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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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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오피니언은 영화 <국보>의

줄거리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약 3주 전, 여행 계획을 세우기 위해 만난 친구와 충동적으로 심야영화를 보러 갔다. 이전부터 줄곧 좋아하던 일본 배우 '요시자와 료' 주연의 <국보>였다. 야심한 시각에 시작된 영화는 장장 3시간의 러닝타임이 지나서야 엔딩크레딧이 올랐지만, 정신은 잠이 아닌 영화 속 서사에 빠져 있었다. 사실 <국보>는 생각했던 것처럼 마냥 아름답기만 한 이야기는 아니었다. 다만 그러했기에 생경한 감정과 서사의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었다.

 

영화 <국보>는 일본의 전통극 가부키에서 여성 역을 전문적으로 맡는 남성 배우 '온나가타'를 연기하는 '키쿠오'와 '슌스케'가 서로를 통해 자신의 결핍과 욕망을 재발견하는 욕망의 연대기를 그린다. 이 욕망은 경쟁 상대의 존재를 통해 더욱 커지기도 하지만, 술수와 음모가 판을 치고 혈통을 통한 역할의 세습이 자연스러운 가부키 세계의 뿌리깊은 관습 속에서 극대화된다. 이 때문에 슌스케는 자신이 지니지 못한 키쿠오의 천부적인 재능을 원하고, 키쿠오는 끝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하지 않아도 그의 자리를 보전해줄 슌스케의 피를 갈망한다.

 

이렇게 두 사람은 온나가타로서의 자신을 증명하고자 자신의 생을 가부키에 바친다. 사람으로서 누릴 수 있는 뭇 행복을 포기하고 예술가의 정점에 오른 키쿠오는 '인간 문화재'가 된 후에야, 주변인들 뿐만이 아닌 자신마저도 도구로 쓰고 꿈을 이룬다. 금방 휘발해버릴 찰나의 순간을 위해 남은 인생 전부를 거는 예술가의 삶을 스크린 너머로 보며, 어쩌면 이것이 인간이기에 품을 수 있는 가장 순수한 욕망이 아닐까 생각했다.

 

 

 

영원한 자기증명의 욕망, 예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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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의 주연 중 한 명인 키쿠오가 막 가부키를 시작할 무렵, 키쿠오는 자신의 삶을 지탱하는 모든 것을 잃는다. 비록 야쿠자지만 아들을 가부키 배우로 키우고자 했던 욕심이 있던 아버지는 조직의 항쟁 중 사망하고, 어머니 또한 원폭으로 일찍 세상을 뜬다. 키쿠오에게 남은 선택지는 많지 않았다. 아버지의 복수가 실패로 돌아간 후, 가부키로 이름을 날리는 명망 있는 가문의 당주 '하나이 한지로'는 그를 거둬 아들 슌스케와 함께 온나가타로 키우기 위한 혹독한 교육을 시킨다.

 

그러던 중, 키쿠오가 어느 날 관람한 인간 국보의 무대는 앞으로의 삶의 방향을 결정하게 된다. 그가 목격한 것은 하얀 눈이 흩날리는 듯한 환상적인 광경이지만, 이는 실상 그를 가혹하고 고달픈 예술가의 삶으로 이끄는 인간적인 불행의 서막이기도 하다. 아버지이자 스승으로 모신 한지로와 둘도 없는 친구로 우정을 나눈 슌스케에게 더없는 열패감을 느끼며, 키쿠오는 점점 그 풍경을 다시 볼 수 있는 가능성에 심하게 집착한다. 그것이 마치 자신을 증명할 유일한 방법인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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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실 이러한 욕망은 키쿠오만의 것이 아니다. 극중에서 하나이 한지로는 당뇨병으로 시력도 잃어가는 와중에 '백호'의 칭호를 물려받기 위한 무대에 무리하게 오르다 숨지고 만다. 그의 이러한 극중 퇴장은, 그의 아내이자 슌스케의 어머니가 가부키를 하는 이들은 탐욕스럽다며 학을 뗐던 이유를 알기 쉽게 보여준다. 어쩌면 가족과 함께 보낼 수 있었던 여생을 무대 위에서 전부 소진해버리는 예술가의 삶은 결코 이해하기 쉬운 것이 아니다.

 

한지로의 삶이 예술가로서의 궤적을 남기는 동시에 가족들에게는 큰 상처가 되었듯이, 키쿠오에게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키쿠오는 생전 그가 자신에게 한지로의 이름을 물려줌으로써 비로소 인정받았다고 여겼던 듯했으나 슌스케의 애칭을 애타게 부르며 죽어가는 한지로의 음성에 깊은 절망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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혈연이 아님에도  뛰어난 온나가타 배우로서 그의 아들로 인정받았다고 여겼으나 키쿠오는 노력과 재능으로도 끝까지 가질 수 없는 것이 있다는 것을 절실히 느낀다. 그를 조건 없이 지지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키쿠오의 재능만이 그의 존재를 증명하지만, 동시에 그가 속하고 싶어하는 세상은 그를 끝없이 의심하고 사지로 내몰았다. 키쿠오의 예술에 절실함이 깃들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기도 하다. 현실 세계에서 그가 느끼는 슬픔을 해소할 수 있는 공간 또한 역시 가부키의 세계라는 아이러니는 예인으로서의 키쿠오와 가부키 세계의 밖에서의 키쿠오의 자아를 하나로 묶어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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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쿠오의 가장 인간적인 욕망은 이렇게 가부키를 향한 예술적 집념과 헌신으로 재탄생한다. 이로써 그는 관중의 시선과 마음을 사로잡는 훌륭한 온나가타로 거듭난다. 그로써 그가 온전히 얻는 것은 오로지 무대 위에서의 몰입의 순간이다. 영화 속에서는 인간적으로 그를 응원하는 이도, 예술가로서의 그에게 깊이 공감하는 이도 등장하지만, 그들이 건네는 그 어느 감정도 키쿠오가 가부키에 갖는 애증만큼 크지는 않다.

 

그 때문일까. 키쿠오의 곁에 머물렀던 여성들은 애시당초 여성이 가부키의 세계에 몸담지 못하는 것처럼 가부키로 점철된 키쿠오의 삶에 오래 머무르지 못한다. 키쿠오는 마음의 안정과 위안을 위해, 혹은 다시 한번 재기하기 위한 도구적인 목적으로 여성을 만나왔던 것으로 그려진다. 가부키 극을 하는 남성들이 예술로 인한 고뇌에 빠져 있을 때 여성들은 이들을 묵묵히 뒷바라지한다. 이 여성들은 남성들이 극에 온전히 몰입할 수 있도록 현실 세계를 지탱해주는 존재다. 다만 가부키 극에서 온나가타는 서사의 중심에 서지만, 현실의 그들은 너무나 많은 것들을 감내해야 한다.

 

키쿠오는 필연적으로 사랑에 실패하고 사랑을 포기할 수밖에 없다. 키쿠오는 자신의 피(야쿠자의 아들, 사생아의 존재)로 인해 한때 너무 많은 것을 잃었고, 타인의 피를 탐했다가 파국을 맞을 위기에 처했다. 현실 세계에서 키쿠오가 만들어낸 치정은 언제나 불행을 불러왔다. 키쿠오는 현재에 집중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행복을 포기하고, 그가 일전에 보았던 풍경을 찾아 헤매며 무대에 끝없이 오른다. 키쿠오가 걷는 예술의 길은 피와 눈물, 그리고 타인의 희생으로 만든 가시밭길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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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는 극도록 아름다운 예술의 순간을 연출하면서도, 이러한 예술 너머에 있는 지리멸렬한 인간의 삶도 노골적으로 그려낸다. 미(美)와 추(醜)가 끝없이 충돌하며 탄생하는 예술적 순간은 서글프기 그지없었다. 한 예술가의 예술이 온전히 그 예술가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이 느껴지는 키쿠오의 연기에, 마지막은 정말로 숨을 죽이고 그의 춤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영화를 본 지 꽤 시간이 흐른 지금도 <국보>를 떠올리면 뭉크의 그림, <태양>을 보며 감동을 느꼈을 때가 떠오른다. 예술가의 생을 응축한 작품을 마주했을 때 느껴지는 형언할 수 없는 설움, 그 깊이를 전부 헤아릴 수 없기에 밀려오는 안타까운 마음,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껴지는 감동을 <국보>를 보며 느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작품이 된 영화에서 이토록 거친 감동을 느낄 수 있음에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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