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의 영화 비평가, 앙드레 바쟁은 인간이 예술을 통해 현실을 붙잡아두려는 욕망의 근원으로 ‘미라 콤플렉스’를 언급했다. 그는 특히 조형 예술의 정신적인 기원이 시신의 부패를 막기 위한 방부 보존에서 비롯되는 것이라고 보았으며, 이 연장선상에서 시각 매체인 영화를 이해했다. 바쟁에게 영화란 단순한 현실의 복제가 아니라 현실의 이면을 낯설게 드러내며 관객의 인식을 깨우는 예술이었다.
그는 영화의 재현 능력보다 익숙한 시선과 사회적 편견을 해체하고 현실을 다시 인식하게끔 하는 고유한 힘에 주목했다. 즉, 관객 스스로가 현실을 성찰하는 시선을 가지게 할 때 영화가 비로소 예술적 가치를 지닌다고 보았으며, 바쟁은 이를 통해 영화가 성찰을 촉발하는 매체가 될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런 맥락에서 본다면, 다르덴 형제의 <로제타>는 바쟁이 꿈꾸었던 리얼리즘의 정수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작품으로 평가해볼만 하다.
영화는 벨기에의 트레일러 촌에 사는 한 청소년 노동자의 생존 투쟁을 다룬다. 하지만 거기에는 흔한 나레이션도, 감정을 고조시키는 음악도 없다. 대신 카메라는 로제타의 등 뒤에 붙어 있는 것처럼, 그녀의 거친 숨소리와 흔들리는 몸짓을 집요하게 따라간다. 이 불안한 앵글은 관객이 로제타를 동정하거나 연민할 틈을 주지 않는다. 그저 그녀의 척박한 현실 속에 감춰진 것들을 드러내 관객에게 그대로 보여준다.
이것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 폐허가 된 이탈리아의 거리를 있는 그대로 비췄던 네오리얼리즘의 정신과 맞닿아 있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꾸며진 세트가 아닌 실제 거리로 나가 도시의 얼굴을 담아냈던 그들처럼, 다르덴 형제는 현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지 않음으로써 역설적으로 현실의 비참함을 가장 투명하게 드러낸다.


영화의 리얼리즘적 매력을 엿볼 수 있는 백미는 단연 결말부라고 할 수 있다. 가스가 떨어져 자살조차 실패한 로제타가 가스통을 힘겹게 들고 돌아오는 장면, 그리고 그녀가 일자리를 뺏기 위해 배신했던 리케가 그 주위를 맴도는 장면은 긴 롱테이크로 이어진다. 카메라는 묵묵히 그들의 동선을 쫓을 뿐, 섣불리 컷을 나누거나 결론을 내리지 않는다. 바쟁이 말한 현실의 모호성이 극대화되는 순간이다.
이 지독한 롱테이크 앞에서 관객은 수동적인 구경꾼으로 남을 수 없다. 감독이 의도한 감정에 휩쓸리는 대신, 저 불편한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받아들일지 스스로 결정해야 하는 위치에 놓여진다. 영화는 로제타의 선택을 옹호하지도, 비난하지도 않는다. 그 판단의 몫을 온전히 관객에게 넘김으로써 영화는 -바쟁이 주장했듯- 윤리적 성찰의 도구가 되는 것이다.
<로제타>를 통해 다르덴 형제가 보여준 것은 단순한 가난의 전시가 아니다. 익숙한 일상의 틈을 비집고 들어가, 우리가 외면하고 싶었던 타인의 고통을 정면으로 응시하게 만드는 힘이다. 현실을 미화하지 않는 정직한 카메라, 그리고 그 안에서 관객이 스스로 사유하게 만드는 힘. 이것이 바로 바쟁이 말한 영화적 진실이며, 우리가 여전히 <로제타>를 리얼리즘의 정수로서 이야기하고 있는 이유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