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동안 쓴 글을 놓고 고민이 많은 시점이다. 스스로는 잘 안다. 전보다 익숙하게 쓰는 느낌은 있지만 어떠한 변화구 없이 거의 같은 패턴으로 공을 꽂아 넣는 기분이랄까. 촉이 왔다. 다른 방법을 강구해야할 때라는 걸. 좋은 글 하나를 완성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매번 글 하나를 위해서 시간과 에너지 모두를 갈아 넣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롱런하기를 원한다.
글쓰기에서 ‘설계’라는 작업이 얼마나 중요한지 체감하는 요즘이다. 쓰는 작업에는 제대로 된 글을 쓰는 일 외에도 부수적으로 신경써야 할 사항들이 정말 많다. 더군다나 언젠가 책 한 권 내고 싶다는 욕망이 있는 상태라면 치밀한 계산이 더욱 필요하다.
그런 고민을 하던 찰나에 꽤나 현실적인 조언을 해 주는 글쓰기 책, 아니 ‘책쓰기 책’을 만났다. 공학도 출신 전업작가의 리얼한 글쓰기 삶이 담겨 있는 책에는 글로 먹고살며 체득한 각종 비법이 가득했다. 글쓰기에서부터 투고, 계약, 출판까지의 전 과정을 모두 겪으며 알게 된 웃픈 시행착오들을 스스럼없이 방출하고 있다. 경험에서 나온 생생한 이야기들에 신뢰를 느꼈다. 그의 조언은 붕 뜬 느낌 없이 어느 작가지망생에게 고스란히 닿아 앉은자리에서 단숨에 책을 읽도록 만들었다.
실질적인 얘기로 꽉 채운 글쓰기 책

저자는 항상 수십만 독자와 그에 상응하는 인세를 머릿속에 그려가며 기꺼이 외로움을 영접한다고 한다. 낭만을 가장한 그 어떤 구절보다 절절한 말이다. 책 쓰는 일을 ‘나의 무엇이 남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가’를 고민하는 행위로 정의하고 있는 그는 내가 가진 지식이나 지혜가 누구에게, 어떤 순간, 어떤 방식으로 닿는지 늘 고민할 것을 독자에게 권하고 있다.
때문에 이 도서는 거대한 설계와도 같은 책 쓰기 작업 앞에서 실질적인 지침들만 얘기하고 있다. 돌려 말하는 법이 없고 필요한 내용만 송곳처럼 뾰족하게 말한다. 아마도 그건 책을 쓰려는 사람들의 공통된 마음을 누구보다 저자가 잘 알고 있기 때문이라 생각한다.
<나의 무엇이 책이 되는가>는 독자에게 책이 닿기까지 필요한 모든 과정을 3장에 걸쳐 전하고 있다. 1장에서는 작가라면 언젠가는 마주하게 될 존재론적 질문을, 2장에서는 글쓰기 실전에 대한 이야기를, 3장에서는 책이 나오기까지 겪게 되는 다양한 어려움들을 다루고 있다. 저자의 고유한 경험은 내 안의 어떤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닿기를 바라는 사람들에게 현실적이면서도 유용한 답이 될지도 모르겠다.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날것의 꿀팁

이토록 현실과 밀착된 내용을 글쓰기 책에서 본 적이 없다. 언젠가 맞닥뜨리게 될 고민이지만 물어보기 꽤나 민망한 질문들을 개인적으로 가지고 있었는데 그러한 부분이 책에 스스럼 없이 적혀 있어서 속이 다 시원했다. 솔직하면서도 재밌고, 또 어딘가 냉정한 구석이 있는 판매원의 영업 기밀을 엿듣는 느낌이었다.
특히 ‘출판 계약서에는 무엇이 담겨 있을까’라는 파트가 매우 강렬하다. 출판 계약서와 인세 계산에 대한 내용을 주로 다루고 있어 도움이 많이 됐다. 계약서를 처음 받아 들었을 때 미리 알고 있으면 좋을 내용들이었다. 계약서는 어느 시점에 써야 하는지, 인세는 얼마이며 또 언제 받을 수 있는지, 어떤 출판사와 계약해야 하는지 등등 알짜배기 정보가 가득했다. 15,000원을 예시로 들어 보여준 인세 계산법에서는 진심으로 “헉!” 했다. 여러 계약서로 출판사와의 다양한 계약 사례를 보여준 저자에게 멀리서나마 이렇게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편집자와의 관계를 다룬 내용 또한 유용했다. 작가가 원고를 완성하는 일을 한다면 편집자는 책을 완성하는 일을 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숙지하게 되었다. 편집자와의 협력 모드를 권고하는 내용도 내겐 어디에서도 들을 수 없었던 꿀팁이었다.
먼저 뛰어든 자의 노력을 엿보며

타인의 노력을 지켜보며 덩달아 영감을 받는다. 할 수 있는 걸 다하는 자의 절실함이 나를 돌아보게 만들었다. 꾸준히 투고하며 제안과 거절을 두려워하지 않는 다는 점, 글쓰기에 보탬이 되는 다양한 방면의 작업을 끊임없이 시도한다는 점은 글태기가 온 나를 각성시켰다. 특히 저자가 챗지피티를 인터뷰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이런식으로도 소스를 얻을 수 있구나 싶어 참신했다.
“인공지능의 시대에 작가는 어떻게 해야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저자와 챗지피티가 나눈 대화가 꽤나 구체적이고 심도 있게 다가온다. 챗지피티가 인공지능을 활용할 때의 그 판단 기준에 대해서 설명해 주는데 매우 논리적이어서 읽는데 설득 당했다. 정보는 얼마든지 찾을 수 있는 시대에서 그 정보들을 어떻게 엮을지는 결국 나의 몫이라고 답한다.
챗지피티에게 뒤통수 한 대 맞은 기분이다. ‘왜 쓰는지를 아는 사람’이 쓰는 글에 대하여 고민해 본다. 누군가에게 빛이 될 수 있는 글을 쓰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시도하고 애써야 하지 않나 하는 반성도 해 본다. 활용할 수 있는 건 다 활용해서 더 큰 방향으로 나아가는 일에 집중해야겠다.
연마에도 노련함이 필요하니까
한 해의 끝자락에서 이번 년도 작업물들을 정산해 본다. ‘내 글이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었나? 어떤 쓸모가 있었나?’ 저자처럼 내게 물었다. 너무 잘 쓰려고 하려는 것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진 않았나, 제대로 된 결과물을 만들어야지 하면서도 이런 저런 핑계 뒤에 숨지 않았나 스스로 채점도 했다.
‘무엇을 왜 쓸까’라는 본질적인 질문은 늘 쥐고 가기로 하면서 이제부터는 에너지를 잘 분배해서 써야겠다고 다짐한다. 내년 글쓰기 농사를 잘해 보고 싶다. 그러기 위해서는 판을 구체적으로 짜야 한다. 다독, 다상, 다작이 받쳐 주면 더 좋고, 빨리 갈 수 있는 방법까지 찾게 된다면 더더욱 좋을 것이다. 이 책을 곁에 둔다면 조금 더 노련한 설계가 가능할 것 같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