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대 연말, 나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잡을 수 없었다.
12월 말부터 새해 전야까지 내 스케줄은 이미 텔레비전과의 약속으로 빼곡했기 때문이다. KBS, MBC, SBS 방송 3사가 앞다투어 펼치는 가요대축제, 연예 대상, 연기대상. 그 화려한 무대와 시상의 순간들을 놓칠 수 없었다. 한 해를 정리하고 새해를 맞이하는 방식이 그랬다.
하지만 시간은 흘렀고, 우리의 연말도 변했다. 대가족 중심 사회에서 1인 가구로 변해가는 세상 속에서, 한국의 크리스마스도 새로운 옷을 입기 시작했다.
이제 가족이 거실에 모여 TV를 보는 대신, 각자의 방에서, 각자의 공간에서 유튜브나 넷플릭스를 켜고 나만의 케이크에 촛불을 분다. 혹은 특별한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장소를 찾아 각자의 방식으로 연말의 순간을 기록한다.
이번 글은 다양한 콘텐츠들을 통해 변화해 간 한국의 크리스마스의 모습을 조명하고자 한다.
1) 수신료를 내지 않아도 되는 연말 시상식 - 핑계고 시상식
![[크기변환]20251223142241_2272556_695_387.jpe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4232250_hwetpriz.jpeg)
(출처=유튜브 채널 ' 뜬뜬 DdeunDdeun' 캡처)
12월 25일부터 31일까지, 한때 우리의 연말은 '별들의 잔치'였다. 그해 내가 가장 사랑했던 가수와 배우, 드라마와 음악을 마지막으로 곱씹으며 서로의 한 해를 격려하는 따뜻한 자리. 그것이 특별했던 이유다.
그러나 그 특별함은 어느새 까마득한 과거가 되어버렸다. 상의 공정성에 대한 의문, 편파적인 방송, 그리고 무엇보다 이제는 TV로 잘 보지 않는 드라마와 예전 같지 않은 음악들. 시상식은 본래의 의미를 잃고 간접광고의 향연으로 변질되었다. 사람들이 늦은 시간, 긴 시간 동안 TV 앞에 앉아 있어야 할 이유를 잃어버린 것이다.
그 빈자리를 채운 것은 의외의 곳에서 왔다. 유튜브 채널 '핑계고'의 시상식이었다. 올해 3회를 맞이한 이 시상식은 1년간 출연했던 모든 게스트에게 초대장을 보낸다. 신인상, 우수상, 최우수상은 방송 및 제작 전문가의 심사로, 인기스타상과 대상은 시청자 투표 100%로 결정된다. 누구나 납득할 만한 기준이다.
무엇보다 이곳의 분위기가 다르다. 배우, 개그맨, 가수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격식보다는 진심으로, 서로를 놀리고 목청껏 응원한다. 그 진솔함이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불과 3회밖에 진행되지 않았지만, 평균 수백만 회의 조회수를 기록하며, 이미 많은 이들의 새로운 연말 의식이 되어가고 있다.
2) 거리로 나온 크리스마스 – 신세계 스퀘어와 더현대 서울의 크리스마스 마켓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51224_230453932.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4232312_emotiyqd.jpg)
기업들도 변화하는 사회에 발맞춰 크리스마스 문화를 새롭게 만들어냈다. 크리스마스를 특별하게 만드는 기준은 이제 '추억'을 넘어 '기록'이 되었다. 어떻게 보냈는지를 보여주는 것, 그것이 중요해진 시대다.
신세계백화점 본점의 전광판(신세계 스퀘어)는 해가 지는 오후 5시부터 자정까지 화려한 크리스마스 영상을 상영한다. 1,354제곱미터에 달하는 거대한 화면에서 펼쳐지는 3분간의 마법. 체코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60여 명이 크리스마스 캐럴과 베토벤 교향곡 5번을 재해석한 음악이 거리를 채운다. 사람들은 이제 매년 이 전광판 앞에 모여 신세계가 들려주는 크리스마스 이야기를 듣고, 무료로 거대한 공연장에 온 듯한 경험을 누린다.
여의도 더현대 서울의 크리스마스 마켓은 또 다른 풍경을 만들어냈다. 2022년부터 시작된 이 행사는 1차 네이버 사전 예약에 동시접속자가 4만 5000여 명 몰리며 30분 만에 마감됐다. 마치 인기 아이돌 콘서트를 방불케 한다. 마켓 안에 들어서면 유럽의 어느 크리스마스 마을에 온 듯한 기분이 든다. 디테일한 소품들, 작은 플리마켓, 다양한 포토존. 이곳에서 찍은 사진들은 수많은 이들의 SNS와 프로필 사진을 장식했다.
3) 나를 위한 소비, 작지만 분명한 사치 – 크리스마스 한정 케이크
![[크기변환][회전][크기변환]KakaoTalk_20251224_230441197.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12/20251224232340_pplcceuu.jpg)
연말 소비의 성격도 달라졌다. 가족 중심의 대형 소비에서 개인 중심의 소규모 소비로 옮겨간 것이다. 케이크 시장의 변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미니 케이크, 슬라이스 케이크, 편의점 케이크부터 고가의 호텔 케이크까지. 선택지는 다양해졌고, 기준도 바뀌었다.
이제 케이크는 ‘함께 나누는 음식’이 아니라 ‘나를 위해 선택하는 기념물’에 가깝다.
특히 디자인과 스토리를 중심으로 소비되는 프리미엄 케이크의 완판 사례는 연말 소비가 실용보다 감정과 기록에 가깝다는 점을 보여준다.
그럼에도 변하지 않는 크리스마스의 따뜻함
시대와 함께 연말을 즐기는 풍경은 달라졌지만,
한 해를 무사히 살아낸 나 자신과 서로에게 “수고했다”라고 말하고 싶어
연말을 특별하게 보내고 싶은 사람들의 마음만큼은
변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각자의 방식으로 연말을 기록하고,
각자의 리듬으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지금의 풍경 역시
그 마음이 만들어낸 또 다른 표현일 뿐이다.
한 해의 끝자락,
모두가 저마다의 방식으로
따뜻한 연말을 마무리할 수 있기를 바라며.
메리 크리스마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