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치유로서의 예술, 예술로써의 치유 [영화]

글 입력 2023.11.05 1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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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게시물에는 영화 <키리에의 노래>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예술은 치유의 능력을 갖는다. 가라앉고 싶은 날에 슬픈 영화를 틀고 한껏 울어 버리거나, 지친 퇴근길에 좋아하는 음악을 반복 재생하며 힘을 내는 사람들이 그 사실을 증명한다.

 

비유적인 표현만은 아니다. 미술 치료나 음악 치료처럼 창조적인 예술 활동을 통한 심리 치료는 이미 다방면으로 활용되는 의학적 기법이다. 예술가는 창작을 통해 내면을 드러내고 부정적인 감정을 예술혼으로 승화한다. 감상자는 작품을 받아들이며 감정을 소화하고 곪아 가는 상처 위에 연고를 바른다.

 

이와이 슌지의 신작 <키리에의 노래>는 이 상호 작용을 이중적으로 사용한다. 영화 안에는 음악을 내뱉고 음악을 삼키며 치유 받는 인물들이 있다. 영화 밖에는 실재하는 참사의 (직・간접적) 경험자들이 있다. 이들 또한 영화가 건네는 위로에 감응하며 서로의 상처를 보듬는다.

 

거리를 떠돌며 노래하는 싱어송라이터 ‘키리에’는 재난 후유증으로 말을 잃었다. 그가 자신을 표현하고 사회와 소통하는 순간은 오직 노래할 때뿐이다. 키리에는 어린 시절 함께한 ‘잇코’를 우연히 다시 만나 조금씩 세계를 넓혀 간다.

 

공연 영상을 SNS에 업로드하며 인지도를 높이고, 동료 뮤지션을 만나 밴드를 이루기도 한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키리에의 목소리가 커지고 말수는 늘어 가며 노래는 밝아진다. 영화는 음악을 통해 치유 받고 성장하는 키리에의 궤적을 따라간다.

 

그런가 하면 어린 키리에의 방황과 그를 거둔 ‘나츠히코’, 고등학생이 되어 처음 만난 잇코 등 플롯은 시간대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관객에게 혼란을 준다. 마치 억지로 눌러 담은 기억이 하나둘 틈을 비집고 빠져나오는 듯하다.

 

키리에의 기억을 훔쳐보는 관음증 환자의 기분으로 남은 러닝타임을 가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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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가 다루는 과거 배경은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이다. 재앙 아래 결혼을 약속한 연인을 잃은 나츠히코는 죄책감과 그리움으로 얼룩져 있다. 연인의 어린 동생 ‘루카’를 돌보는 것으로 마음의 짐을 덜어내고자 했으나 그마저 실패한다.

 

시간이 흘러 다시 만난 루카는 마지막으로 본 연인의 얼굴과 같은 모습이다. 처음에는 동생과 언니 역에 같은 배우를 기용한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바로 다음 장면, 나츠히코가 루카 앞에 무너져 내리며 용서를 구하는 모습을 보고서야 영화가 의도한 바를 읽을 수 있었다.

 

언니인 키리에의 이름을 빌려 세상에 대신 목소리를 내는 루카는 그 스스로에게도, 나츠히코에게도 치유의 첫걸음이 된다. 나츠히코는 키리에의 이름을 한 루카에게서 덮어둔 상처를 열어 볼 용기를 얻는다. 연인의 얼굴을 닮은 아이에게서 속죄와 치유의 여지를 발견한다. 스스로를 끌어내어 내뱉고 소리치고 절규하고자 노래를 시작한 루카, 아니 ‘키리에’의 음악은 다시 듣는 이의 내면을 파헤친다.

 

그 손길이 아프지 않아 상처를 내보이는 일은 기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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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하얀 설원을 걸어가거나 눈 속에 파묻힌 채 누워 서로를 바라보는 키리에와 잇코의 오프닝・엔딩 신은 감독의 유명작 <러브레터>를 떠올리기에 충분했다. 본인에 대한 재치 섞인 오마주 같기도 하다.

 

<릴리 슈슈의 모든 것> 마지막 장면에 비할 바는 못되지만 엔딩 크레딧 너머 자유로이 걸어가는 키리에의 모습과 그의 노랫소리는 오래 기억에 남을 만하다. 생긴 적 없던 상처를 치료 받은 기분이다. 이 또한 예술의 능력일지어니, 감사히 온몸을 내맡긴다.

 


[김나경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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