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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1. 궁금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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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금했다. 서울국제음악콩쿠르 바이올린 부문 결선 무대가 예술의전당에서 열린단다.


왜 갑자기 음악 콩쿠르가 궁금해졌겠는가. 바이올리니스트 임동민(최애)이 2022년 바이올린 부문에서 우승했기 때문이다. 처음 팬이 되었을 때, 결선에서 올렸던 쇼스타코비치 연주 영상을 보고 싶어 주최 측에 문의까지 했지만 결국 실패했던 기억이 난다. (저작권은 어쩔 수 없지…)


‘콩쿠르 결선’이라는 무대 자체도 궁금했다. 게다가 예당 콘서트홀이라니. 음향 좋은 홀에서 무려 여섯 결선자의 협연곡을 연달아 들을 수 있다니! 한 곡이 30~40분은 될 텐데, 그게 뭐가 좋냐고 묻는다면… 나도 모른다. 그냥 좋다.


일찌감치 예매도 했겠다, 대강 아는 곡들이겠지 싶어 마음 편히 경험해보면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공연 당일이 되어 알았다. 여섯 곡 중 네 곡이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일 줄은… (내가 어쩌다 여기까지 왔지?)

 

 

 

2. 시벨리우스 바이올린 협주곡


 

 

 

시벨리우스가 남긴 유일한 협주곡인 바이올린 협주곡 Op.47은, 한 번의 실패를 딛고 다시 태어난 곡이다. 처음 초연에서는 난이도와 완성도 문제로 좋은 반응을 얻지 못했지만, 대폭 개정을 거쳐 다시 무대에 오른 뒤, 특히 1935년 야샤 하이페츠의 녹음 등을 계기로 오늘날 가장 사랑받는 바이올린 협주곡 중 하나가 됐다.

 

 

바이올린이나 클래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거의 알고 있을 만큼 유명한 곡이지만, 정작 이 협주곡을 온전히 들어본 적은 많지 않았다. (최애가 안 했다)


1~3악장을 깊게 들은 적도 없고, 공부도 거의 되지 않은 상태였으며, 공연 당일에야 음원을 몇 번 돌려 귀를 익숙하게 만드는 정도가 전부였다.


다만 급히 들이킨다고 해서 협주곡과 금세 친해지기 어렵다는 걸 잘 알고 있어서, 그냥 할 수 있는 만큼만 가볍게 다가갔다. (듀오 버전을 들어본다든지) 그렇게 몇 번 지나가듯 듣다 보니, 이 곡—말이 참 많다. 소리가 자잘하게 나뉘어 들리고, 가볍지 않게 수다스러운 구석이 있다.


1악장은 누구라도 좋다고 느낄 선율이 많아 부담이 없었고, 3악장도 생동감 있게 밀어붙이면 그만이었다. 문제는 2악장이었다. 무척 고즈넉한데, 예습도 거의 안 된 상태로 가서 그 정적인 감정선을 온전히 따라갈 수 있을까. 약간의 걱정이 얹혔다. (그런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관람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이번 기회가 아니면 언제 또 퀄리티 있는 시벨리우스를 들을 수 있을까. 그것도 하루에 네 번씩이나. 음원 사이트에서 같은 곡을 네 번 듣는 일과, 실제 라이브로 네 번 이어 듣는 일이 같겠느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다를 것이다. 빠른 감기나 일시정지가 불가능한 실연이 쉴 새 없이 이어지는 것이니, 단순한 마음으로 듣기엔 쉽지 않을 게 분명했다.


그럼에도 가야만 했다. 왜냐고? 배울 점이 많아 보였으니까. 최애도 레퍼토리를 늘려가는데 나도 질 수 없다! (농담)

 

 

 

3. 낯선 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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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선이 약속된 13시, 공연장 로비와 관람석의 분위기는 알게 모르게 가라앉아 있었다. 평일 예당 로비는 원래도 고요한 편이지만, 오늘은 확실히 공기가 무거웠다.


무대에 오르는 한경 arte 필하모닉 단원들의 표정도 대부분 경직되어 있었다. 이날 여섯 협연자의 밀착된 소리도 놀라웠지만, 이 40분짜리 릴레이를 여섯 번 반복해내는 단원들에게 더 큰 경의를 표하고 싶었다.


어찌나 압축적인 소리를 내는지, 협연자와 얼마나 정확하게 맞춰 나가는지 그 집중력이 고스란히 느껴졌다. 장윤성 지휘자와 단원들이 악보를 뚫어져라 응시하며 몰입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오히려 내가 기가 빨릴 지경이었다.


1부가 끝날 무렵에는 한 연주자가 고개를 털썩 떨구기도 했고, 2부에서는 한 첼리스트가 안경을 쓰고 다시 등장했다. 이만큼 긴장과 체력이 필요한 무대였다.


늘 나에게 기대와 재미를 선사하던 공간 위에 처음으로 ‘경연’이라는 키워드가 떠오르니, 저 무대가 낯설게 느껴졌다.


내게 예술의전당 콘서트홀은 늘 ‘공연’이 실현되는 곳이었고, 배움과 경험을 안겨주는 공간이었다. 연주가 시작되면 시선의 초점은 자연스레 ‘나’에게로 돌아오곤 했다. 행위자는 무대 위에 있지만, 돈을 내고 입장한 이상 주체는 결국 나 아닌가.


그런데 오늘의 주인공은 따로 있었다. 경연자들? 아니다. 소리의 주인은 2층에 있었다.


쉬는 시간마다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위층을 올려다보는 모습이 자꾸 눈에 들어왔다. 인터미션 때 뒤돌아보니 정장 차림의 사람들이 로비 밖으로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제야 알았다. 아, 심사위원들이구나. 오늘의 소리가 결국 닿아야 하는 자리는 바로 저기구나.


그날, 모두가 연주자의 손끝에서 피어나는 순간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누군가는 눈썹을 찌푸리고, 누군가는 눈을 감고, 또 누군가는 흔들리는 눈빛으로. 소리는 어땠더라? 모두가 완벽했다. ‘바이올린은 소리가 높아서 귀가 아프다’는 일반적 인상은 단 한 번도 떠오르지 않았다. 같은 곡이든 다른 곡이든, 모든 바이올린이 별똥별처럼 반짝이고 있었다.


이러니 귀를 기울이지 않을 수 없었다. 내게 이 무대가 ‘경쟁’을 통해 얻어지는 자리라는 점도, ‘성장’을 위해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는 점도 크게 중요하지 않았다. 네 번의 시벨리우스를 지나며, 각자가 어떤 얼굴로 다가올지 그저 알고 싶었다.

 

짧은 예습에서 가장 걱정되던 2악장—누구의 해석에 가장 귀가 끌릴까? 그 생각이 나를 들뜨게 했다. 13시부터 17시가 넘도록 이어지는 협주곡 릴레이를 과연 견딜 수 있을까? 견뎌낸다면 나는 바이올린을 더 사랑하게 될까. 확인하고 싶은 질문들이 나열되기 시작했다. 시벨리우스를 가운데 두고 살펴보면 어떨까.

 

 

 

4. FINAL ROUND 



기도 - 올렉시 티셴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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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주는 [기도] 같아요.”


그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연주를 ‘기도(Pray)’라고 정의했다. “음악은 작곡가를 통해 신으로부터 우리의 영혼으로 전달되는 것”이라 믿으며, 기도처럼 경건하고 영적인 연주를 보여주겠다는 다짐이었다.

 


1악장


흩날린다. 외로운데 간절하다. 숨을 내쉴 때도 들이마실 때도 홀연하다. 음색이 얇게 열리며 스르르 번지는 순간 소리가 환해진다. 잠깐 비치는 햇빛 같고, 밝음 속에 은근한 신성함이 머문다.


오케스트라의 응답을 기다릴 때는 무척 외로워 보였다. 웃음기 하나 없이 멍하니 어딘가를 내다보는데, 얼마나 아득하게 기원하는지. 바람에 운을 띄우는 사람 같다.


한 계단씩 오를 때도 이만큼 자애롭고 부드럽게 제 것을 내보이니, 저 청을 들어주지 않을 이가 있을까. 잠깐의 기다림 뒤에 오는 음은 또 초연하다.


드러냄에 있어 물러남이 없는데, 이렇게 욕심이 없을 수가 있나. 새벽녘을 많이 닮아 있다. 고요한 공백이 소리 바깥에 오래 머문다.


음표에 윤을 낼 때도 전체를 보여주기보다, 순간마다의 빛색을 들여놓는다. 어둠을 내리까는 순간에도 비장할 뿐 삿된 기운이 없다.


향하고자 하는 곳은 어디인가? 잠시 머뭇거리다 일직선으로 뻗어 나간다.


바이올린 하나가 조용히 얇게 올라가다 현악 위로 운치를 드리운다. 애달프게 그려놓는다. 한걸음씩 오르는데도 왜 이리 뒤로 물러날 사람처럼 아리아를 할까. 바라는 게 이리도 없다.


2악장


1악장보다 가라앉은 마음이 있다. 울먹이다 목이 멘다. 하지만 내주는 건 여전히 차분하니, 너무 깊게 슬퍼할 필요는 없다.


이전보다 더 안쪽으로 제 마음을 들여다놓은 것이겠지. 두세 갈래로 낮아지는 노래를 부를 때도, 드높이는 순간에도 생기를 들여놓기 시작한다.


포기할 기색이 전혀 없다. 홀로 서 있다 해도 가만히 지켜볼 수 있다. 왜냐고? 반드시 일어날 테니까.


안개 속에서 멀찍이 다가온다. 서서히 여기까지 온다면 어떨까. 굳이 이 자리까지 오지 않아도 된다. 네 번의 다가옴이 끝나면 숨자락이 헐떡이기 시작할 것이다.


거대한 마음 하나가 여기에 머물러 있을 테니, 짧은 세 번의 인사로 기다란 이별이 보인다. 내려놓았구나. 그가 그렇게 했다.


3악장


생동감을 올려다 놓는다. 무게에서 벗어나 훨씬 가벼워졌다. 작게나마 로맨틱해지기도 한다. 생기가 돈다. 보기 좋다.


얼굴에 홍조가 오른다. 마음을 내놓고 금세 떠나버리는 잔재주도 부린다. 그럼에도 체면은 분명히 서 있다.


모든 시작에는 ‘기도’가 전제돼 있으니, 바른 자세 안에서 대화를 나눠야 한다. 약간이라도 번뇌가 있으면 안 된다.


이 풍경 안에서는 저만큼 재미나게 놀 줄 알아야 한다. 수직의 기다란 휘파람도 불어준다. 음표가 밀집될 때도 새침한 빗금으로 우리를 몰아붙인다. 

 

그럼에도 부담스럽지 않다. 오히려 기꺼이 받아들일 수 있는 선한 기운의 회오리다. 어찌 거부할 수 있을까.

 

 

횃불 - 이예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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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주는 [횃불]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연주를 ‘횃불(Torch)’이라 정의했다. “인간적인 소리를 담아, 듣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와 빛을 전하는 연주”를 들려주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1악장


불 하나가 켜진다. 시리게 푸르다. 공기가 일렁인다. 타닥이며 흔들리는 저 파란빛에 시선을 빼앗기지 않을 이가 있을까.


목소리가 얼마나 가득한지. 신념이 머물고 있으려나. 첫선의 두터움이 진득하게 표현되니 음을 따라가기 충분하다. 화려하게 타오르려 한다.


장중한 기색이 가득하다. 검은 그림자로 영역을 넓히려는 설원 같다. 뜨겁다 못해 태워질 것만 같다.


소리의 색이 까맣다. 횃불을 가운데 두니 오케스트라 첼로의 움직임이 이상하게 잘 들린다. 다시 모습을 드러낼 때에도 물러섬이 없으니 뒷선의 거대함이 객석까지 드리운다.


어둑한 기운이 은근히 배어 있다. 도깨비불 같은 그림자가 공기를 따뜻하게 만든다.


대지를 불 하나로 데워놓듯 급하지 않게 나아간다. 세 번의 숨자락이면 충분하다. 멀리, 넓게 날아갈 것이다.


잠깐의 공백 뒤엔 압축된 속도가 몰아친다. 활이 뒤로 갈 때마다 열기가 짙어진다. 중심을 잃은 듯 어지러움이 스치고, 깊은 곳을 파고드는 울음 같은 결을 지난다. 치기 어린 불꽃이 번진다.


잠깐의 기다림 뒤의 것은 분명하다. 아— 횃불이 되었구나. 혼자 서서 빛을 저 앞까지 뻗어놓는다. 도저히 말릴 수 없다.


2악장


드넓은 소리로 이야기를 거닌다. 어찌 명상적이지 않을까. 듣는 이에게 위로와 빛을 전해준다.


우리는 가만히 앉아, 천천히 하강해오는 것들을 받아들이기만 하면 된다. 충분히 떨려도 줄 테니, 그저 내려와 주길 기다리면 된다.


거대한 오케스트라 풍경 속에서 멍하니 있을 때도, 눈높이보다 살짝 아래에서 굴곡지게 앞으로 향해준다.


이 연주가 품은 시벨리우스는 서사적이다. 마냥 밝지 않아 좋다. 그림자를 닮은 빛이라 더 반갑다.


계단을 오를 시점에는 멀리 뒤쪽, 잘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세세하게 타오른다. 그 불 앞에는 세상을 향한 위안이 가득해, 다가옴이 반갑다.


3악장


거대하게 움직인다. 불꽃놀이 시작 전의 들뜸일까. 제야의 서막 같기도 하다. 재간을 다채롭게 부리니 보는 재미가 있다.


비장하게 뭉쳐 있으니 맞춰 가는 길목을 지켜보는 재미도 크다. 다른 악기와 화음을 맞춰가며 교환하는 시선이 보인다.


기교를 살리는 길도 세세하게 보인다. 어두운 캐릭터를 생동감 있게 살려 흥미롭다.


소리가 뒤에 물러서 있을 때가 있는데, 그 간격은 어떻게 만들어내는 걸까. 위태롭게 음을 세워도 밑바탕이 든든해 따라갈 수 있다.


끊김 없이 요동칠 때도 중심은 늘 바로 서 있다. 장중하게 걷다가 미련 없이 이별을 그려넣는다.

 

 

진실함 – 임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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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주는 [진실함]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연주를 ‘진실함(Honesty)’이라 정의했다. 느끼는 바를 가감 없이 공유하고, 청중과 깊이 소통하고 싶다는 다짐이었다.

 

 

1악장


멀지 않은 곳에서 선명함이 서서히 다가온다. 현악과 다른 악기 사이에서 가장 세밀하게 조율된 소리가 회색 지대를 향한다. 빛광선을 닮았다. 모양새가 크고 속 시원하다. 조여오는 기세는 없는데, 분위기를 휘감는다.


얇게 갈라지는 음표가 공중에 떠 퍼진다. 빛자락이 지직이며 잿빛 기운을 얹는다. 하나씩, 내놓는 음표가 있다. 연주자마다 힘주는 포인트가 어찌 이리 다를까. 같은 선율도 다루는 방식이 이렇게 다른가. 안갯길에서 굳이 파헤칠 필요는 없다.


소리가 드높아질 때도, 내려올 때도 혼자일 때 강한 기세를 보인다. 갈수록 간드러지고 단단해진다. 이 진실 안의 시벨리우스는 평화롭고, 무엇보다 솔직하다. 선율이 공명을 닮았다.


여분을 들이지 않으면서도 흔들리지 않는다. 기다림 이후의 것은 또렷하다. 음과 음 사이의 간격은 크지만, 길은 유연하게 꺾여간다. 따라가도 지루하지 않다.


결을 다채롭게 가져온다. 얇은 선, 지직이는 선, 둥근 파동, 흐느낄 선, 울먹일 선, 고요 속에 들여다놓는 선. 옆으로 누운 입체감 있는 선들이 대각선 서사를 만들며, 소리가 영화를 닮아간다.


차올라 내려놓는 길에서도 유달리 튀지 않는다. 광활한 풍경에 어울릴 만큼만 색감을 들인다. 너무 높게 날지 않는다. 적당한 거리에서 자잘한 춤을 춘다. 이만큼 세세하고, 이만큼 섬세하다.


2악장


세 갈래로 담담히 슬퍼한다. 너그럽게 받아들인다. 이보다 진실할 수 있을까. 큰 풍경이 가득하다. 내쉼이 길게 드리워져 있어 외롭지 않다. 포용의 시간일까, 융합의 선율일까.


타오르는 숨자락이 부담스럽지 않다. 하나의 숨, 그리고 또 하나의 숨. 이 반복되는 길을 뭐라 정의하면 좋을까. 아, ‘감동’이겠다.


다정하고 시원하게 계단을 오를 때도, 공간을 내어주며 서서히 다가오는 마음이 있다. 어디까지 감싸 안으려는 걸까. 다시 대각선의 소리를 데려와 안식을 준다. 평온함을 그어주어 고맙다.


3악장


깊은 저음을 들여다놓으며 지직이는 촉감을 얹어 시작한다. 소리는 생긋한데 흐름은 아래를 걷는다. 그 간격이 재미있다. 톤은 높은데 밑바탕 아래를 계속 거닌다. 채워 올릴 때도 든든하다.


소리의 끝과 끝에 텐션이 있어 밀착감이 높다. 오케스트라 선율과 합쳐지니 형체감이 생긴다. 꽤 신이 난 상태로 생긋거리기도 한다. 복잡한 고무줄놀이처럼 얽히면서도 물러서지 않는다. 정말 잘 치고 들어온다. 다정하고 시원한 연주다.

 

 

심장 – 윤해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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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주는 [심장]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연주를 ‘심장’이라 설명했다. 화려한 기교보다 진심을 담아 연주하고 싶다는 다짐이다.

 


1악장


시작과 끝이 거의 같은 결로 다가오는데, 그 모양이 정돈되어 있다. 소리의 기세가 좋다. 꽤 용감하게 직진하니 지켜보지 않을 수 없다. 오래 기다려온 사람 같다. 지금까지의 연주자 중 가장 맹렬하고, 가장 과감하게 내민다.


소리를 쏟아낸다. 아— 이 시벨리우스는 뭔가. 심장을 닮았나? 공기가 가득한데 짙기도 하다. 재미난 포인트를 직관적으로 살려준다. 외형은 유순해 보이는데, 소리는 ‘심장’ 한가운데 맺혀 있다.


강인하게 시벨리우스를 쏟아내리는데 바닐라빛이 섞여 음이 번쩍인다. 드넓고 보기 쉽게 내민다. 숨어 있는 것들을 굳이 찾아낼 필요는 없다. 관객 앞으로 먼저 다가와주니 바라보기 편하다.


매사에 세밀하게 가라앉고, 끝에서는 완강해진다. 헷갈릴 틈을 주지 않는다. 어렵게만 나아가야 할까? 담대하게 접근할 수는 없을까. 이 연주는 그 질문에 바로 답을 내놓는 듯하다.


부정될 것 하나 없다고 일러주는 음이 있어 친절하다. 드넓게 울고, 가장 두꺼운 상승곡선을 만들어낼 것이다.


2악장


이 2악장은 내게 가장 처음으로 ‘음악적인 순간’이었다. 인간답게 깊숙하게 운다. 쉽게 공감할 수 있는 흔들림이다. 묘사하려는 바가 직선적이고 솔직하니, 별다른 설명이 필요 없다.


울었다. 능선을 그려주었기 때문이다. 멈추어 주기도 했기 때문이다. 그 점이 무척 마음에 들었다.

 

3악장


이미 마음에 든 순간부터 펜을 놓았다. 관찰은 접어두고 마음껏 그의 연주를 향유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작곡가가 왜 저렇게 말이 많고 연주자에게 묘사를 요구하는지 모르겠지만, 반복해서 듣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곡을 받아들이게 된다.


원래 이런 사람인 걸 어떡하겠나. 그대로 받아들여야지. 멀찍이서 쏘아붙이는 것을 바라보는 재미를 들여다보라.


끊임없이 뒤흔들고, 한 발로 서서 낯선 춤을 추고, 빛을 사방에 내동댕이치다가, 일순 장중해지는 틈을 두고 우리 곁을 떠나버릴 것이다.

 

 

 

5.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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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벨리우스를 네 번, 브람스와 차이콥스키를 한 번씩 지나왔다. 콘서트홀의 빔 스크린 위로 THE END 글자가 떠올랐다. 가뿐한 마음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로비 밖으로 나오니 어느새 유리창 밖 풍경이 어둑해져 있었다. 한낮에 들어왔는데, 벌써 하루가 다 지나 있었다.


얼른 집에 가야지! 끝나자마자 후다닥 예술의전당 밖으로 빠져나왔다. 콩쿠르가 끝났으니 시상식을 봐야 하지 않겠느냐고? 나는 공연을 보러 온 것이지, 시상 결과에 관심이 있는 건 아니다.


무엇보다 어찌 내가 순번을 매길 수 있을까. 기도와 여정, 횃불과 진실함, 편지와 심장에 어디 순위를 놓는단 말인가. 내 세계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다. 나의 첫 시벨리우스를 이만큼 다채롭게 이끌어주었는데.


첫 번째 시벨은 3악장, 두 번째는 1악장, 세 번째는 2악장, 그리고 마지막 시벨리우스는 전체 악장이 나의 시선을 앗아갔다. 콩쿠르를 보러 왔다가 구간마다 감동받아 울고 있는 사람은, 아마 나뿐이었을 것이다.


여기서 잠깐. 당신이 이 글을 여기까지 읽었다면, 궁금해지지 않았을까? 브람스랑 차이콥스키는 어땠냐고. 시벨리우스만 하고 넘어가면 아쉽지 않으냐고.


내가 남몰래 적어둔 메모를 살펴보고 싶다면—잠깐만 기다려보시라.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 77 — 제이슨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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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주는 [여정] 같아요.”


그는 자신의 연주를 ‘여정(Journey)’이라 정의했다. 한 곳에서 시작해 수많은 산과 계곡을 지나는 긴 여정처럼, 기승전결이 살아 있는 드라마틱한 연주를 들려주겠다는 다짐이었다.

 


어떤 여정일까. 댄디하고 상큼하게 입장해 주니 보기 좋다. 교수님 같은 느낌도 난다. 편안하게 기다려주니, 이 여정을 맡겨도 되겠다 싶다.


소리가 스무스하게 끊겨 있기도 하면서 너그럽게 밀착된다. 신기한 점은, 사운드가 사방으로 펼쳐지는데 본인은 매우 정적으로 서 있다는 것이다. 기본기가 굉장히 좋아 보인다.


소리가 무지개처럼 사방으로 펼쳐졌다. 이 브람스의 완성도는 꽤 높았다. 혹시 브람스 바이올린 협주곡은 힘을 중앙에 응축시키는 작품일까?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이구나 싶었다. 오케스트라 선율을 감상하는 모습에서 그가 말한 ‘여정’이 쉽게 느껴졌다. 힘도 좋고, 아스라히 별을 보여주기도 하니 그야말로 만끽이었다.


브람스에는 회오리가 있다. 비브라토가 뒤로도 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2악장은 급하지 않고 선명하게 짚어 나가는데, 색이 진해서 좋았다.


3악장은 어땠더라. 성량이 좋고 능숙했다. 정제된 전쟁일까, 친절한 가이드일까. 바람의 품 안에서 끄적일 수 있어 행복했다.


참, 이 사람 브람스와 무척 친해 보였다. 어떻게 그렇게 친해졌을까. 아마 끊임없이 대화를 나눴겠지. 연주를 한다는 건 레퍼토리를 넓히는 일인 동시에, 곡 하나를 오래 갈고닦는 여정이기도 하니까.



차이콥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라장조 작품 35 — 릴리아 포치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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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연주는 [편지] 같아요.”


그녀는 자신의 연주를 ‘편지(Letter)’라고 정의했다. 관객에게 친밀하고 사적인 이야기를 건네듯, 마음을 담아 띄우는 연주를 들려주겠다는 의지였다.

 


어떤 편지를 써줄까. 그런데 이분, 완전 팝스타 아닌가? 드레스가 너무 멋지다. 차이콥스키 특유의 두드림이 심장 안에서 콩콩 뛰기 시작한다. 서서히 시동을 건다.


와, 정말 깔끔하다. 진득하기도 하다. 가끔 지나가는 작은 ‘표정 같은 소리’들이 마음에 든다. 기교를 일렬로 세우듯 정교하게 펼친다. 두꺼운 펜으로 누르지도, 급하게 긋지도 않는다.


따뜻한 광선 같다. 매혹적이다. 소리가 정말 또렷하고 또각거리며 정확하다. 꾹꾹 눌러주는 기운이 있다. 딕션이 훌륭한데, 그 상태에서 가벼워지기도 한다. 차이콥스키가 그렇게 하라고 한 걸까? 신기하다.


소리만 들으면 매우 어려운 연주일 텐데, 표정은 아무렇지 않아 보인다. 너무 기계 같아서 구경하기 바빴다.


3악장은 어떨까. 방 안에 혼자 있는 사람 같다. 진중하고 자애롭고, 가라앉은 카리스마가 있다. 해리포터에 나올 것 같은 분위기다. 별 박힌 검은 망토를 입고 조용히 웃어줄 것 같다.


굉장히 안정적인 연주자다. 오케스트라는 그 안에서 재치가 생긴다. 이 편지는 잉크펜으로 쓰였구나. 이렇게 차분하게 나아가려면, 바이올린과 얼마나 오래 대화를 나눠야 했을까. 궁금하다.

 

 

 

6. 해피 시벨리우스 데이 — 내게 남은 문장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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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10일 콘서트홀 무대를 모두 지나왔다. 

숨이 가쁘지 않았느냐고? 

글쎄. 오히려 한 문장을 얻어 기쁘기만 하다. 

뭘까?


“나 생각보다 바이올린 많이 좋아하나 봐! (으하하)”

  

협주곡 여섯 번 정도는 막힘없이 들을 수 있네? 

나의 12월 10일은 해피 시벨리우스 데이, 그 자체였다.

그러니 내 기분은 아주 가볍고 신나게 도약하는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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