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 by EUNU]
'수고롭지 않으면서 순조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가끔은 쉬운 길만을 택하고 싶다.
과정은 우리 눈에 잘 띄지 않아서,
정직하게 놓인 지름길을 스스로 놓아버리고 만다.
저 멀리 이뤄낸 누군가의 성장은 꼭 태양 같다.
수면 위 드러난 결과만을 담으며 그의 노력을 쉽게 입에 올린다.
그러나 그 또한 세공된 별이다.
몇 날 며칠의 밤을 견디며 수면 위로 올랐을지, 겪어 보았다면 감히 짐작하지 않는다.
영원한 밤을 택한 이상 앞으로의 지름길은 더더욱 쉽지 않을 것이다.
차근차근 외에 다른 건 허상이라 믿으니, 부디 나의 심해를 짐작하지 말기를.
다음을 향한 소녀의 여정 - GROWTH THEORY
오늘 소개할 까막별은 '성장'입니다. 그리고 성장에 대해 풀어낸 윤하의 정규 앨범 'GROWTH THEORY'를 함께 이야기해 보려 해요. 'GROWTH THEORY'는 주인공 '소녀'의 바다 여행기로 여러 존재와 함께 이뤄내는 성장의 가치를 담고 있는 앨범이에요. 지난 6집 앨범 'END THEORY'와 세계관이 이어지는 'THEORY' 시리즈의 두 번째 앨범이기도 합니다.
소녀는 바다에서 만난 연어와 낡은 요트, 개복치와 끊임없이 존재 이유를 되묻습니다. 그들은 모두 각자만의 개성을 지니고 있어요. 연어는 강에서 바다로, 그리고 다시 바다에서 강으로 향하며 삶에서 여러 독특한 여정을 만나죠. 소녀는 연어들과 함께 미지의 세상으로 헤엄치며 그들에게 도전하는 용기를 배우게 됩니다. 연어들과 세상을 개척하며 나아가다 고장 난 배 한 척을 발견하게 되고, 소녀는 다가갑니다. 실패를 겪고 주저앉은 그에게 소녀는 새로운 이름을 붙여줍니다. 우주에서 가장 어두우면서 가장 밝은 빛을 내는 존재, '퀘이사'. 실패는 그에게 가장 큰 어둠이 됐지만, 이제 퀘이사는 소녀와 함께 다시 캄캄한 바다를 모험합니다. 그때 바닷속의 별을 만나는데, 이 별이 바로 태양 물고기(sunfish), 즉 '개복치'입니다. 흔히 '개복치'는 나약하고 예민한 생물이라고 알려져 있죠. 하지만 실상은 해수면부터 심해까지 탐험할 줄 알고, 밤이 되면 빛을 내며 주변을 밝히는 아주 강한 존재라고 해요. 소녀는 이들과 서로 의지하며 다음으로 나아가기로 마음먹습니다. 어떤 고난이 와도 이겨내겠다고 다짐하면서요.
수고롭지 않으면서 순조로우면 얼마나 좋을까 - 로켓방정식의 저주
계획 없는 노력을 실어 보낼 수는 없을까
내 로켓만은 온전히
사실은 알아
말도 안 되는 일인 걸
차근차근 외에 다른 건
허상이나 다름없잖아
...
불안함은
밤 낮 가리지 않고
파동처럼 번져
꽃잎처럼 물들어 퍼지지
- '로켓방정식의 저주' 中
목표를 정한 소녀에게 남은 일은 견뎌내며 앞으로 향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모두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해보셨을 것 같아요.
'조금 더 편하게 이룰 방법은 없을까?'
'더 쉬운 길은 없을까?'
'고통 없이 성취하고 싶어'
윤하는 이런 마음을 '로켓 방정식'에 비유했습니다. 로켓을 멀리 쏘아 올리려면 가벼워야 하지만, 더 멀리 보내기 위해 연료를 실으면 무게가 무거워져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 됩니다. 이를 '로켓 방정식의 저주'라 부르는데, 이 모순이 마치 아픔 없이 이루고자 하는 마음처럼 보였다고 해요. 이런 마음은 불안함에서 나오게 되는 것 같아요. 그건 아픔에 대한 불안, 확신할 수 없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겠죠. 결국 그 불안을 덜어낼 수 있는 수단은 차근차근 쌓아 올리는 성실함이더라고요. 계속해서 다듬고, 또 다듬다 어느새 뒤를 돌아보면 가늠할 수 없을 정도의 발전을 이루게 된 때가 많았어요. 반대로 온 마음을 쏟아붓지 않았을 때는, 당장에는 잘 나아가는 듯싶다가도 삐끗하게 되는 순간을 가까운 미래에 마주하게 되었던 것 같아요.
콘서트에서는 "성장은 바보 같은 성실함"이라고 말해주었는데, 그 말 한마디가 특히 기억에 남아요. 여전히 누군가는 징검다리를 택하고 재빠르게 나아가요. 그 옆에서 한 칸씩 두드려가며 나아가는 제가 바보같이 느껴져서 허탈할 때도 많았는데, 멋지게 자신의 것을 이뤄낸 사람이 "네가 선택한 길이 옳아"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아 큰 위로가 되었습니다.
소녀 또한 처음에는 빠른 길을 찾으려 합니다. 하지만 노력 없는 결과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머지않은 다음으로 또 한 번 발을 내딛습니다.
수면 아래 놓인 과정 - 케이프 혼
전례 없던 도전이면
선례 없인 불안하지
...
후회하고 부서져도 내가 선택해
...
과정은 수면 아래에 있고
깊을수록 어두 컴컴 하여도
바라는 건 오직 하나
...
나로 태어난 우연과 그 이유
알 수 없어도 난 찾을 거야
- '케이프 혼' 中
하지만 노력이 당장의 결과로 드러나지 않을 때도 많죠. 소녀 일행도 거친 파도로 악명이 높은 '혼곶'을 지나며 겪어보지 못한 것에 두려움을 느낍니다.
우리는 삶에서 수많은 내일을 만나고, 그 안에서 새로움을 마주합니다. 미지의 불안을 깨고 맞서는 사람만이 다음의 길을 찾을 수 있지만, 말처럼 쉽지만은 않은 것이 현실이죠. 저의 삶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빛이 하나도 들어오지 않는 긴 동굴을 지나는 것만 같았던 때가 있었어요. 걸어왔던 길과 걸어가야 할 방향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어두워서, 가만히 주저앉기도 했어요. 그럼에도 저는 온 힘을 다해 마주하려 했고, 끝내 다음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그 과정은 사라지지 않고, 지금까지도 제 삶의 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어요. 저는 지금 다시 새로운 도전을 앞에 두고 있습니다. 겪어본 적 없고, 상상조차 하지 못한 일이지만 이제껏 그래왔던 것처럼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나 자신이 과정을 기억하고 있으니까요.
소녀의 과정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믿습니다. 심장에 오래도록 남아 끝내 결실을 보게 되겠죠.
다시 태어나도 종착할 여기 - 포인트 니모
한켠에 피어나던 불안함과 싸워 이기면서도
어디까지 멀리 날아오르고 싶었던 걸까
그땐 그게 정답이었어
...
피어나고 질 때 세상의 총량은
어쨌거나 우리를 포함할 테니
석양이 지는 하늘에 물들어
밤을 기다리는 낮
...
손에 쥐고 싶은 것
이뤄내고 싶은 것
그게 전부는 아냐
잊지 말아야 할 건
소중히 여겨야 할 건
사라지는 모든 것들과 사랑
- '포인트 니모' 中
'포인트 니모'는 임무를 마친 인공위성들이 추락하도록 설정된 곳으로, 땅보다 하늘이 더 가까울 만큼 바다에서 가장 고립된 곳입니다. 소녀는 가장 조용할 것 같은 곳에서, 삶을 마무리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한때 가장 높은 곳을 비행하던 그들이 고철 덩어리가 되어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본 소녀는, 이 순간에도 자신이 죽음으로 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아요. 이뤄내는 것보다 중요할, 사라지는 모든 존재와 나누는 '오늘'의 소중함을 안고 소녀는 계속해서 항해합니다.
저 또한 이루고자 하는 것을 만나기 위해 별들을 좇아 왔지만, 어느새 주변을 돌보지 못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심지어 나 자신까지도요. 과거, 현재, 미래의 균형을 고민하던 중에 접하게 된 노래가 'GROWTH THEORY'였고, 포인트 니모는 그 해답을 가지고 있었어요. 이 순간에도 별과 생명들은 모두 소멸을 향해 가고 있고, 우리는 모두 불완전한 오늘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미완성의 끝에 서서, 가끔은 진정으로 소중한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죠. 삶을 모두 성장통으로 소모해 버리기엔 우리의 생애는 순간에 불과합니다. 후회와 고통으로 삶을 물들이기보다, 한순간이라도 더 사랑하며 살아가는 것은 어떨까요?
이 외에도 모두 담지 못한 값진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1번 트랙부터 13번 트랙까지 천천히 살피며 향유해 보시기를 추천해 드립니다.
과정은 소멸하지 않습니다. 당장 빛나지 않더라도 내일의 별빛을 고대하며 나아가는 모두가 우주에서 우리입니다.
오늘도 함께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성장은 생명체로써 거쳐야 할 필수적인 과정이며, 반드시 고통을 수반한다.
- 'GROWTH THEORY : Final Edition', 42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