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미술사의 흐름 속에서, 근대의 숨결과 현대의 몸짓이 맞물리는 교차점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일제강점기와 광복, 한국전쟁 등 격동의 시대를 통과한 예술가들의 고민은 오늘날 서울이라는 도시를 살아가는 현대 작가들의 감정과 이어진다. 100여 년의 시간을 건너며 이어지는 이들의 이야기 속에서, 미술은 결코 시대에 고립된 표현이 아니라 인문학의 거대한 흐름 안에 녹아든 사유임을 깨닫게 된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되어 있다. 1부 ‘나와 당신의 도서’에서는 경성과 서울의 풍경을 담은 작품들을 소개하며, 2부 ‘경계선 위의 존재들’은 시대적·사회적 체제 속에서 주변부로 밀려난 이들의 목소리를 조명한다. 3부 ‘계절을 통과하는 감각’은 사계절 풍경과 계절감을 담아내며, 4부 ‘내면의 소용돌이’는 예술가라는 자아가 지닌 욕망과 불안을, 5부 ‘삶에 흐르는 이야기’에서는 사랑, 우정, 연대 등 삶을 지탱하는 가치를 다룬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근대와 현대 작가의 작품을 한 주제로 엮어 감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더불어 각 장의 끝에는 현대 작가와의 인터뷰가 함께 수록되어 있어, 작가의 내밀한 사유와 세계관까지 엿볼 수 있다. 단순히 작품 해설에 그치지 않고, 마치 미술관에서 도슨트의 깊이 있는 이야기를 듣는 듯한 몰입감을 전해준다. 우진영 작가의 해설은 감상에 서사를 입히며, 독자가 한층 더 깊게 작품을 경험하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다.
1부에 실린 ‘풍경 너머의 이야기: 이상범과 권세진’은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 깊은 칼럼이었다. 특별히 한국화에 대한 관심이 있던 것은 아니었지만, 묘하게 시선이 머무르고 마음이 끌렸다. 이상범은 조선의 전통 산수화의 틀을 벗어나 초가집과 사람들의 삶을 담아냈다. 그의 작품 속에는 웅장하고 멋스러운 풍경보다도, 평범하고 소담한 일상이 자리한다. 오히려 이런 평범함이 더 자유롭고 편안하게 느껴졌다.
권세진의 <다중시점>은 또 다른 방식으로 일상을 해석한다. 한지에 먹을 사용한 수묵화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흑백 사진의 모자이크를 보는 듯한 오묘하고 독특한 구성이 인상 깊었다. 익숙한 장소조차 낯설게 보이게 만드는 이 작품은, 일상의 또 다른 얼굴을 제시한다. 평범한 풍경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하는 힘이 있었다. 칼럼의 마지막에 실린 문장, “바람이 말한다. 더디게 가을이 왔다고. 걷기 좋은 이 순간의 풍경들을 붙잡아 물들여보길. 먹이 번진다. 한국화를 보고픈 신선한 날이다.”라는 문장은 두 작가의 작품 세계를 절묘하게 잘 포착한 표현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현대 시대상 속 여성에 대한 시선이 담긴 2부 ‘시대 속 여성들의 목소리: 이인성과 정수정’도 기억에 남는다. 같은 ‘여성’이라는 위치에서, 서로 다른 시대에 살아간 두 인물이 어떤 방식으로 자아를 표현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었다.
이인성의 <노란 옷을 입은 여인상>은 일제강점기 ‘모던걸’의 이미지를 담고 있다. 샛노란 드레스를 입고 다리를 꼬고 앉은 채, 턱을 괴고 비스듬히 어디론가 시선을 던지는 여성의 모습은 당당하고 생기 넘친다. 이는 단지 미적 형상이 아니라, 당돌하면서 총명한 눈빛과 새초롬하면서도 자신감 가득한 자태를 통해 시대를 관통한 새로운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가 연애 시절 아내의 모습을 담았다는 이 작품은, 당시 ‘신여성’의 총명함과 당돌함을 자연스럽게 드러낸다.
반면, 현대 작가 정수정의 <뿔>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의 당당함이 느껴진다. 채도 높은 색감과 기묘한 문양, 무질서하게 흩어진 이미지들 속에 위치한 여성은 측면으로 돌아선 채 눈을 감고 피리를 불고 있다. 마치 스스로가 만든 상상의 세계에 몰입한 듯한 이 인물은, 자신의 내면을 향해 집중하는 듯하다. 여성의 자아가 외부의 시선에서 벗어나, 자기 세계를 창조하는 모습에서 깊은 자유와 힘이 느껴졌다. 정수정 작가는 인터뷰에서 “자유롭고 용기 있는 여성들의 서사를 존중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릴 것이다”라고 말하는데, 그 의도가 작품 안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근대와 현대 미술 잇기』는 총 47인의 작가를 통해 경성과 서울, 근대와 현대를 이어주는 다층적 감상의 장을 마련한다. 단순한 시대 구분을 넘어, 서로 다른 시대의 작가들이 어떻게 감정과 사유를 이어왔는지를 하나의 흐름 속에서 경험할 수 있게 한다. 미술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론, 도슨트처럼 작품을 천천히 음미하고 싶은 이들에게도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이 책을 통해, 우리는 다른 시대를 살았던 예술가들이 어떤 감정과 시선으로 세계를 그려냈는지를 함께 경험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