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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은 흔히 아이디어나 전략의 영역으로 여겨진다. 무엇을 만들 것인가, 어떻게 차별화할 것인가에 대한 기술의 문제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이 통념을 정면으로 뒤집는다. 이 책은 기획을 기술이 아닌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에서 출발시키며, 모든 콘텐츠의 시작점에는 결국 사람이 있음을 강조한다.


저자 편은지 PD는 KBS 예능 프로그램을 연출해 온 방송 PD다. 특히 〈살림하는 남자들〉 프로그램을 대표 예능으로 성장시키면서 자신만의 기획 노하우를 꾸준히 갈고 닦아왔다. 이 책은 이러한 현장 경험을 바탕으로, 기획의 본질을 ‘사람 중심’으로 재정의한 책이다.


이 책의 가장 큰 차별점은 기획 방법론을 나열하지 않는 데 있다. 대신 기획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질문들, 즉 '왜 사람을 봐야 하는가', '어떻게 관계를 설계할 것인가'를 끈질기게 묻는다. 특히 방송 PD라는 직업적 관점에서 실제 프로그램 사례를 통해 사람 중심 기획이 어떻게 구현되는지를 보여주고, 책의 말미에는 편은지 PD만의 실전 기획 노하우를 압축해 놓은 기획 노트까지 담아 실무에도 바로 적용 가능하도록 구성했다.

 

 


사람과 애정, 그리고 콘텐츠


 

이 책은 네 개의 장을 따라 기획의 태도를 단계적으로 확장해 나간다. 챕터 1 ‘사람을 어떻게 본다는 것인가’에서 저자는 기획 과정에서 사람을 바라보는 태도와 방식에 관해 이야기한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바로 ‘무표정의 표정을 읽는 능력’이었다. 여기에서는 ‘덕후’가 같은 대상을 여러 번 보며 미세한 감정의 결을 포착하듯, 기획자 역시 사람을 오래 보고 관찰하는 자세를 통해 그 안에서 새로운 기회를 포착함을 이야기한다.

 

 

덕후로 오랜 시간 살아오며 체화된 점은 ‘무표정의 표정을 보는 능력’ 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분명 무표정인데, 애정 가득한 덕후의 눈에는 그 안의 수많은 생각과 갈등이 보였습니다.

 

- 사람을 기획하는 일, p.50

 

 

이 대목을 읽으며, 내가 원하는 기획 역시 결국 비슷한 방식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들이 할 수 없는 기획은 결국 남들이 볼 수 없는 순간에서 시작된다. 남들이 볼 수 없는 지점을 보기 위해서는 스스로가 그런 지점을 포착할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반복하여 보아야 한다. 덕후는 '애정' 하나로 이 끊임없는 과정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반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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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챕터 2 ‘사람을 기획하는 태도’에서는 기획을 꾸며내는 기술이 아닌, 드러내는 과정으로 설명한다. 저자는 ‘좋아하는 눈이 결국 기획을 만든다’고 말하며, 대상에 대한 존중과 호기심이 없는 기획은 쉽게 소비되고 사라질 수밖에 없음을 지적한다.


특히 인상적인 대목은 '자기 말로 말할 줄 아는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기획의 목적은 누군가를 캐릭터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각자의 언어를 드러내고 설계하는 것이다. 누구도 따라 하지 못하는 자신만의 고유한 정체성을 자신만의 언어로 일관되게 구축하는 것이 바로 브랜딩이라는 점을 다시금 깨달았다.

 

 


지속 가능한 콘텐츠


 

한편 챕터 3 ‘오래가는 기획은 무엇이 다른가’에서는 현장 사례를 통해 기획의 지속성을 탐구한다. 저자는 출연자 미팅을 거주지에서 진행하는 이유를 설명하며, 이는 단순한 친목이 아니라 그 사람이 살아가는 일상의 결을 관찰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이러한 관찰을 통해 시청자와 만날 수 있는 공감의 지점을 발견하는 과정이 곧 기획이라는 것이다.

 

사실 기획자라는 직업을 갖고 있어도, 일을 하는 도중 어떤 부분에서는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라고 생각되는 지점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러나 기획은 '이렇게까지 해야하는 일'이다. 그 한 끗 차이가 기획의 디테일과 진정성을 덧입힌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의 출연자 미팅 방식은 이제 막 기획 업에 발을 내딛은 나에게는 굉장히 대단한 모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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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챕터 4 ‘콘텐츠 뒤에 사람을 남기는 법’은 기획의 지속성을 관계의 문제로 확장한다. 저자는 오래 본다는 것이 본질적으로 괴로운 일이라고 말한다. 잠깐 소비되는 아름다움과 달리, 가까이에서 오래 바라볼수록 드러나는 ‘생활형 네거티브’를 견뎌야 비로소 사람이 남는다는 것이다. 이는 기획을 성과 중심의 결과물이 아니라, 함께 버티는 시간의 문제로 바라보게 만든다.

 

 

그러나 오래 본다는 것에는 단순히 엉덩이 힘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생활형 네거티브를 견뎌내는 힘이 추가로 요구됩니다. ‘생활형 네거티브’란, 잠깐 보았을 때는 전혀 느낄 수 없는, 가까이에서 직접 접하고 바라보아야만 느껴지는 것들입니다.

 

- 사람을 기획하는 일, p.162

 

 

대개 이러한 생활형 네거티브는 부정적인 '날것'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지속 가능한 콘텐츠는 그 과정에서도 분명한 인내를 요구한다. 때로는 그 날것의 모습에서 전혀 새로운, 굉장히 반짝이는 아이디어를 얻을 수도 있고 콘텐츠 자체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더 큰 빛을 볼 수도 있는 것이다.

 

***

 

결국 <사람을 기획하는 일>이 전달하는 분명한 메시지는 애정을 기반으로 한 콘텐츠의 힘이다. 모든 것이 연출될 수 있는 시대일수록, 사람들은 진실성에서 출발한 이야기를 찾는다. 오래 보고, 오래 고민하고, 끝내 자기만의 언어를 만들어내는 과정. <사람을 기획하는 일>은 기획을 기술이 아니라 태도로 이해하게 만드는, 사람 중심 기획의 입문서이자 성찰서다.


따라서 이 책은 기획자만을 위한 책이 아니다. 팬을 만드는 콘텐츠를 고민하는 콘텐츠 마케터, 브랜드의 얼굴을 설계하는 브랜딩 실무자부터, 사람과 함께 일하는 모든 사람에게 유효한 책이다. 이 책이 제안하는 것은 하나다. 사람의 서사를 읽고, 매력을 설계하며, 진정성 있게 전달하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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