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아니스트 조성진의 '쇼팽 발라드 4번'
영화 ‘동주’를 봤다. 실제 인물의 삶을 다룬 영화는 유독 나와 깊은 대화를 나눈 듯한 잔상을 남긴다. 극 중 송몽규와 윤동주가 살았던 삶을 보면서, 두 사람이 느낀 시간의 길이는 정말 달랐겠다는 생각을 했다.
시간의 밀도를 느끼는 순간들이 있다. 늦은 밤 책상 앞에 가만히 앉아 텅 빈 벽을 응시할 때, 네온사인 없는 강변을 걸을 때, 밤바다의 파도를 바라볼 때, 주말 오전 10시 쯤 들어오는 햇빛을 바라보고 있을 때. 그렇게 빠르게 흐르던 시간은 초침 소리까지 읽히는 듯 차분해진다.
시는 그런 순간에 씌여졌을 것이다. 동주를 본 이후, 평소 어렵게만 느꼈던 시집을 한 권 샀다. 출근길 3정거장의 짧은 시간 동안 시를 읽다 보면, 시는 어쩌면 에세이보다도 내밀한 사람의 내면을 보여주는 장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어렸을 때 만들었던 셀로판지 안경처럼 시는 내 눈에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렌즈를 끼운다. 시인의 생각들을 곱씹으며 거리를 걷다 보면 어느새 익숙한 풍경들이 그 시어들에 둘러싸인 공간으로 변한다.
이는 소설과는 다른 갈래로 마음을 변화시키는 일이다.

‘공공미술 – 나정호’
소나기는 사람들을 몰아세운다.
그물에 걸린 새떼처럼 부둥켜안은 사람들이
미술관 건물 앞에 늘어 서 있다.
다급하게 실려온 젖은 그림들이
그대로 야외 전시장이 된다.
걸어 다니는 그림전이다.
미처 액자도 두르지 않은 나도
물먹은 수채화 한 점으로
미술관 모퉁이에 슬그머니 걸린다.
우산을 든 그림들이 흙탕물을 덧칠하고 간다.
나정호 시인의 시 ‘공공미술’이다.
같은 공간을 바라보는 시선에도 새로운 관점이 걸리면 여행이 된다. 갑자기 쏟아진 소나기에 대피한 사람들은 미술관 앞의 새로운 작품이 되었다. 이 시의 시선과 색채는 우산이 없어 투덜거리고 하루가 재수가 없다고 느끼던 마음을 또 다른 미술을 관람할 수 있는 시야로 바꾸었다.
이렇듯 시는 거창한 의미나 교훈을 전하지 않고, 시인이 경험한 밀도 있는 시간을 보여준다는 것에서 가치가 있다. 그 밀도를 받아들인 독자들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시간을 각자의 깊이에 따라 바꾸어가며 세상을 읽을 수 있다.
극 중 송몽규는 글보다 행동이 절실한 시대라는 의미에서 시의 무력함을 말한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에 남아 사람들의 시간을 변화시키는 시는 어쩌면 한 발의 행동 보다도 오랜 기간 동안 영향을 미칠 수 있는 깊은 무기이다.
당장의 현실을 바꾸지는 않지만, 시는 쓰는 이와 읽는 이를 연결하며 서로 다른 시간 속에서도 같은 순간을 건너게 한다.
느리고 차분한 힘을 가진 시의 매력을 한 번 쯤 느껴보기를 권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