, 파도를 위를 유람하며 최고조로 박동했을 시몽의 심장 주파수를 그려보면서 이 공간에서 조금 더 공연의 여운을 느껴보시는 것도 추천한다.

 

 

 

컬처리스트 명함 (1).jpg

 

 

[박다온 에디터]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등록번호/등록일: 경기, 아52475 / 2020.02.10   |   창간일: 2013.11.20   |   E-Mail: artinsight@naver.com
발행인/편집인/청소년보호책임자: 박형주   |   최종편집: 2024.05.27
발행소 정보: 경기도 부천시 중동로 327 238동 / Tel: 0507-1304-8223
Copyright ⓒ 2013-2024 artinsight.co.kr All Rights Reserved
아트인사이트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습니다. 무단 전제·복사·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