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겐 새로운 시작이, 누군가에게는 사랑하는 사람을 떠나보내는 순간이,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그저 일상인 곳. 바로 터미널이다.
지방 출신인 나에게 터미널은 유난히 익숙한 공간이다. 버스, 기차, 비행기 등 사람들을 만나야 할 때면 언제나 터미널을 거쳐야 했기 때문이다. 설렘과 아쉬움이 교차하는 그 공간은, 언제나 나의 일상과 특별한 순간 사이의 경계선이었다.
그곳에는 각기 다른 이유로 모인 사람들이 한 장소에 모여든다. 무거운 캐리어를 끌고 가는 사람, 손을 꼭 잡은 연인, 졸음을 참으며 휴대폰을 들여다보는 직장인, 아이 손을 잡고 서두르는 부모. 10분 정도 앉아 차를 기다리며 TV를 보거나 두리번거리는 사람들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그들 각자는 자신만의 목적지와 사연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들을 지켜보는 게 재밌는 이유는, 아마도 그 속에서 나의 이야기를 발견하기 때문일 것이다. 낯선 사람들의 모습 속에서 과거의 나, 혹은 미래의 내가 될 모습을 상상하게 된다. 캐리어와 함께 행복한 미소를 짓는 소녀들은 성인이 된 지 얼마 안 돼 떠난 여행을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의 피곤한 표정은 내 지난주 늦은 밤 귀갓길을 생각나게 한다.

이 연극 역시 그렇다. [펭귄], [Love so sweet], [거짓말]로 이루어진 세 개의 에피소드는 각자의 방식으로 관객의 삶 한 부분에 도달한다. 각 에피소드는 독립적이면서도, 터미널이라는 공간을 매개로 느슨하게 연결되어 있다. 마치 같은 대합실에 앉아 있지만 서로 다른 행선지를 가진 사람들처럼.
이 극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마다 다른 에피소드에서 공감의 정점을 찾는다는 점이다. 누군가의 페인포인트가 될 장면이 다른 이에게는 그저 스쳐 지나가는 순간일 수 있다. 어떤 이는 [펭귄]의 기묘한 유머에 깊이 빠져들고, 어떤 이는 [Love so sweet]의 애틋함에 마음이 무너지며, 또 어떤 이는 [거짓말]의 진심과 현실의 괴리를 느낄 수 있었을 것이다. 같은 무대, 같은 시간을 공유하지만, 각자가 가져가는 감정의 무게와 색깔은 전혀 달랐을 것이다.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51228_031003964_01.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8033638_hvhwrmrq.jpg)
나는 연극을 관람할 때 가장 멀리, 전체를 조망할 수 있는 자리를 선택한다. 무대와의 거리감은 있지만, 대신 객석 전체의 분위기와 관객들의 반응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그래서 사람들이 어느 포인트에서 웃고, 울거나, 공감하는지 확인할 수 있다. 어떤 의미에서는 무대 위 배우들만큼이나 객석의 관객들도 내게는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 된다.
이번 공연에서는 [펭귄]의 몸짓에 웃음을 터트리는 부부, 배우의 참여 유도를 어려워하며 몸을 움츠리는 관객, [Love so sweet]에 빨려 들 듯 몸을 앞으로 숙인 여성을 볼 수 있었다. 공연 중간중간 들리는 웃음소리의 톤도, 침묵의 무게도 달랐다. 내가 봤던 회차에서는 [거짓말] 중 남녀의 불륜 정점의 순간에 모두가 몰입하는 느낌을, 또 어떤 순간에는 뿔뿔이 흩어진 반응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느껴졌다.
각각의 반응을 보며 생각했다. 그들은 무엇을 느끼고 있을까? [펭귄] 속 몸짓이 단순히 인간과 달라서 웃긴 걸까, 아니면 그 서툰 몸짓 속에서 자신의 어색했던 순간들을 떠올린 걸까? [Love so sweet]에 집중한 사람은 극 중 여자의 앞길을 응원하는 마음일까, 가여워하는 마음일까.
![[크기변환]KakaoTalk_20251228_031003964_03.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8033624_qhlhaywa.jpg)
각자의 이야기가 가진 힘은 관객 개개인의 삶과 맞닿은 지점에서만 온전히 발휘된다. 마치 터미널에 모인 사람들이 각자의 목적지로 향하듯, 관객들도 세 개의 에피소드 중 자신만의 정거장에서 숨을 고른다.
실제 터미널에서 사람 구경을 할 때처럼, 이 연극을 보며 나는 관객들을 구경했다. 그리고 그들의 반응 속에서 또 다른 이야기들을 발견했다.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이야기 못지않게, 객석에서 일어나는 조용한 공감과 감정의 파장들이 흥미로웠다.
그래서 이 연극은 무대 위의 이야기만큼이나, 객석에 앉은 다양한 타인들을 바라보는 경험 그 자체가 되었다.
우리는 모두 잠시 이 곳에 머물다 각자의 길을 떠날 여행자들이었다.
이 곳, 터미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