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몇 년 전, 한 드라마에서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대사가 있었다.
"나를 추앙해요".
다음날 많은 사람들이 '추앙'을 사전에서 다시 한번 찾아봤다고 할 정도로, 괜히 낯설게 느껴지는 단어이기도 하다. 살면서 추앙이라는 단어를 써본 적이 몇 번이나 되겠는가. 이 드라마를 전부 보지 않은 사람도, 그 대사는 기억하고 있었다. 나를 추앙해요.
사람들은 모두 마음속 깊이, 누군가에게 절대적 존중을 받고 싶은 욕망이 있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단순히 눈이 즐거운 하이틴 영화를 넘어서 어느덧 21세기의 고전(classic)으로 일컬어지는 건, 아마 이 '추앙받고 싶음'에 대한 욕망을 살벌하도록 잘 묘사하기 때문일 것이다.
퀸카 추구미, 나르시시즘이 되기까지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하이틴 영화답게 몇몇 규칙을 따라간다. 하이틴 영화라면 따르는 전형적인 법칙들이 있다. 이를테면, 여주인공은 평범하다고 하지만 사실 굉장히 예쁘다. 그리고 초반에는 그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 채 학교에서 인기 있는 존재로 거듭난다. 남주는 그녀에게 처음부터 반해 있었으나 이 역시 알지 못한다. 주인공이 평범한 옷을 버리고 갑자기 트렌디한 팝송과 함께 반짝반짝한 옷을 입으며 나타나는 '변신은 무죄'와 같은 신(scene)은 덤이다.
그럼에도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전통적인 하이틴 영화와는 조금 다르다. 이 영화가 전형적인 하이틴 영화의 법칙을 어느 정도 따르긴 하지만, 그저 그런 틴 무비로 느껴지지 않고 곱씹어 보게 되는 이유가 있다. 우리 모두 어느 정도 가지고 있는 나르시시즘을 보여주기 위해 클리셰들을 사용하는듯하면서 살짝 비틀었기 때문이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고등학생들의 파벌싸움이라는 소재로 실은 누구나 추앙받고 싶은 마음이 있다는 것을 말하며, 모든 인물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던진다.
아프리카에서 홈스쿨링을 받아왔던 '케이디'가 우리의 주인공이다. 처음으로 일반 고등학교에 전학을 오게 된 케이디는 등교한 첫날 학교 투어를 시켜주겠다는 데미안, 제니스와 친구가 된다. 데미안과 제니스가 케이디에게 처음 알려준 것은 고등학교에는 파벌(clique)들이 있다는 점이다.
그러다 케이디는 여왕벌(Queen Bee)로 군림하는 레지나 조지를 만나게 된다. 데미안과 제니스는 이 기회를 틈타 케이디를 통해 레지나를 골탕 먹이기 위한 작전을 짠다. 얼떨결에 레지나의 무리와 다니게 된 케이디는 '퀸카'가 되어 있다. 그러던 와중 잘생긴 남학생을 짝사랑하면서 케이디는 자신과 레지나를 비교하게 된다. 이 비교가 불씨를 지펴, 교내의 사회적 지위와 인기에 중독된 케이디는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어디서 나온 것인지 혼란스러운 상황에 놓인다.

케이디는 처음에 자신이 혐오했던 레지나의 모습을 하기 시작한다. 아주 매력적이지만 다른 사람들의 감정을 조종하는 나르시시스트가 된 것이다. 자기 자신을 지나치게 이상화하고, 이에 타인을 이용하며, 모든 관계가 자기 확인의 도구가 되어버린다.
이를 잘 보여주는 장면이 "Burn Book"이다. 전교생의 비밀과 서로 간의 험담을 적어놓은 레지나의 노트다. 케이디에게 열이 받은 레지나가 스스로 Burn Book을 공개해버리며 학생들 간엔 비밀이 없어지게 된다. Burn Book이 확인해 준 것은 케이디와 레지나뿐만 아니라 모든 학생들의 서로를 시기 질투했던 과거와 현재다.
그 이면에는 '추앙'에 대한 욕망이 있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 속 캐릭터들은 어느 한 캐릭터도 온전히 선하거나 악하지 않다. 영화의 영어 원제는 'Mean Girls'로, 주인공을 포함한 모두가 'Mean Girls'다. 친구인 듯 적인듯한 'frenemy' 관계에 놓여 있는 아이들의 모습들이다. 그렇다고 여기서 '학폭'을 묘사하고 있지는 않다. 오히려 '추앙'이라는 인간의 욕망을 그리고 있다.

그걸 잘 보여주는 게 제니스라는 캐릭터다. 얼핏 보면 제니스는 전형적인 'mean girl'은 아니다. 애초에 제니스는 영화 초반에서 케이디에게 레지나의 무리들을 'mean girls'로 묘사한 장본인이다. 하지만 제니스 또한 'mean girl'로 간주되는 이유는 결과적으로 제니스 역시 레지나와 비슷한 방법으로 사람들에게 상처를 주기 때문이다.
겉보기에 제니스는 파벌에서도, 외모와 태도에서도 레지나와는 확연히 다르다. 제니스는 내심 이에 대한 불만과 자격지심이 있다. 그리고 파벌싸움에서 상위에 있는 레지나 무리를 속으로는 부러워한다. 케이디가 레지나 무리와 점차 가까워지자 케이디에게 '스파이'가 되어 레지나를 골탕 먹이라고 제안한 이유다. 이 역시 결국 타인을 조종해 자신의 욕망을 채우는 행위이지만, 우리가 제니스를 좀 더 이해할 수 있는 이유는 이 감정을 한 번쯤 느껴봤기 때문이다. 내가 질투하고 있는 대상을 보면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고 했던가. 사실 제니스가 레지나를 미워한 이유는 단순히 레지나가 'bitch'여서가 아니라 내심 선망하고 있는 그녀와 친해지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녀를 추앙하고 싶은 욕망을 본인에게 용납할 수 없었던 것이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은 영화의 유명세만큼이나 수많은 밈이 탄생했다. 가장 유명한 밈은 레지나가 하는 것마다, 그녀가 하는 아주 사소하고 이상한 습관조차 우르르 따라 하는 아이들을 보여주는 장면이다. 아이러니하지만 우리는 추앙받는 욕망 못지않게 추앙하고 싶은 욕망 또한 있는 것이다. 레지나의 승인, 그녀가 지나가듯 던지는 칭찬 하나에 내 하루가 환해지는 기분을 느끼는 아이들이 보여주는 표정이 주옥같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집단에 속하고 싶어 한다. 이는 생존 본능에서 비롯된 것으로, 집단에서 소외되지 않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다. 누군가 나를 승인해 주면, 그 사람이나 그룹이 나를 받아들였다는 신호로 느껴져 소속감을 얻는다. 이는 사회적 유대를 강화하고, 관계에서 안정감을 느끼게 한다. 승인과 인정이 주는 '안정감'은 자기 계발 시장을 탄생시켰다. 내가 좋은 삶을 살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 내가 좋은 사람임을 확인받고 싶은 마음은 나를 더없이 조급하게 한다.
이를 위해서는 타인에게 취약성을 직접적으로 드러내는 용기가 필요하다. 내가 타인의 시선에 의존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어떤 식으로든 우리의 불완전함과 외로움을 인정하고, 자기 자신에게 가장 큰 힘을 실어줄 수 있는 존재가 바로 다른 사람들이라는 사실 또한 인정하는 것이다.
관심과 사랑을 원하는 마음을 순순히 스스로에게 먼저 인정하는 것은 건강한 자존감을 만든다. 사람은 자기 내면의 약점을 드러내고, 그것을 자기 수용(self-acceptance)으로 승화시키는 법을 배울 때 비로소 진정한 내면의 강함을 가질 수 있다. 그리고 이것이 가능해질 때 비로소 타인의 취약성 또한 존중할 수 있다. 단순히 타인에게 기대를 거는 것이 아니라, 타인에게 취약성을 드러내며 진정성 있는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다.

영화의 마지막에선 하이틴 영화의 법칙처럼, 주인공은 모두와 화해하고 각자의 해피엔딩을 맞는다. 레지나는 공격적인 에너지를 운동에 발산해 교내 운동선수로 활약한다. 케이디는 좋아하는 수학에 몰두해 '너드 무리'들과 함께 수학경시대회에서 팀을 우승으로 이끈다.
이 결말은 거울 자아 이론(Looking-Glass Self)이 떠오른다. 우리는 타인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통해 스스로를 인식한다는 이론이다. 누군가가 나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나도 스스로를 더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결국 우리는 있는 그대로의 나를 긍정적으로 봐주는 사람과 함께할 때, 나를 언제든지 '퀸카'로 봐주는 사람과 함께할 때 진정으로 빛나는 셈이다.
<퀸카로 살아남는 법>이 가르쳐주는 건강한 자존감, 건강한 사회생활
나는 누구를 질투하고 무엇을 욕망하고 있는가?
추앙받고픈 욕망이 지나쳐 나르시시즘으로 변모하진 않았는가?
솔직해도 된다. 오히려 나의 못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사람을 찾을 수 있는 게 중요하다.
인생은, 내가 뭘 해도 괜찮다고 말해주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이니까.
Cinema Therapy
사회에서 (행복하게) 살아남는 법은 고등학교에서 살아남는 것과 같다.
1. 이미 존재하는 무리 중 나를 환영하는 무리에 들어간다.
2. 없다면 내가 직접 나와 맞는 사람들을 찾아가서 무리를 만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