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두 번째 이야기로 돌아온 두 편의 영화, <위키드: 포 굿>과 <주토피아 2>. 위키드는 1년간의 인터미션을 지나 마침내 2막을 시작했고, 주토피아는 무려 9년 만에 새로운 시즌으로 우리 곁에 돌아왔다. 두 작품 모두 1편을 재미있게 보았던 터라 이번 두 번째 이야기를 더 기대했고 그 기대만큼 충분히 즐길 수 있었다. 나는 두 영화를 연달아 보았는데 각기 다른 세계와 장르를 가졌음에도 묘하게 닮은 지점들이 눈에 들어왔다.
서로 다른 존재들이지만 결국 최고의 친구이자 파트너로 함께 나아가는 이야기. 이 두 영화는 그런 공통된 서사를 각자의 방식으로 풀어낸다.

오즈메이징, 다 함께 주게더
두 영화는 모두 독특한 세계관을 바탕으로 이야기를 펼친다.
<위키드: 포 굿>의 배경이 되는 오즈는 마법이 존재하고 동물들이 말하며 그 중심에는 화려하고 아름다운 에메랄드 시티가 자리한 세계다. 하지만 마법 같은 화려함 속, 그 안을 들여다보면 절대 완벽하지 않다.
오즈를 대표하는 존재인 '위대한 마법사'는 사실 마법을 쓰지 못한다. 그는 화려한 연설과 이미지로 사람들의 동경을 얻고 권력을 유지한다. 더 나아가 말하는 동물들의 존재를 불편하게 여기는 이들이 늘어나며 동물들은 점차 배제되고 억압된다. 이 과정에서 진실을 말하고 동물들을 지키려 했던 엘파바는 '사악한 마녀', 즉 '위키드'로 몰리게 된다. 오즈의 화려함 뒤에는 왜곡된 진실이라는 어두운 이면이 숨어 있다.
<주토피아 2> 역시 겉으로는 이상적인 세계를 그린다. 이곳은 인간이 존재하지 않고 오직 동물들만이 문명을 이룬 도시다. '주토피아'라는 이름 자체가 동물을 뜻하는 단어와 낙원을 뜻하는 단어가 합쳐진 것으로 모든 동물이 함께 살아가는 꿈의 도시를 상징한다. 그러나 이곳 역시 완벽하지 않다.
1편에서는 포식자와 피식자 사이의 갈등을 다뤘다면 2편에서는 '영역의 소유권'을 둘러싼 갈등 속에서 파충류 중 뱀이 누명을 쓰고 추방되는 이야기가 등장한다. 겉으로는 평등을 외치지만 주토피아 역시 보이지 않는 차별과 오해, 그리고 구조적인 문제를 안고 있는 도시다. 꿈의 도시 아래 숨겨진 진실이 서서히 드러나는 순간이다.
이처럼 두 영화는 각기 다른 세계를 보여주지만, 닮은 지점을 가진다. 마법과 이상향으로 포장된 공간, 그리고 그 이면에 존재하는 차별과 권력의 그림자. 그 안에서 세계를 올바르게 만들고자 하는 주역들이 등장한다는 점까지도 닮았다. 게다가 동물들이 말한다는 점도 빼놓을 수 없다.
독특한 세계관답게 특유의 말장난 역시 눈에 띈다. '어메이징'을 '오즈메이징'으로 바꾸거나, '투게더'를 '주게더'라고 표현하는 식이다. 구글 대신 '주글'이 등장하는 설정도 재미를 더한다. 또 각각의 영화들이 주는 다른 영화의 오마주를 보는 것 역시 흥미롭다. 또한 위키드를 보고 주토피아를 이어서 봤기 때문일까. 초록색 옷을 입고 주토피아 100주년 행사를 여는 장면에서는 잠시 에메랄드 시티가 떠오르기도 했다. 전혀 다른 세계임에도 묘하게 겹쳐 보이는 순간이었다.
결론적으로 두 영화가 보여주는 세계는 이상적이고 완벽해 보이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 그리고 그 틈에서 진실을 바라보고 세상을 바로잡으려는 존재들이 등장하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다르지만 영원한 친구이자 파트너

우린 많은 게 다르지만, 그래도 난 항상 네 편이야.
CGV 공식 X(구 : 트위터) 계정에 <위키드>와 <주토피아>의 공통점이라고 올라온 위 문장은 두 영화를 관통하는 문장처럼 느껴졌다. 서로 너무 다른 두 존재가 만나, '다름' 때문에 충돌하고 '다름' 덕분에 변화하며 결국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이야기. 이 문장을 본 순간, 두 작품을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졌다.
<위키드>의 엘파바와 글린다는 처음부터 어울릴 것 같지 않은 조합이었다. 초록 피부로 인해 사랑받지 못했지만, 강력한 마법 능력을 지닌 엘파바와 모두에게 사랑받지만, 사실 마법을 쓰지 못하는 글린다. 성격도 신념도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극명하게 다른 두 사람은 처음에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하고 충돌한다. 그러나 함께 시간을 보내며 둘은 조금씩 달라진다. 엘파바는 글린다를 통해 타인에게 마음을 여는 법을 배우고 글린다는 엘파바를 통해 세상의 불공정과 차별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된다. 전혀 다른 두 사람은 그렇게 친구가 된다. "너로 인해 완전히 달라졌어, 내가."라는 말처럼 서로는 각자의 세계를 흔들어 놓은 가장 소중한 존재가 된다.
하지만 둘은 결국 같은 길을 걷지 못하게 된다. 사람들의 시선을 두려워하지 않게 된 '사악한 마녀 엘파바'와 사랑받지만, 이를 잃는 것이 두려운 '착한 마녀 글린다', 둘의 선택은 달랐고 서 있는 자리도 달라졌다.
Who can say if I’ve been changed for the better
내가 더 나은 사람으로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But because I knew you
너를 알게 되었기에
Because I knew you
너를 알게 되었기에
I have been changed for good
나는 바뀌었어, 영원히
그럼에도 이것이 우정의 끝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두 사람은 서로가 자신의 삶을 바꿔놓았다는 사실만큼은 부정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사람이 되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 이전과는 다른 사람이 되었다는 것. 그 변화는 되돌릴 수 없고 지워지지도 않는다. 함께 있지 않아도 영원히 남게 된다. 엘파바와 글린다의 관계는 함께하지 않아도 끝나지 않는 우정에 가깝다. 같은 편으로 서 있지 않아도 마음 한편에서는 언제나 서로의 편이 되어주는 관계.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의 삶을 영원히 바꿔놓은 우정의 기록처럼 느껴진다.
<주토피아>에서 주디와 닉의 차이는 분명했다. 토끼와 여우, 초식동물과 육식동물이라는 종족의 다름. 그러나 그 차이는 함께 사건을 해결하며 극복할 수 있는 것이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신뢰하게 된 둘은 '파트너'라는 관계로 나란히 선다.
하지만 <주토피아 2>에서 마주하는 다름은 이전과 조금 다르다. 여기서 문제는 종족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다. 주토피아를 지켜나가고 싶은 주디와 그 과정에서 누군가의 희생이 너무 당연해지는 것을 경계하는 닉. 주디는 옳다고 믿는 일을 위해 몸을 던질 준비가 되어 있고 닉은 묻는다. 정말 그럴 필요가 있었을까, 목숨까지 걸어야 했을까 하고. 이때 둘은 깨닫게 된다. 우리는 생각보다 많이 다르다는 것을 같은 목표를 바라보고 있는 것 같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는 방법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을. 서로의 선택이 때로는 이해되지 않고 때로는 상처가 되기도 한다.

어쩌면 서로 그렇게 많이 다르기 때문에 오히려 우린 더, 아주 끈끈한 사이가 될 수도 있는 겁니다.
그럼에도 주디와 닉은 쉽게 등을 돌리지 않는다. 다름을 없애려 하기보다는 그 다름을 안고 함께 가는 길을 고민한다. 서로의 생각을, 대화를 통해 나누며 주디는 '파트너인 닉'과 함께 주토피아를 지키고 싶었다는 마음을 솔직하게 전하고 닉은 자신이 '자기 무리'라고 생각하는 주디가 다치지 않기를 바랐다는 진심을 털어놓는다. 그렇게 두 동물은 파트너란 같은 생각을 하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다른 생각을 하면서도 같은 자리에 서기로 선택하는 관계라는 것을 다시 한번 배워간다.
엘파바와 글린다, 주디와 닉. 이들은 모두 서로를 바꾸어 놓은 존재들이다. 같은 길을 걷지 않게 되었고 같은 선택을 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니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더 분명해진 사실이 있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생각을 하지 않아도 언제든 상대의 편에 설 수 있다는 것. 친구이자 파트너란 결국 다름을 지워버린 관계가 아니라 그 다름을 안고서도 끝내 등을 돌리지 않는 관계라는 것. 두 영화는 각자의 방식으로 그 단순하지만, 어려운 진실을 보여준다.
사랑의 또 다른 정의
생각해 보면 두 영화는 모두 사랑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흔히 사랑이라 부르는 감정이 연인 사이에서만 존재한다고 믿기 쉽지만, 엘파바와 글린다, 주디와 닉의 관계는 그보다 훨씬 넓은 사랑의 형태를 보여준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해도 같은 선택을 하지 않아도 끝내 상대의 편에 서겠다고 말하는 마음.
그것은 소유하지 않으면서도 떠나지 않는 사랑이고 함께하지 못해도 사라지지 않는 사랑이다. 그래서 이들의 이야기가 오래 남는다. 다름 때문에 멀어질 수 있었던 관계들이 오히려 다른 덕분에 더 깊어지는 순간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친구이자 파트너, 그리고 어쩌면 연인의 경계를 넘어선 사랑. 두 영화는 그 이름 붙이기 어려운 감정을 통해, 우리가 관계를 대하는 방식에 대해 다시 한번 묻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