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녕하세요, 유진 님.
추운 겨울, 따뜻한 마음으로 보내고 계시길 바랍니다.
사람과의 첫인상은 기억에 남을 때도 있지만 대개 쉽게 흐려지고 잊히는 것 같습니다.
마주 보았던 눈동자, 함께 나누었던 대화도 결국 순간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연유로 이번 릴레이 글쓰기, 서간문에서의 경험은 꽤 특별한 시간일 것 같아요.
인터넷이 사라지지 않는 한 영원히 기록될 문자로 느긋하고 꼼꼼히!
저만의 속도로 만남을 이어갈 수 있으니까요.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먼저 처음 쓰신 글을 읽으며 저만의 첫인상과 친근함을 글로써 꼭꼭 담아내려고 노력해 보았습니다.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다』. 작별하지 않는 사람. 작별할 수 없는 사람의 사랑과 의지에 관한 이야기다. 차마 입에 얹기도 무겁고 내밀한 사랑임을 알기에 지금 이 문장을 내뱉는 것도 숭고스럽다. 나는 무엇과 작별하지 않을 수 있을까? 이동섭 진행자의 말이 떠오른다. 우리는 삶을 살아가면서 예기치 못한, 끝인사를 남기지 못한 채 이별한 순간들이 한 번쯤은 있을 것이다... 아직 나는 무엇과 이별해 보았는가? 나는 정말 너무나도 과분하게도 내게 진심으로 애정을 주는 사람들과 영영 만날 수 없는 이별을 아직 겪어보지 못했다. '떠남'이 주는 '먹먹함'이 내게는 아직 심장 아래에 박혀 있지 않았다. 체감이 되지 않고, 체감하고 싶지 않은 마음만 가득 떠다닌다.
[Opinion] 당신의 흰자위에도 빛이 있구나 - 실내악단 화음(畵音) 토크 콘서트 [공연]
한강 작가님의 이 책은 제게도 의미가 깊습니다.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제가 처음으로 직접 글을 써보겠다는 마음을 먹게 했기 때문입니다.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막연한 꿈을 꾸게 하기도 했고요.
글을 읽으며 '클래식은 뒤돎의 예술'이라고 하신 부분이 참 인상 깊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안 되는 걸 알면서도 뒤를 돌아볼 수밖에 없던 작중 여인의 이야기와 맞닿는 부분이 있다고 느꼈습니다. 과거로는 돌아갈 수 없지만 과거의 것을 향유하고자 하는 마음이 닮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클래식이 유진 님을 행복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과거가 현재를 살리고. 유진 님께서 클래식에 관한 글을 계속 쓰심으로써 문화예술의 보급에 힘을 보태시니 현재가 과거를 살린다고도 볼 수 있겠습니다.
저는 국악을 하는 사람입니다. 대학교 국악 동아리에서 활동하고 있어요. 전공자도 아닐뿐더러 아직 정진이 필요한 실력이지만, 연주회에 몇 번 오르기도 하며 열심히 참여하고 있답니다.
유진 님의 관심 분야와는 결이 조금 다르지만, 저 또한 감상자이면서 동시에 연주자의 입장으로서 유진 님의 섬세한 표현과 진솔한 감상에 어떠한 감동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나하나 뜯어보고 맛보고 음미한 뒤 언어를 정제하여 내놓는 것이 얼마나 품이 많이 드는지 저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래전의 누군가 자신의 노래가 후세에 전해질지 알지 못하면서도 곡을 써낸 그 마음이, 저희가 끊임없이 국악에 도전하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지난 학기 동아리 회장을 맡아 작성한 연주회 인사말입니다. 과거의 음악에 제가 그토록 마음을 쏟을 수밖에 없던 이유도 여기서 온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 클래식뿐만 아니라 우리의 국악도 뒤돎의 예술이라고 볼 수 있지 않을까, 조심스레 덧붙여 봅니다.
좋아하는 것과 작별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습니다. 학년이 점점 올라가지만 저도 이 동아리 생활을 계속 하고 싶거든요. 공부도 해야 하고 졸업도 생각해야 하지만 저는 아직 좀 더 음악을 즐기고 싶은 것 같습니다.
작곡가의 지시 사항
생각해보자. 관람객인 나, 작곡가, 연주가 중 가장 압도적인 미학을 가진 이는 누구일까. 어쩔 수 없이 같은 답에 도달하게 된다. 결국 작곡가다. 우리가 여기 모인 이유도 그 사람이 남긴 선율 때문이 아니던가.
나처럼 클래식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고 싶은 사람에게도 매 순간은 대부분 처음이다. 그러니 그날 무대 위에 있는 연주가에게 의지하는 방법밖에 없다. 연주가는 관람객보다 앞서 보다 아름다운 것을 길로 안내해 주어야 한다.
연주가가 힘을 빼고, 작곡가가 소리 안에서 관찰될 수 있도록 그 투명함을 보장해 준다면, 관람객은 이 곡에 대한 이해와 작곡가에 대한 이해를 직간접적으로 얻을 수 있다. 길을 잃는다 하더라도, 필시 되돌아올 수 있다.
[Opinion] 작곡가의 지시 사항 - 서울문화예술교육센터 서초 : 'The Opus 2025' [공연]
저는 학원에서 국어 강사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토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퇴근 후 근처 카페에서 노트북을 두들기고 있어요. 서간문을 작성하기 위해 유진 님의 글을 쭉 읽어 보던 중 이 글이 눈에 띄었습니다. 우연히도 오늘 작곡가와 연주자에 대한 독서 지문을 수업한 날이었거든요.
(가)와 (나), 두 개의 복합 지문이었는데, 고등학생 아이들이 상당히 어려워했습니다. 제가 만약 유진 님의 글을 읽고 수업을 들어갔다면 좀 더 수월하게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았을까 싶기도 하네요. 선생님이 이런 글을 읽었는데- 라고 하면서요.
(가) 지문은 음악의 본질이 형식과 구조의 결정체인 악보에 실재한다고 믿는 관점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작곡가의 의도를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 연주자의 의무이며, 멋대로 왜곡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고 있었어요. 이 관점은 악보를 미적 자본으로, 창작 과정에서부터 고정된 가치를 지니고 있다고 주장합니다.
(나) 지문은 음악의 본질은 연주자와 청중의 상호작용으로 매 순간 재구성되는 각각의 연주에 존재한다고 믿는 관점에 대한 글이었습니다. 연주자의 재창조와 이를 체험하는 청중으로 음악의 가치가 변화한다고 주장합니다. 결국 고정된 실체 없이 시간의 연속성에 따라 그 모양을 달리하는 것이 음악의 참모습이라는 것이지요.
수업하며 (나) 지문에 좀 더 마음이 끌렸습니다. 인간이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 없다고 주장했던 헤라클레이토스처럼, 저도 동일한 두 번의 연주는 없다고 생각하거든요. 가야금 연습을 하면서 절실히 느낀 적도 있습니다.
유진 님께서는 (가)와 (나),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는 입체적인 의견을 가진 분이신 것 같습니다. 작곡가의 의도에 맞추면서도 자신의 개성을 겸손하게 내보이는 것이 연주자의 역할이니, 연주자는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우리를 친절하게 작곡가의 세계로 이끌어 주어야 한다는 데에 깊이 동감합니다.
클래식에서는 식견이 좁은 편인지라 유진 님의 글 목록에 들어가 보았을 때 다소 걱정스럽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클래식에 조예가 깊은 분의 글을 내가 이해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으로요. 유진 님께서 클래식에의 낯가림을 지우고 다가가기로 결정했던 과정을 들여다 보며 제 안에서 새로운 싹이 트는 것만도 같았습니다.
감사를 건네는 사람
제가 에디터 활동을 한 지 어느새 두 달이 지나가고 있는데요. 유진 님께서 쓰셨던 많은 글을 둘러보며 헤드라인에서 자주 보았던 글들의 작성자라는 점을 깨닫고 반가웠습니다. 이렇게 멋진 글들을 쓰신 분의 이야기를 읽고 글을 쓸 수 있다니요.
처음으로 서간문을 작성하면서 유진 님께서 먼저 쓰신 서간문을 읽어 보았습니다. 타인의 이야기를, 눈을 빛내며 읽고 차분히 써 내려 갔을 단어들이 정갈합니다.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았다고 관계를 끊지 않을 것.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같은 자리에 서 있기로 한 선택. 사랑이란 소유하거나 붙잡는 것이 아니라, 떠나지 않겠다고 마음 안에 남겨두는 태도라는 것.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필요한 순간에 당신의 문장들을 만나게 된 저는 운이 참 좋았습니다.
[Project 당신] 모락모락 만둣가게 앞에서 [서간문]
제가 늘 스스로에게 하는 말은, 감사와 사과를 아끼지 말자는 것입니다. 이 부분을 읽고, 타인이 건네는 호의에 답례한 적은 있지만 현재 존재하는 것에 대한 감사를 건넨 적이 있는지 돌이켜 보는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저도 인사를 건네고 싶습니다.
어렸을 적 피아노를 배운 이후 멀어졌던 클래식과 다시 친해지고 싶다고 생각하게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유진 님과 내적으로 더욱 가까워진 기분을 느끼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추신. 다음 작성자분께
안녕하세요, 서연 님. 반갑습니다.
문학이면 문학, 영화면 영화. 이런 특별한 방향성을 가진 글이 아니라 다소 이리 튀고 저리 튀는 글들로 이루어진, 제 페이지는 어떻게 보실까 궁금하네요.
글이 많이 쌓이지 않아 저를 다 보여드리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모쪼록 부담 갖지 마시고 편하게 읽어주세요.
제 글을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