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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품 감정가이자 경매사인 버질 올드먼은 평생을 혼자 살아온 남자다. 타인과의 접촉을 피하고, 감정 대신 예술과 수집으로 자신의 세계를 채워온 그는 어느 날 외부와 단절된 채 살아가는 젊은 여성 클레어의 감정 의뢰를 맡게 된다. 그녀의 집에 있는 예술품을 감정하는 과정에서, 버질은 클레어에게 마음을 열게 되고, 그가 철저히 통제해왔던 삶은 서서히 균열을 맞는다. 영화 초반부에서는 버질은 매일 수십 개의 장갑 중 하나를 고르고, 늘 같은 고급 레스토랑에서 식사하는 일상을 반복적으로 보여준다. 이성적이고 냉정하며, 결벽증까지 있어 보이는 이 남자는 평생 모르고 살아왔거나 필요 없다고 믿어왔던 ‘사랑’이라는 감정을 클레어를 통해 처음으로 배우기 시작한다.
클레어는 10대 시절부터 광장고포증으로 인해 집 밖에 나온 적이 없다. 사람을 만나는 것도, 밖에 나가는 것도 극도로 무서워한다. 그런 그녀와 버질은 벽을 사이에 두고 클레어의 예술품을 감정하는 과정에 필요한 대화들을 나누면서 서로를 알아간다. 그리고, 마음의 문을 연 클레어는 방문을 열고 버질에게 자신을 보여준다. 그렇게 둘은 사랑을 하게 되고 그 과정에서 클레어는 세상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
“사랑도 위조할 수 있을까?”
“예술 위조에 대한 당신의 견해처럼 완벽한 위조는 불가능하죠.”
“사랑이 예술 작품이라면?”
“그럼 멋지겠네요. 경매도 되는 거잖아요. 낙찰받은 사람이 최고의 사랑을 체험하는 거죠.”
하지만, 이 모든 과정과 감정과 사랑의 행위가 거짓이었다면. 버질이 연인 대신 사랑해왔고, 평생에 걸쳐 수집해온, 바닥부터 천장까지 온 방을 둘러싼, 여성의 초상화들을 클레어가 모두 훔쳐 갔다. 초상화가 사라진 텅 빈 방을 본 버질의 표정을 잊을 수가 없다. 처음으로 사랑을 믿어보았던, 믿게 해주었던 그녀는 모조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사랑에 큰 배신을 당한 버질은 경찰서에 가지 않았다. 그러고는 클레어가 자신이 방에 갇혀 살기 전에 가장 그리워하는 장소라고 했던 프라하의 ‘밤과 낮’이라는 카페에 간다. 그리곤 버질은 웨이터에게 누구를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하며 영화가 끝난다. 그 마지막 장면은 음악, 연기, 연출, 장소 모든 게 풍부해서 여운이 많이 남는다. 사랑을 알게 되었고, 사랑에 배신을 당했고, 평생에 걸쳐 수집한 보물 같은 것들이 사라진 상황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버질은 그녀를 기다린다.
그리고, 이 영화에 대해서 친구랑 대화한 내용으로 영화를 대하는 관점을 생각해보게 되었다.
영화를 대하는 관점
"기괴하다"
이 영화가 담고 있는 건 훨씬 더 다양한 인간의 감정이다. 인생의 말미에서야 사랑이라는 감정을 깨닫게 되는 한 남자의 이야기, 사랑하지 못할 때 그는 무엇으로 자신의 마음을 채워왔는지, 그리고 그것이 무너질 때 어떤 얼굴을 하게 되는지. 각자의 방식으로 그런 감정들을 느껴보는 것이 내가 영화를 보는 이유다.
그럼에도 친구의 시선은 남녀 주인공의 나이 차이에 머물러 있었다. 그건 영화가 만든 설정이 아니라, 친구가 이미 가지고 있던 편견에 가까워 보였다. 물론 그런 반응이 이해가 안 되는 건 아니다. 나 역시 영화광이던 20대 초반, 영미권 영화를 많이 보며 다양한 사랑의 형태를 접했을 때 쉽게 적응하지 못했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영화는 영화다. 결국 추체험에 가깝다. 나약한 인간의 내면은, 스스로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상황 속에서도 어떤 대사와 감정 앞에서는 맞닿기 마련이다.
“영화 [Her]
친구가 덧붙인 이 한마디가 내가 이 글을 쓰게 된 결정적인 이유였다. 그 순간, 나는 “[Her]
그런 이야기를 꺼낸다 한들, 이미 ‘기괴하다’는 프레임 안에 들어간 친구에게는 닿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친구는 [주토피아]를 보고 싶다고 했다. 아마도 그녀가 좋아하는 영화를 보러 가는 편이, 나와 이런 대화를 이어가는 것보다 그녀에게는 더 편안한 선택이었을 것이다. 아마 그 친구와 더 이상 영화에 대한 깊은 이야기를 나누려 하지는 않을 것 같다. 대신 나는 나 나름대로 이 영화의 재미를 찾아갈 것이다. 남녀 주인공의 나이 차이는 영화를 보기 전부터 알고 있었지만, 내 흥미를 단 1%도 자극하지 않았다. 그것이 기괴하거나 이상한 설정이라고 느껴본 적도 없다.
오히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남자 주인공이 처음으로 마음을 열게 되는 상대가 순수한 사랑을 가진 젊은 여성이라는 설정은 이 이야기 안에서 충분히 설득력을 가진다. 나이가 많은 여성이 같은 위치에서 그와 그런 감정을 나눌 수 있었을까 하면,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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