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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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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라는 관계는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가장 먼저 맺게 되는 인간관계다. 스스로 선택할 수 없기 때문에, 또 너무 오래 함께해왔기 때문에 우리는 종종 그 관계를 너무나 당연하고 신성한 것으로 여기곤 한다. 특히 가족적 유대와 효를 중시해온 동양 문화권에서는 부모와 자식, 형제자매 사이의 관계가 다른 어떤 인간관계보다 무겁게 다뤄진다. 나 역시 그런 가치관을 크게 의심하지 않은 채 자라왔다. 가족은 당연히 이해해야 하고, 견뎌야 하며, 때로는 개인의 감정보다 앞서는 존재라는 약간의 환상이 있었다.

 

하지만 성인이 되고 점점 나이를 먹어갈수록 부모자식이라는 관계 역시 결국은 ‘인간 대 인간’이 만들어가는 수많은 관계 중 하나라는 사실을 조금씩 실감하게 되었다. 늘 든든하고 완벽할 것 같던 부모는 어느 순간부터 도움을 필요로 하는 존재가 되기도 하고, 그와는 별개로 한 인간으로서의 결핍과 불완전함을 드러내기도 했다. 부모 또한 하나의 개인이며, 완전하지 않다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나에게 언제나 애틋함과 약간의 불편함, 어색함을 동시에 남겼다.


짐 자무쉬의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이런 감정의 결을 아주 조용한 방식으로 건드리는 작품이다. 이 영화는 미국 북동부,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라는 서로 다른 공간을 배경으로, 거리만큼이나 관계도 멀어져 버린 세 가족이 마주하는 순간들을 섬세히 그려낸다. 자극적인 사건이나 극적인 갈등 대신, 침묵과 여백, 그리고 어색한 대화를 통해 가족이라는 관계의 본질을 드러낸다. 이는 인물의 감정을 설명하기보다는 관객이 스스로 느끼게 만드는 짐 자무쉬 특유의 연출 방식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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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더’ 편에서는 아버지와 남매 사이의 어정쩡한 거리가 인상적으로 그려진다. 자주 연락하지도 않고, 관계가 이어질 때조차 어딘가 어색한 세 사람은 주로 현실적인 필요 앞에서 다시 연결된다. 자녀들은 그런 아버지를 불편해하면서도 완전히 외면하지는 못한다. 명목상의 안부 인사와 생필품을 건네는 짧은 방문 속에는, 사랑이라 부르기엔 조심스러운 감정이 남아 있다. 이것이 어딘가 역할극같은 만남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것을 끊어내지는 못하던 인물들의 모습은 명절마다 숱한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결국은 가족을 찾게 되던 기억을 상기시키기도 했다.

 

‘마더’ 편에서는 조금 다른 형태의 거리감이 그려진다. 모범적인 삶을 살아온 언니와 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동생, 그리고 두 딸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있는 어머니. 이 세 사람의 관계는 지나치게 현실적이어서 오히려 많은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성인이 된 이후, 부모와 자식 사이에는 사랑과는 별개의 거리가 필요해진다. 가까운 곳에 살면서도 1년에 한 번 정도만 만나는 관계는 어쩌면 서로를 지키기 위한 선택일지도 모른다. 영화는 그 거리를 문제 삼기보다, 그렇게 유지되는 관계의 형태 또한 하나의 가족일 수 있음을 조용히 보여주고 있었다. 헤어지기 전 포옹을 나누는 자매와 그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는 어머니의 시선처럼.


한편 ‘시스터 브라더’는 앞선 이야기들과는 또 다른 결을 지닌다. 이 편에서는 부모와 자식이 아닌, 부모를 잃고 남겨진 형제자매의 관계를 다룬다. 미국에서 프랑스로 건너온 이민자 부부의 자녀들인 남매는 부모가 사고로 세상을 떠난 뒤, 각자의 방식으로 슬픔을 견뎌낸다. 경비행기를 몰 정도로 자유로운 삶을 살던 사람들의 자식인 만큼 둘은 모두 개성이 강하고, 때로는 탈선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겨진 세계에서 서로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존재는 서로뿐이라는 사실이 전개 내내 차분하게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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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믿음직스러워 보이지 않던 쌍둥이 형제가 부모의 유품을 정리하고, 다른 형제를 묵묵히 위로하는 모습은 묵직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형제자매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마음 가장 깊은 곳에서부터 공유할 수 있는 존재다. 격렬한 감정의 분출 대신, 슬픔을 받아들일 수 있을 때까지 나란히 머무는 시간. 이러한 차분함은 부모자식 관계와는 또 다른, 형제들 사이에서만 형성될 수 있는 묘한 온도를 보여준다.


미국 북동부, 아일랜드 더블린, 프랑스 파리. 서로 다른 장소에서 살아가는 세 가족의 이야기는 물리적인 거리만큼이나 다른 관계를 보여주지만, 동시에 가족이라는 이름 아래 묶인 감정의 결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담담히 그려내고 있다. 사랑과 피로, 책임과 회피가 뒤섞인 마음은 국경을 넘어서도 비슷한 온도로 존재한다.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이 복잡한 감정을 설명하려 들지 않고, 그저 인물들 곁에 머무는 방식으로 보여준다. 짐 자무쉬 특유의 미니멀한 연출과 느린 호흡은 관객에게 판단 대신 사유의 시간을 남긴다.


무엇보다 이 이야기들이 마음 깊이 와닿는 건, 영화가 가족을 특별한 화해의 순간으로 봉합하지 않기 때문이다. 관계는 여전히 어색하고, 거리는 완전히 좁혀지지 않는다. 하지만 그렇다고 완전히 끊어지지도 않는다. 명확한 결론 없이 이어지는 그 상태 자체가 가족이라는 관계의 현실에 더 가깝게 느껴진다. 부모와 자식 사이의 조심스러운 방문, 엄마와 딸 사이에 필요한 간격, 그리고 부모를 잃은 뒤 서로에게 기대는 형제자매의 모습은 모두 다른 형태의 ‘함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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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스럽지만 종종 피로하고, 가끔은 멀어지고 싶다가도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 존재. 가족을 신성화하지도, 냉소적으로 해체하지도 않는 〈파더 마더 시스터 브라더〉는 그 양가적인 존재성에 대해 말 대신 침묵을 건넨다. 영화는 우리가 가족을 바라보며 느껴왔던 복잡한 마음을, 판단 없이 곁에 둘 뿐이다. 그래서일까. 뜨뜻미지근한 온도를 일관하던 이야기의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간 뒤, 가족에 대한 어떤 새로운 답보다는 오히려 답이 없을 질문들이 조금 더 오래 내 곁을 맴돌았다. 우리는 왜 이들을 완전히 떠나지는 못할까, 왜 가장 오래 알고 있는 사람에게 가장 서툴게 굴게 될까, 그런 질문들이.


그렇게 어두워진 스크린을 뒤로 하고 나서면서는 최근의 기억들이 조각조각 떠올랐다. 인터넷 쇼핑을 할 일이 생기면 당연스레 나에게 연락하던 엄마의 조심스러운 말투, 병원 접수창구에서 보호자란에 엄마 대신 내 이름을 적는 순간 같은 것들. 어린 시절 과자를 사달라고 조르던 것도, 엄마가 내 손을 잡고 대기실에 함께 앉아 있던 것도 모두 선명한데, 어느새 각자의 역할은 조금씩 바뀌어 있었다. 영화가 내게 남긴 애매한 온기와 그 선연한 기억들 속에서, 어쩌면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되었다.

 

거리에 흐르는 캐럴과 함께 유독 누군가와 함께 보내야 할 시간이나 돌아가야 할 장소를 곱씹는 요즘이다. 시간이 흐르며 거리도 역할도 계속 달라지지만, 그 형태야 어떻든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관계. 그렇게 한 존재의 가장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관계. 그 필연성을 실감하며 또 한 번의 연말을 맞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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