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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인간의 관계와 연대로 기름칠한 공상 과학 소설 [도서]

이제는 만인의 최애 작가 김초엽의 단편소설집,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by 이유은 에디터
2026.01.22 21: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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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는 당연히 옳다고 여긴 것들이 후에 전혀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경우가 더러 있다.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데에는 여러가지 요소들이 있지만, 그중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가치관의 변화이다. 인간은 생애 전반에 걸쳐 경험한 것을 바탕으로 자신만의 가치관을 확립, 변화시킨다. 주로 새로운 집단과의 조우나 타인과의 관계 등이 이를 촉진시킨다. 전혀 다른 사람들이 전혀 모르는 환경에서 마주할 때, 그 관계에서 비롯된 서로에게 미치는 커다란 영향을 책속의 작품 하나를 통하여 이야기하고자한다.

 

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2019, 허블)은 많은 이들의 최애 소설가로 꼽히는 작가 김초엽의 SF 단편소설집이다. 생화학을 전공한 이력을 살려 과학적 지식을 바탕으로 창의적인 미래세계를 구현해내어 출간 이후 베스트셀러 매대에서 한번도 내려오지 않는 기염을 토했다. 김초엽 작가의 작품이 이토록 사랑받는 이유에 단지 소재의 신선함만 있는 것은 아니다. 과학적 소재 특유의 뻑뻑함을 인간의 관계와 연대로 풀어내어 기름칠 한다. 예나 지금이나 인류 최대의 숙제로 꼽히는 인간관계의 기묘함은 과학적 이성이 지배한 미래세계에서도 적용되는 지점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야기의 중심이 되는 사건의 시작에는 늘 인간관계가 존재한다. 관계로 인해 이들은 난관에 부딪히기도, 궁금증을 해소하기도 하며 성장한다. 다양한 일곱가지 이야기 중, 가치관이 다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로 전개가 시작되는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고자 한다.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_김초엽

 

가치관의 변화가 가장 확연히 드러나는 인물은 ‘릴리 다우드너’이다. 처음 릴리는 사회적 약자의 위치에 놓여 다소 심한 자격지심을 안은 채 가치관을 형성한다. 그녀는 유전자 검사를 하지 않아 얼굴에 커다란 얼룩을 가지고 태어나게 만든 부모를 원망하며 자란다. 자신의 신체적 결함에 자격지심이 심했던 그녀는 과학적으로 뛰어난 자신의 능력을 이용해 유전자 조작 암시장 해커 ‘디엔’으로 변모한다. 그녀는 결함이 없는, 부모들이 원하는 ‘완벽한’ 아기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그녀의 정체를 그 누구도 알 수 없었으며 모든 관계를 단절한 채 살아간다. 그녀의 활동으로 세계는 완벽한 아이들이 다수를 이루게 되고 세상은 이들을 ‘신인류’라 부르며 그들만의 사회를 구축한다.

 

릴리의 모습에서 가치관 형성에 영향을 미친 인간관계들을 찾아볼 수 있었다. 첫번째로, 부모가 있다. 부모에 대한 원망을 안고 자기 자신을 경멸하며 살아간 그녀는 완벽함만을 추구하며 완벽한 사회 추구에 가치를 두는 어른으로 성장했다. 윤리와 비윤리를 따지지 않고 불법적이지만 이익이 큰 부정한 일을 거리낌 없이 진행한다. 그녀의 심리적 결여를 알아차리고 도우려는 노력을 했다면 그녀는 달라질 수 있었을 것이다. 두번째로, 단절적 성향의 주변인들이 있다. 그녀의 주변에는 그녀를 이끌어 줄 올바른 친구도, 동료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녀가 자발적으로 숨어버린 탓도 있지만 그 이전에 그녀의 아픔을 이해하고 존재 자체를 인정해 줄 사람이 아예 부재했다.

 

와중에 릴리는 자신의 아이를 탄생시키고자 하는 생각을 품는다. 유전자 조작을 통해 아이를 만들어내는 과정에서 실수로 아이는 그녀와 똑같이 얼굴에 얼룩을 지닌 채 태어날 운명을 맞는다. 사전 검사 과정에서 릴리는 아이의 결함을 발견했지만 차마 지우지 못하고 아이를 탄생시킨다. 이미 그녀의 유전자 조작 프로그램으로 인해 신인류들이 다수를 이룬 사회가 되어버린 세상은 릴리의 아이가 살아가기에는 부적절한 환경이었다. 아이만은 행복하게 하기 위해 그녀는 다른 행성에서 아예 새로운 세계를 비밀리에 창조한다.

 

여기서 릴리의 가치관이 크게 변화함을 느낄 수 있다. 완벽함만을 추구하던 그녀가 자신과 똑같은 결함을 지닌 아이를 탄생시켰을 때, 그녀는 자신의 어린시절과 조우했을 것이다. ‘이로써 나는 태어날 가치가 없는 삶이었음을 증명하는 것인가?’ 그녀의 생각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자신의 자격지심에서 비롯된 부정적 가치를 버리고 생명 고유의 가치와 개성을 추구하도록 변한 것이다. 그녀의 아이, 물론 언어적 교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아이의 존재만으로도 릴리는 존재 가치에 위로를 받고 비로소 지키고자 하는 사랑을 느낀다.

 

*

 

릴리가 창조한 행성, 소설에서는 마을이라고 한다, 그곳에서 나고 자란 화자는 그녀의 흔적을 찾아 미성년의 상태에서 마을을 빠져나가 지구로 향한다. 성년이 되어야만 지구로 갈 수 있는 마을의 전통을 거역한 것이다. 그녀의 행동은 한 사람과의 관계에서부터 시작되었다. 그녀의 여행의 방아쇠를 당긴 인물은 성년이 되어 지구에 다녀온 한 남자였다. 모두가 행복해하며 돌아온 이동선에서 홀로 절망스럽고 슬퍼보였던 그 남자를 화자가 발견하면서 그 이유에 대해 탐구하고자 하는 호기심에 불을 지피게 된 것이다. 그가 지구에 소중한 사람을 두고 억지로 마을로 돌아왔다는 말에 화자는 사랑이 무엇인지 생각한다.

 

마을에서는 이성 또는 동성 간의 사랑, 연애가 전혀 이루어지지 않는다. 사랑을 나누는 것이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화자가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에 울부짖는 남자를 보고 지구라는 행성으로 가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이렇듯 누군가의 인간관계로 인한 슬픔과 고통이 또다른 누군가와의 관계를 통해 그 사람의 인생의 방향을 바꾸어버리기도 한다. 마을 밖의 세계에 대해서는 어떠한 정보도, 호기심도 없던 화자에게 한 남자의 사랑 이야기는 마을 밖에 관심을 갖게 되고 정보를 얻기 위해 금서 구역으로 향하게 만드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다.


금서 구역의 문지기는 의외의 리더십을 가지고 있다. 금서 구역을 자발적으로 찾아와 문을 두드린 사람은 딱 두 사람, 릴리의 아이인 올리브와 첫 장의 화자이다. 릴리가 영면에 들어가고, 홀로 마을에서 자라던 올리브는 릴리가 떠나온 지구에 대한 호기심으로 가득 찬다. 금서 구역의 문지기에게 찾아가 대화를 나누고 그녀의 어머니 릴리에 대한 금서를 요청한 올리브는 그것을 확인하고 지구로 향한다. 이후 시간이 흘러, 첫 장의 화자는 남자로 인해 지구에 대한 호기심을 느끼고 열흘동안 꾸준히 금서 구역을 찾아가 꽃을 돌보았다. 화자는 자신의 장기를 최선을 다해 보여주었다. 꽃이 만개하고 아름다움에 눈이 멀 지경에 이르자 문지기는 그녀의 말에 반응한다. 문지기와 간단한 대화를 나눈 화자는 올리브의 기록을 보게 되고 지구로 향하기로 결심한다.

 

문지기는 올리브와 화자, 두 사람에게 각기 다르게 반응했다. 어찌보면 그들의 수준에 맞추어 반응을 한 것이다. 그들의 이야기를 주의깊게 듣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그들이 잘 해낼 수 있는 것은 무엇인지, 결정적으로 그들의 내면이 강렬히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잘 잡아내는 능력이 있었다. 문지기와 릴리, 올리브, 그리고 화자는 어떻게 보면 한 팀으로 볼 수도 있다. 한 팀으로 보았을 때, 원래 리더가 릴리였다면 그 역할을 이어 받은 것은 문지기이다. 문지기는 릴리의 영면 후 그녀를 닮은 두 아이들을 지구로 잘 인도한 안내자 역할을 잘 해내었다.

 

*

 

지구를 찾고 릴리의 흔적을 쫓던 과정에서 올리브는 지구인들의 차별을 경험한다. 릴리와 같이 얼굴에 얼룩을 가진 올리브는 지구인들, 그 중 유전자 조작을 받지 않아 ‘비개조인’이라 불리며 핍박받는 사람들에게마저 천대받고 조롱 당한다. 멸시의 나날을 보내던 중 올리브는 운명의 상대를 만난다. 자그마한 술집을 운영하는 ‘델피’이다. 델피는 유전자 조작을 당했지만 개발 과정 중 실패한 인물로, 피아노를 매우 잘 치는 강인한 여성이었다. 델피는 조롱받는 올리브를 돕고 편견 없는 눈으로 바라봐 주었다. 특히나 델피는 릴리의 존재를 들어본 유일한 인물이었다.

 

올리브와 함께 릴리의 흔적을 쫓으며 두 사람은 누구보다 서로를 아끼는 소중한 존재가 되어준다. 마을로 돌아온 올리브는 기록을 금서 구역에 남기고 지구로 돌아가 델피의 곁에서 영원히 잠든다. 척박하고 차별과 멸시가 넘치는 지구임에도 올리브는 델피와 함께하기를 선택한 것이다. 여기서 인간관계, 그 중에서 사랑의 힘을 확실히 느낄 수 있다. 마을에서 그 누구와의 연애적 교류도 겪지 않고 그에 대해 궁금해 하지도 않은 올리브가 처음으로 사랑과 의지의 감정을 느끼게 된건 척박한 환경의 지구에서였다. 상황이 여의치 않고 모든 것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절망적이어도 서로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사랑해주는 사람을 만난다면 그것이 지옥일지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을 얻을 수 있다. 올리브는 인간관계에서 오는 긍정적 영향을 받고 델피와의 사랑을 꽃피워 영원을 함께했다.

 

결과적으로 관계에 대해 배우고 그 영향에 대해 생각할수록, 인간관계는 모든 것과 유기적으로 연결되어있다는 점이 명확히 보인다. 인간에게 있어 관계는 필수적이며 이는 긍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부정적인 영향을 주기도 한다. 그럼에도 우리는 관계를 끊임없이 맺으며 부딪혀야 한다. 그것을 통해 서로의 다름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받을 수 있도록 개방적 태도를 지녀야 한다. 서로가 서로에게 반드시 필요한 존재이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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