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손 무릎을 쓸어내려오네
사랑이 뻐끔뻐금
새싹이 한들한들
나뭇잎이 흔들흔들
지휘자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아이들
곡 하나가 끝날 때마다 그 손짓에 따라
앞에 나왔던 아이들이 먼저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실기둥이 하나씩 올라오네
소리가 뻐끔뻐금 이곳에 닿네
사랑은
손 무릎을 쓸어내려오네
1. 오스트리아 문화 사절단
ⓒ 유진
빈 소년 합창단의 1부 공연이 끝나고 인터미션이 시작되자, 조용했던 관객석이 와글해지는 사이 나는 무대를 멀찍이 두고 앉아 지나온 시간들을 주워 담기 위해 무선 이어폰을 끼고 휴대전화를 꺼내 메모창을 켰다.
아이들이 사이좋게 뭉쳐 있다가 몇 명씩—이를테면 여섯 명씩, 때로는 네 명씩(다만 그때는 바이올린 두 대를 뒤로 두고)—정말 다양한 형태로 무대 구성이 바뀔 때마다 그 서로 다른 디테일을 다 기억할 수 있으면 좋을 텐데, 하며 아쉬운 기억력을 조용히 원망했다.
그나마 정말로 잊고 싶지 않은 단어들을 몇 개라도 주워 담았는데, 그게 사랑이었고 손이었으며 무릎이었다.
모두가 아는 빈 소년 합창단, 게다가 모차르트반이라니—순수에 가까운 합창단일 거라고만 상상했지 이렇게 꼬물꼬물, 프로페셔널한 뮤지션들의 살아 있는 웃음꽃일 줄은 몰랐다.
사실 이날 무대는 한국 관객을 향한 배려가 돋보인, 친절함의 밀도가 높은 공연이었다. 지휘자 마누엘 후버가 첫 곡이 끝난 뒤 건넨 인사부터 합창단 단원들의 곡 설명까지 모두 한국어로 진행되었고, 외국어는 노래할 때와 곡 제목을 말할 때뿐이었다.
ⓒ 유진
공연을 위해 한국어를 열심히 공부했지만 아직 서툴다. 그럼에도 공연을 즐겨 주시면 좋겠다고 말하는 지휘자라니.
이렇게 상냥할 수 있나 싶었고, 이렇게 분주히—보여줄 수 있는 장기를 다 내어줘도 되나 싶었다. 아이들은 곡에 맞춰 바이올린을 연주하고, 박수는 물론 북을 치고 작게 셰이커도 흔든다.
지휘자는 또 어떤가. 지휘와 동시에 피아노를 연주하고, 오스트리아 민요가 나올 때면 아코디언까지 들어 올려 단원들을 위트 있게 통솔한다. 그러다 나중에는 파리채로 뒷통수도 맞는다. (아야!)
이렇게 볼거리가 많은 공연일 줄은 몰랐다. 덕분에 큰 이벤트에 초대받은 기분이었다. 이제 1월이 끝나가는 이 시점, 신년 음악회의 마지막을 장식해 준 우리의 빈 소년 합창단.
곡이 끝나고 나면 지휘자 선생님의 신호에 따라 고개를 아주 깊이 숙이고, 양손을 다리 위에 얹은 채 무릎을 향해 스윽—손을 내려 인사하던 아이들. 그 모습이 이상하리만큼 오래 기억에 남았다.
ⓒ 유진
2026년 1월 25일, 롯데콘서트홀에서 빈 소년 합창단의 2026 신년음악회 마지막 공연이 열렸다.
이번 공연은 지휘자 마누엘 후버가 이끄는 모차르트반의 무대로 진행됐다. 강릉아트센터를 시작으로 울진연호문화센터, 제천예술의전당, 창원 3·15아트홀, 대구콘서트하우스, 평택아트센터, 군포문화예술회관을 거쳐 서울에 이르는 일정이었다.
그 여정의 끝에서 열린 롯데콘서트홀 공연이 이번 신년 투어의 마침표였다. 무대의 주제는 ‘Made in Austria’. 오스트리아 음악의 전통과 정체성을 중심에 둔 프로그램으로 구성됐다.
2. 바쁘다, 바빠! 모차르트반과 마누엘쌤
ⓒ 유진
신이시여, 우리를 강건하게 하소서
전등이 ‘탁’ 켜지듯, 아이들의 어린 화음이 무대 여기저기에서 탁, 탁 틔어나온다.
단원들이 서 있는 자리마다—참새가 먹이를 지닌 어미 새를 향해 고개를 내밀고 뻐끔 입을 벌리는 것처럼, 봉긋이 모아져 있던 꽃잎이 팡 하고 피어나는 것처럼— 소리의 물결이 위로 곧게 향한다. 신실한 잔향의 그림자를 이끌고서.
아베 마리아, 그리고 천사의 양식
내 세상에서는 처음 듣는 아베 마리아였다. 이게 생상스의 아베 마리아구나. 첫 도입부의 ‘아베 마리아’에서 내가 알던 성스러운 마리아가 아니라, 잔물결이 많은 ‘마리아’여서 신기했다. 하나로 부드럽게 모여드는 속삭임이, 축복의 흐름처럼 머물렀다. 이어진 ‘천사의 양식’도 그러했다. 소년 합창단이기에 청중에게 전해줄 수 있는 아이들만의 영롱한 음색이 가득했다.
내 꿈의 도시 비엔나
나의 나라의 것은 아닐지라도, 듣자마자 닿아오는 정겨움이 있다. 먹구름 하나 없이 쨍할 정도로 새하얀 햇살과 하늘색 배경, 머리카락을 흔드는 산들바람. 맨살로 닿아도 아프지 않은 초록빛 풀잎 위에, 키가 서로 다른 꼬마 아이들이 앉아 있는 풍경이 떠올랐다.
야호, 티롤 소년아
지휘자가 건반을 연주하다가 피아노 오른편에 놓여 있던 검은 상자를 들어 올렸다. 상자가 아니라 아코디언이었다. 저게 뭐지—하고 있는 사이, 단원 두 명이 바이올린을 들고 무대 중앙으로 나왔다.
바이올린과 아코디언이라니. 합창단의 목소리만 기대하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찾아온 바이올린 튜닝 소리라니!
아코디언을 들쳐멘 채 아이들을 이끄는—그야말로 인솔하는—장면은 듣기만 해도 흥이 오르는 컨트리풍의 멜로디와 맞물렸다. 아이들은 지휘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은 채 집중했다.
때때로 노래를 잠깐 멈춘 사이에는 아코디언과 두 대의 바이올린이 남은 흐름을 이어받았다. 흰색 세일러 제복 상의에 짙은 남색 칼라와 스카프를 한 두 명의 소년 바이올리니스트, 연미복을 갖춰 입은 지휘자의 아코디언 연주, 그리고 그 사이를 채우는 소년 합창단의 노래까지—생각만 해도 보기 좋은 장면이 아닌가.
나의 소녀, 나의 곱슬머리 소녀
이날 공연에서 가장 잊지 못할 곡을 꼽자면, 이 곡이 아닐까. 아코디언과 두 대의 바이올린이 서정적인 구름이 되어, 잊지 못한 것을 그리워하는 마음을 다정히 달래주고—아이들은 가만히 서서, 때로는 몸을 살짝 흔들며 노래를 불렀다.
가사를 알아듣지 못해 아쉬웠던 마음도 저절로 달래졌다. 모르면 뭐 어떤가. 이만한 온정이 가득하니 관객석 모두가 계속 웃고 있었다.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아코디언과 바이올린. 기회가 된다면 꼭 다시 만나고 싶은 조합이었다.
아름답고 푸른 도나우
피아노가 물방울을 툭, 툭, 툭 떼어 놓으면 아이들이 톡, 톡, 톡 음을 떠올린다. 조심스레 도나우를 그리는 물결이 되고, 물방울로 튀어 오르며 반사되는 햇살이 된다. 이쯤 되면 그냥 몸을 맡기면 된다.
트리치 트라치 폴카
귀여운 파랑새들이 바쁘게 짹짹, 그 조그만 입으로 폴카를 춘다. 바쁘다 바빠, 모차르트반. 가사 하나도 놓치지 않고 피아노 건반과 합을 딱딱 맞추며, 포인트 구간의 재미를 다 살려 호다닥 노래 속을 달려 나간다.
봄의 소리 왈츠
바이올린 솔로의 등장이다. 피아노가 장미빛 카펫을 길게 내려 깔아 주면, 꽃망울과 바이올린이 때때로 점프할 때마다 순간순간 걸음을 맞추는 절묘한 조합이 고개를 까닥까닥하게 만든다. 빈의 선율이 선창하고, 뒤이어 현의 선율이 대답하는 장면은 또 어떤가. 어디든 포기 없이 나아갈 수 있을 것 같았다.
ⓒ 유진
알 마야
2부가 시작되고 단원들이 무대 위로 자리를 잡는다. 삼삼오오 계단식 무대 위에 몇 명씩 나란히 서는 방식이 아니라, 악기를 든 몇 명의 아이들을 제외하면 전원이 합창석을 바라본 채 간격을 두고 서서 차분히 노래를 시작했다. 북 같은 타악기로 분위기를 띄워 올리며 열을 맞춰 촥! 뒤돌아서는데 하나같이 나름의 절도가 있었다.
여름의 송가
프로그램 노트에 따르면 스웨덴은 기온이 조금만 올라가도 그때를 여름이라 부른다고 하더라. 우리가 점점 줄어드는 것만 같아 더 아쉬운 봄과 가을, 짧게만 느껴지는 그 계절을 스웨덴은 ‘여름’이라 부르는구나.
계절을 기리는 송가라니. 뜨거운 뙤약볕, 흐르는 땀방울, 얇아진 옷차림, 돋아나는 잎사귀까지—쉽게 지나친 것들에 이런 사랑이 깃들어 있음을 알았다.
아리랑
처음 피아노 반주를 가만히 들었을 땐 이 곡이 내가 아는 그 곡인 줄 몰랐다가, 멀지 않아 눈치챘다.
잊지 못할 여름을 지나오니, 내 나라의 말과 노래가 있는 곳에 속해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렇지 않은—권리로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당연히 누릴 수 있는 곳에 태어난 것이 그저 감사하게 느껴졌다.
아이들에게 이 곡은 어떻게 닿아올까. 나에게 ‘아리랑’은 어떤 곡인가. 글쎄. 아마 한국인이라면 대단한 사연이 없더라도, 듣기만 해도 찰나보다 더 짧게 스쳐 가는 겹겹의 계절들 속 사정에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찡해지는, 그런 곡일지도 모르겠다.
산유화
시인 김소월의 시 ‘산유화’가 노래가 되었구나. 공연이 끝나고 나면 그의 시를 다시 읽어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산에는 꽃 피네
꽃이 피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피네
산에
산에
피는 꽃은
저만치 혼자서 피어 있네
산에서 사는
작은 새여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
산에는 꽃 지네
꽃이 지네
갈 봄 여름없이 꽃이 지네
— 김소월, 〈산유화〉
무지카 포에티카 중 여섯 곡, 그리고 다시 눈이 녹기 시작할 때
리듬을 두드리고 몸을 움직이며 자연스럽게 음악을 익히는 아이들의 세계라 그런지, 가사는 무척 단순하게 들린다. ‘라라라’ 콧노래를 흥얼거리듯, ‘라’를 반복하며 징글벨 송을 부르듯 신이 나게 도돌이표를 그린다.
무지카 포에티카 중 여섯 곡을 지나 오스트리아로 돌아오자 지휘자가 기다렸다는 듯 아코디언을 보태 주니 흥이 돋아난다.
노래 제목이 ‘언젠가 다시 눈이 녹아 아름다운 봄이 오면’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는데, 흰 눈의 아름다움 속에서도 봄의 정경을 그리는 우리의 작은 욕심이 보인다. 가사를 알 수 있다면 좋을 텐데—그런 생각이 들 정도로 흥얼거리기 좋은 요들송 같은 가사들이 자꾸만 되돌아왔다.
무슨 뜻일까. 흥겨운 박수 소리와 끝에 아코디언으로 귀여운 장난을 치는 지휘자를 보며, 기분 좋은 웃음을 던진 채 한참을 궁금해했다. (짝! 짝! 짝! 짝! 짝!)
파리 사냥, 푸른 도나우 블루스, 환희의 송가, 라데츠키 행진곡, 마슈 키 나다! 그리고?
전례 없는 비장한 시작이다. 사냥의 시작을 알리는 은은한 경고처럼. 오른편 앞줄의 한 아이가 번뜩 손을 들어 올리는데, 그 손에 들린 것은 다름 아닌 파리채였다.
파리가 날아다니는 방향을 이정표 삼는 목소리를 따라, 파리채를 든 아이가 슬그머니 앞으로 튀어나와 사방을 뛰어다니며 우당탕탕 사냥을 시작한다. 진짜, 그야말로 우당탕탕이었다.
롯데콘서트홀 무대를 이렇게 자유분방하게 오르내리며 뛰어다니는 아이가 있다니. 그 자체로 웃음이 났는데, 한참 잡지 못하던 벌레가 지휘자의 뒷통수에 붙었는지 슬그머니 다가가 팍!! 내려치는 순간—관중석에 만개한 웃음소리가 아직도 선연하다.
그래서 파리를 잡았냐고? 글쎄, 그건 비밀이다. (쉿)
1부의 ‘푸른 도나우’가 색다른 리듬감을 피아노 위에 얹은 채 돌아왔다. 그냥 즐기기만 하면 된다. 그야말로 블루스 타임이지 않은가.
가스펠 버전의 ‘환희의 송가’는 또 어떤가. 천상의 목소리라기보다는 아이처럼, 능숙하기보다는 조금 더 joyful하게. 단원들이 박수를 얹는 순간 관객들도 살며시 흥을 맞추니, 이만한 축제가 또 없겠다.
곡이 끝나고 앞에 나와 노래한 두 명의 단원이 고개를 깊이 숙여 인사한 뒤, 서로의 주먹을 맞부딪치며 톡! 인사를 나누던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마무리로 달려 나간 ‘라데츠키 행진곡’에서는 청중들과 호흡을 맞췄다.
아이들의 호흡에 따라 울창하게 퍼지는 어른들의 박수 소리는 ‘아구, 잘해. 아구, 잘해’라고 말하는 듯했고, 아이들의 속삭이듯 사랑스러운 음색이 묻히지 않을 정도의 세기로 ‘짝, 짝, 짝’ 박자를 맞춰 나갔다.
자연스럽게 이어진 ‘마슈 키 나다!’, 그리고 앵콜로 이어진 방탄소년단의 '다이너마이트'와 로제의 '아파트'까지. 바쁘다 바빠, 빈 소년 합창단의 신년 음악회의 가볍지 않은 사랑이 이렇게 끝이 났다.
곡이 끝날 때마다, 아이들은 같은 방식으로 인사했다.
양손을 다리 위에 얹고, 무릎을 향해 스윽—
손을 내려.
3. 우리에게 남겨진 것
ⓒ 유진
앙코르까지 모두 잘 마치고, 정말 안녕을 고하기 위해 지휘자가 번쩍 손을 들어 올려 반짝반짝 인사를 했다. 아이들도 한 손을 들어 올린 채, 그렇게 무대 밖으로 빠져나갔다.
수많은 인파 속에서 공연장을 빠져나와 1부가 끝난 뒤 써 두었던 메모장으로 다시 돌아갔다. 잊고 싶지 않은 장면이 여전히 그 자리에 그대로 있어, 꽤 안심이 되었다. 어디, 다시 살펴보면 어떨까.
ⓒ 유진
사랑이 손 무릎을 쓸어내려오네
사랑이 뻐끔뻐금
새싹이 한들한들
나뭇잎이 흔들흔들
지휘자에게 시선을 떼지 않는 아이들
곡 하나가 끝날 때마다 그 손짓에 따라
앞에 나왔던 아이들이 먼저
깊게 고개를 숙여 인사하니
실기둥이 하나씩 올라오네
소리가 뻐끔뻐금 이곳에 닿네
사랑은
손 무릎을 쓸어내려오네
가끔, 너무 좋은 공연을 보면
시를 쓰게 된다.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