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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아이유 ‘Last Fantasy’

   


내 인생 첫 다큐멘터리의 기억은 인간극장이다. 초등학생 시절, 등교를 준비하며 틀어놓은 TV에서는 오전 8시만 되면 익숙한 배경음이 흘러나왔다. 나와는 다른 삶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지도 못했던 나이에, 다큐를 보면서 무슨 생각을 했었나. 떠올려보면 그것은 그저 시간을 인지하는 수단에 불과했던 것 같다. 인간극장 OST가 흘러나오면 곧 집에서 나가야 했기 때문이다. 타인의 삶 보다는, 투니버스의 익숙한 만화 캐릭터들이 더 좋았을 시기였다.

 

하지만 그 이후에도 다큐멘터리는 내게 가까운 장르가 되지 못했다. 바다생물을 유난히 좋아했던 만큼 내셔널지오그래픽의 몇 가지 주제를 제외하고는, 특히 사람이 등장하는 다큐, 삶의 진정성과 깊이가 전면에 드러나는 다큐들은 더더욱 그랬다. 에세이를 좋아하고 사람의 내면을 알아가고 싶어하면서도 다큐멘터리에는 묘한 거리감을 느꼈던 것이다.

 

최근에야 다큐를 다시 볼 기회가 생겼다. 사람의 진짜 모습을 마주하기에는 오히려 다큐멘터리가 가장 직접적인 장르였을 텐데도, 나는 왜 그동안 가까이 하지 못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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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보고자 하는 이야기


 

내가 보는 영상은 한정적이고 명확하다. 내 유튜브 알고리즘은 구독 중인 채널을 제외하면 대부분 브이로그로 채워져 있다. 브이로그의 특징은 뚜렷하다. 남들에게 ‘보여주고 싶은’ 나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점이다. 잘 채워진 공간, 잘 꾸며진 일상, 그리고 정돈된 생각들을 비추어 영상들에서 나는 안정감과 동기부여를 얻곤 했다.


다큐멘터리는 그에 비해 투박하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들이 등장한다. 비교적 꾸밈 없는 상황 속에서 짜이지 않은 내면이 보인다. 그 내면은 거칠기도 하고, 어떤 때에는 너무 어둡게 느껴지기도 한다. 그 어두움은 영상의 분위기나 사람의 성격보다는 누군가가 감당해온 삶의 무게에 가깝다.

 

처음 그 무게를 마주했을 때 나는 어떤 감정을 느껴야 할지 알지 못해 혼란스러웠다. 공감과 거리두기 사이에서 방향을 잡지 못한 채 함께 밑으로 가라앉는 기분이 들곤 했다. 장면마다 둥둥 떠오르던 생각들에는 하나씩 무게추가 달렸고, 이내 조심스럽게 바닥으로 내려 앉아버렸다.

 

마음 속 바닥을 조심스럽게 짓누르는 그 감각이 버거웠기에 나는 다큐를 멀리해왔던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간과했던 사실은 그 무게추가 다큐멘터리 속 타인의 이야기에서 새로 생겨난 것이 아니라, 이미 내 마음 속에 존재하던 요소였다는 것이다.

 

 

 

내가 보아야 하는 이야기


 

그 사실은 어느 순간부터 다큐 내용을 이해하기 시작했을 때 알게 되었다. 사람의 삶은 모두 다르지만 상황마다 느끼는 감정의 결은 조금씩 걸쳐 연결되어 있었다. 4년 째 아픈 지인을 보살피고 있는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정, 전동장치 고장으로 계단을 오가지 못하게 된 사람에게서 느낄 수 있는 감정 등 여러 느낌들은 내가 겪어본 일이 아니었음에도 일정한 결을 따라 내 무게추에 연결 되었다.

 

미처 대비하지 못한 순간들이 만들어내는 날것의 모습들은 우리의 감정을 더 날카롭게 건드릴 수 있게 해주었다. 사람의 내면은 꾸미지 않았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이었다.

 

한때 나는 ‘왜 우리는 타인에게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할까’라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진 적이 있었다. 특히 나 같은 내향형 인간들은 그런 관심을 크게 바라지 않을 수도 있을 텐데. 하지만 브이로그나 드러나는 모습들만을 통해, 머무르는 관심은 누군가의 내면에 달린 무게를 덜어주기 어렵다는 사실을 다큐멘터리를 통해 깨달았다.

 

사람의 내면은 꾸미지 않았을 때 더 분명하게 드러난다. 우리가 타인을 대할 때, 그들이 우리에게 보여주고 싶어하는 이야기 뿐 아니라 준비되지 않은 순간에 드러나는 모습들을 바라보아야 하는 이유는 서로의 무게를 인식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가벼워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유사한 성질의 무게추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을 통해서. 감정의 공명은 삶을 버티게 만드는 최소한의 희망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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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다큐멘터리와 사람의 삶을 그대로 바라보는 일은 그런 점에서 의미가 있다. 무엇을 보여주고 싶다는 강박에서 벗어나 타인의 삶을 그대로 마주할 때, 우리는 상대의 마음 속 뿐 아니라 내 마음속에도 어떤 무게추들이 가라앉아 있는지를 감지할 수 있다. 그 무게를 인식할 수 있다면 타인의 삶을 판단하고 경중을 재기보다,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쪽으로 한 발 더 나아갈 수 있게 된다.

 

다큐멘터리가 내게 주었던 감당하기 어려운 타인의 감각은, 타인의 삶이 아니라 내가 외면해온 내 내면의 모습이었다.

 

 

 

이야기


 

이야기가 넘쳐난다. 보여주고 싶은 이야기들로 범람하는 시대다. 그렇기에 그 이야기들 사이에서 다른 관점을 읽어낼 수 있는 다큐멘터리는 더욱 소중해진다. ‘나의 아침이 누군가의 밤이란 아주 당연한 그 사실’을, 그 시간은 결국 연결되어 있음을 체감하게 되는 순간들. 그런 순간이 조금씩 더 많아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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