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진 선생님,
이번 조간호에 실린 새로운 수필 잘 보았습니다.
고향에 대한 묘사는 너무도 아름다웠지만, 몹시 슬펐습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있을 수 없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선생이시여, 슬픔을 안고 계시나이까?
그렇다면 그 슬픔을 나누어 주소서.
그리고 거기 따르는 길을 지시하여 주소서.
삼월 십일, 히카루로부터.
동경에서 유학을 하던 작가 지망생 ‘세훈’은 자신의 필명인 ‘히카루’라는 이름으로, 가장 좋아하는 소설가 ‘해진’에게 팬레터를 보낸다. 이에 해진은 자신이 글 속에 숨겨둔 깊은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에 감격하며 답장을 쓴다.
나는 나와 같은 슬픔을 가진 이를 늘 그리워했습니다.
당신을 만나면, 한없이 존경하겠습니다.
그렇게 세훈과 해진은 계속해서 편지를 주고받으며, 서로에게 슬픔을 나누는 유일한 사람이 되어준다.
그 후 세훈은 경성으로 돌아와 문인 모임 ‘칠인회’의 급사로 일하게 된다. 그리고 해진이 칠인회의 일원이 되면서 둘은 만나게 된다. 그런데 해진은 얼굴도 모르는 히카루의 존재로 인해, 앓고 있는 병을 견디고 하루 종일 답장을 기다릴 정도로 ‘그이’를 애절하게 사랑하고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며 세훈은 그가 자신이 히카루라는 것을 알면 분명 실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세훈은 끝내 사실을 말하지 못하고, 해진과 ‘히카루로서’ 편지를 계속 주고받기로 결심한다. 그것이 세훈과 히카루, 그리고 해진 그 모두를 위한 선택이라고 믿으면서.
그런데 편지를 주고받을수록 히카루에 대한 해진의 사랑과 그녀에 대한 궁금증은 날로 늘어간다. 심지어 해진은 그녀를 직접 만나고 싶어 한다. 세훈은 이 진실을 끝까지 숨길 수 있을까?
이 작품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것을 꼽자면, 바로 여성의 모습을 띤 세훈의 또 다른 자아, 히카루였다. 히카루는 세훈이 마음껏 글을 쓰기 위해 지은 필명이지만, 그 이상의 존재였다. 세훈의 글에 대한 재능과 사랑 그리고 (인정받고자 하는) 욕망이 인격화된 형상이다.
처음에 그녀는 세훈과 함께 해진에게 보낼 편지를 쓰기도 하고, 작가가 되고 싶은 세훈을 북돋우기도 하며 그의 가장 친한 친구처럼 보인다. 그러나 점점 거짓말을 하는 날이 늘어갈수록 불안해하는 세훈을 안심시키는 것을 넘어, 사실을 말하지 못하게 몰아붙이고 그를 조종하기까지 한다.
히카루는 글에 대한 세훈의 재능이 인격화된 존재답게 허구의 상황을 설정하고 그럴듯한 거짓말을 만들어내는 것에 능통했다. 이러한 거짓말들로 쓴 편지로, 그녀를 사랑하는 해진까지 휘어잡는다. 이는 히카루가 해진에게 직접 다가가 눈을 맞추고 얼굴을 만지기도 하는 등의 연출로 표현된다.
또한 해진과 히카루가 공동 소설을 쓰기로 한 이후, 해진이 병으로 위독한 상태임에도 히카루는 계속해서 해진에게 펜을 잡게 한다. 이러한 연출을 통해 해진에게 살아갈 힘을 주었던 그녀가 결국 그를 죽어가게 했음이 드러난다. 즉 히카루는 세훈뿐 아니라 해진에게도, 빛이자 악몽이었던 것이다.
나는 <팬레터>를 보면서 내가 좋아하는 다른 작품이 자꾸만 생각났다. 그 작품도 이야기의 중심에 ‘편지’가 등장한다. 바로 뮤지컬 <디어 에반 핸슨>이었다.
<팬레터>와 <디어 에반 핸슨>은 모두 ‘편지’로 인해 주인공이 거짓말을 시작하고 나서 불안함 속에 그것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는 서사를 지니고 있다. 또한 그 거짓말을 계속 이어가게 유도하는 자아가 한 명의 캐릭터로 표현된다는 점 또한 비슷하다. (<팬레터>에서는 그 캐릭터가 ‘히카루’라면, <디어 에반 핸슨>에서는 ‘코너’다.)
두 작품의 주인공 ‘세훈’과 ‘에반’은 왜 거짓된 환상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었을까. 흥미롭게도 그 이유 또한 동일하다. 누군가를 실망시키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랑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특히 세훈은 어린 시절 어머니를 여의고 자신에게 아무도 관심을 주지 않는 가정 환경 속에서 자랐다. 그래서 자신에게조차 사랑받지 못한 채 컸다. 이러한 자신을 세상이 알아보게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히카루’일 때였다. 해진의 따스한 답장과, 그와의 공동 소설에 대한 세상의 주목은 세훈에게 ‘처음 받는 사랑’이었다. 그 사랑을 사랑을 잃고 싶지 않아서 더욱 세훈은 히카루라는 가면 뒤에 숨어 버린다.
다들 예상했겠지만 세훈의 거짓말은 결국 들통나 버린다. 그리고 “고백”이라는 넘버를 통해 해진에게 자신이 그동안 저질렀던 잘못을 고백한다. 이렇게 <팬레터>는 넘버라는 장치를 통해 자칫 허무하고 썰렁할 수 있는 극의 절정 부분을 감정적으로 극대화해서 극적으로 연출해낸다.
또한 이 작품은 모든 진실을 알게 된 해진이 히카루에게, 아니 세훈에게 죽기 전 마지막으로 남긴 편지 또한 하나의 넘버로 풀어낸다. “해진의 편지”에서는 해진도 히카루가 사실 세훈이라는 것을 어렴풋하게 짐작하고 있었지만, 잘못된 환상에서 깨고 싶지 않아서 그 진실을 애써 외면해왔음을 말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속인 세훈에게 분노하기보다, 그가 히카루임을 받아들인다.
너의 말들로 그때를 내가 버티었다.
그게 누구라도, 편지의 주인을 나는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결같이 너의 답장을 기다리마.
삼월 십칠일 해진으로부터.
편지라는 건 참으로 특별한 매력이 있는 문학인 것 같다. 글을 읽는 대상이 뚜렷하게 정해져 있고, 편지의 내용은 다름 아닌 그 사람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자기 자신만이 가진 문체로 정성스레 적어 내려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팬레터>는 작중 인물들이 주고받는 이러한 편지들을 뮤지컬만이 할 수 있는 방식으로 아름답게, 탁월하게 풀어낸다. 따뜻하고 리드미컬한 멜로디와 함께, 등장인물들의 실제 모티브가 된 작가들의 문학 작품을 차용한 가사로 <팬레터>만의 서정적인 분위기를 만들어 관객들을 홀린다.
낮게 드리운 하늘 아래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답답한 시대에 조선의 순수문학의 아름다움을 지키고자 한 문인들의 열정과 그 속에서 누군가가 주고받았던 가슴 아린 ‘팬레터’를 엿보고 싶다면 칠인회로 발걸음을 돌려보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