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서 반짝이는 별들을 동경한 적 있는가. 무대 위 스타, 존경하는 롤 모델, 혹은 마음에 품었던 누군가. 어떤 형태의 사랑을 떠올려도 좋다. 그들을 보며, 나도 언젠가 별이 되어 누군가에게 빛을 전하고 싶다고 염원했다. 그림자 위로 별들을 새겼다. 별을 그리고, 별을 쓰고, 별을 탐했다. 그러나 그것이 정점에 이르렀을 때, 오히려 나는 점점 고립되어 감을 느꼈다. 그들이 휘청이면 나의 세계도 흔들렸다. 어느 날은 닿지 않는 이들에게 물었다. 멀리 있어 아름다운 것은 아닐까, 그들에겐 모난 구석이 정말 단 한 곳도 없을까. 나는 꿈꾸지 말아야 할 외롭고 힘겨운 길일까? 별도 언젠가 다 타고 먼지로 돌아가는 유한한 존재일 뿐인데.
여느 때처럼 존재 이유에 물음을 던지던 날에, 한 별의 생애에 초대받았다. 한때 누구보다 빛났고, 한껏 꿈을 펼치다 막을 내린 누군가의 이야기.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출발해 모두의 우상이 된 한 사람. 그에게선 내 질문에 대한 답을 들을 수 있을까, 여느 때처럼 빛과 그림자 중 빛만을 보게 될까.
초대받은 곳은 별들을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장소 중 하나다. 나는 그곳을 맴도는 어떠한 힘을 믿는다. 무대 위 별들은 누군가를 먹여 살리고, 구렁텅이에 빠진 누군가를 구원하며, 막바지엔 자기 자신을 구한다. 한편으로 그들은 약속된 언행만을 보여주고, 철저히 서사를 설계하며 시야를 한정 짓는다. 그 좁은 조명의 틈새에서 나는 언제나 그들의 앞면만을 보고 판단한다. 그럼에도, 조금이라도 더 곁에서 그들의 오늘을 배우고자 하기에 계속해서 문을 두드린다. 자주 보면 그림자도 마음을 열지 않을까 해서. 그림자끼리의 새로운 대화를 바라며, 이번에도 기대와 경외를 안고 문을 연다.
빛이 그어놓은 선을 넘어
오늘 오후 8시 25분, 우리 국민의 정신적 지도자였던 에바 페론 여사가 서거하셨습니다.
가장 짙은 어둠에서 극은 시작된다. 누군가를 추모하는 사람들, 그 사이에서 한 사람이 걸어 나온다. 그 이름은 '에바(유리아)'. 한 공간에 서 있지만, 조명 아래 좁아진 그녀의 세계는 분명히 다른 곳에 머물러있는 듯하다. 그 밖을 벗어나지 못하는 그녀의 영이 조용히 추모하는 이들을 내려다보다가, 이내 모두의 기억 속에서 다시 태어난다. 지울 수 없는 선을 넘어 별의 여정을 재현한다.
평범했던 에바가 어떻게 세계를 사로잡았는지 궁금해질 때쯤이면, 세상의 안과 밖을 넘나드는 인물 '체(한지상)'가 우리의 물음을 대신해 준다. 그는 무대의 경계에서 에바의 삶을 해석하며, 동시에 별에 의심을 품는 일도 서슴지 않는다. 드디어 조명 뒤의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온 걸까. 에바의 삶 속으로 조금 더 녹아들어 보자.
에바는 조명이 비추는 곳이라면 어디든 따라가며 차례차례 세계의 꼭대기로 올라선다. 시골에서 도시로, 라디오 배우에서 후안 페론(김바울)의 영부인으로. 조명의 쓰임이 다 할 때마다 에바는 더 크고 밝은 곳으로 나아간다. 때론 그곳에 서 있는 사람을 밀어내는 것도 서슴지 않는다. 그녀에 의해 쫓겨난 페론의 전 애인(은채현)이 갈 곳 잃은 슬픔을 노래한다. 그러나 이 물음이 끝나면 그녀는 조명 밖으로 물러나야 한다. 밝은 샛별에 묻힌 그녀를 이제 하늘에서 찾을 수 없다. 어렴풋이 저쯤에 있으려나, 하고 그저 짐작할 뿐이다.
영원할 것만 같았던 에바의 불씨도 금방 저물어간다. 벽 뒤로 물러난 그녀의 모습에서 별의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짐작하게 해 준다. 마지막 연설을 마친 에바는 빛을 뒤로 하고, 모두를 남겨둔 채 그림자 속으로 걸어간다.
별의 두 얼굴
별은 크게 두 가지 색을 품고 있다. 하나는 뜨거운 열, 나머지 하나는 그를 뒷받침해 주는 고요한 어둠이다. 극에 등장하는 모든 별은 매 순간 찬란할 수 없어도, 누구에게나 조명받는 때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 온 힘을 다해 자신만의 색을 뿜어낸다. 그렇다고 어둠의 순간이 부정되는 것은 아니다. 아무도 찾지 않는 허허벌판과도 같지만, 발버둥 치던 치열함이 오늘의 별빛을 구성한다.
에바 또한 어린 시절의 어려움을 바탕으로 노동자와 여성 인권에 앞장섰다. 그러나 과도한 복지로 국가를 빚더미에 앉게 했다. 자신의 꿈을 위해 삶을 주체적으로 이끌어갔지만, 동시에 사람을 철저히 자신의 이익을 위해 이용했다. 그녀는 정말 세상을 바꾸고자 했을까, 그 끝의 자신을 위해 준비한 연극이었을까. 나는 그녀가 보여준 뒷면에서 단서를 얻었다. 절대적인 선과 악이 존재하지 않듯, 절대적인 빛도 없다. 그녀의 삶을 흑백 논리로 정의할 수 없듯, 우리의 삶도 언제나 양면이 존재한다. 또 동경했던 누군가가, 혹은 사랑하는 누군가가 길을 잃고 그림자를 내비쳤다고 해서 나의 빛이 같이 저무는 것은 아니다. 이제 나의 하늘에서 찾아볼 수 없을 뿐, 그들도 그들 나름대로 어디선가 고요히 빛을 내고 있을 거다.
우리가 평소 밤하늘을 올려다볼 때, 같은 곳 같은 시간이라고 해서 똑같이 별이 뜨지는 않는다. 날씨가 흐려서, 공기가 탁해서, 혹은 도시의 화려한 불빛에 금방 어둠 속으로 파묻히는 것이 별이다. 하지만 검은 공간을 가득 메울 만큼 셀 수 없이 많은 별이 이 시간에도 빛나고 있다. 그저 우리의 자리까지 미처 닿지 못했을 뿐이다. 어디로 고개를 돌리든 그곳엔 별이 있다. 그리고 어느 조명을 켤지는 매 순간 우리 자신의 몫이다. 빛에 의지하지도, 그림자에 휘둘리지도 않고 우리의 의지로 나아가는 것이 별이 되는 최선의 길이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