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에는 다양한 냄새가 있다. 그 중에서도 '겨울 냄새'는 유난히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시작에 대한 설렘도 분명 존재하지만, 그보다 더 우리의 심장을 뛰게 하는 건 아무래도 크리스마스일 것이다.
크리스마스는 종교적 행사를 넘어서 전세계가 즐기는 축제가 되었다. 유럽의 문화로만 여겨지던 크리스마스 마켓은 이제 한국에서도 심심치않게 찾아볼 수 있다. 거리를 가득 매운 크리스마스 조형물들은 크리스마스 시즌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동시에 우리의 마음을 더욱 설레게 한다.
우리의 설렘을 증가시키는 요소는 '겨울 냄새' 뿐만이 아니다. 바로 곳곳에서 들려오는 크리스마스 캐롤이다. 본래 종교적 의미가 강한 기념일인 크리스마스에 맞게, 캐롤 역시 종교적 색채를 진하게 띄는 노래이다. 캐롤이라는 장르 자체는 야외 축제 등에서 즐거움을 표현하기 위해 시작된 노래이지만, 다양한 나라에서 성탄절에 부르는 노래로 점차 굳어져서 우리가 아는 현재의 캐롤로 자리잡게 된 것이다. 그러나 시대가 또다시 변함에 따라 이제는 겨울 노래로 자리 잡게 된 캐롤은 그 변화 양상만큼이나 다양한 노래를 포함하고 있다.
영어 수업의 단골 주제
장르로서 캐롤을 떠올린다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노래는 팝송이다. 학창 시절, 영어 수업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던 팝송 중 캐롤 역시 상당수를 차지하고 있다. 머라이어 캐리의 'All I Want for Christmas Is You'는 일명 '캐롤 연금'이라는 말이 붙었을 정도로 한 계절을 대표하는 노래이다. 그 전주만 들어도 우리는 단번에 크리스마스임을 체감할 정도이다. 이 외에도 여러 캐롤은 매 겨울마다 우리를 따뜻하게 데워주고 있다.
Sia의 'Snowman', Wham!의 'Last Christmas', 그리고 아리아나 그란데의 'Santa Tell Me' 등은 하나의 기념일을 즐기는 노래를 넘어서 한 계절을 상징하는 노래로 자리잡았다. 팝송이라고는 전혀 듣지 않던 사람들도 겨울만은 예외였다. 국내 음악 차트도 차가운 겨울 공기가 느껴지기 시작하면 순식간에 해외 차트인지, 한국 차트인지 모를 정도로 팝송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아이돌의 황금기라 불리던 2000년대 후반에도 겨울만 되면 예외 없이 팝송에 밀릴 정도였으니, 사람들의 머릿속에 '캐롤=팝송'이라는 인식이 강하게 박힌 것이다.
우리가 캐롤하면 떠올리는 여러 요소도 이러한 팝송들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따스한 사랑을 그리는 노래와 겨울의 쓸쓸함을 이야기하는 노래로 나뉘지만, 그 배경에 깔린 짤랑거리는 종소리는 캐롤하면 빼놓을 수 없는 사운드로 자리잡았다.
K-캐롤의 시작
최근의 겨울 차트에는 한국 노래도 대거 포진 되어있다. 팝송이 여전히 강세지만, 캐롤의 대표곡으로 자리잡은 한국 노래도 상당하다. 캐롤은 곧 팝송이던 2000년대에도 지지 않고 한국 캐롤의 수장이라 불리는 노래가 있었으니, 바로 SG워너비의 용준과 브라운아이드걸스의 가인이 함께 부른 'Must Have Love'이다.
팝송만 가득했던 겨울 차트에서 한국의 캐롤이 두각을 보이기 시작한 첫걸음으로, 2006년에 발매된 후 현재 20년 정도가 지났지만 겨울만 되면 꾸준하게 역주행을 하는 노래이다. 이 노래를 시작으로 K-캐롤이 하나 둘 유행하기 시작했다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래의 제목은 생소하더라도, 그 도입부와 첫소절을 듣는다면 누구나 "아, 이 노래!" 하고 반응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대표적인 한국 캐롤로 자리잡은 노래이다. 노래가 발매되었을 당시, 미취학 아동이었던 에디터도 해당 노래는 잘 알고 있을 정도로 한국인한테 깊이 각인된 캐롤이다.
'Must Have Love' 다음으로 크리스마스를 이끈 노래는 아이유의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이다. 마찬가지로 겨울이 되면 각종 음원 차트에서 역주행을 하는 노래로, 이후 한국 캐롤 시장이 본격적으로 활성화되었다. 아이유의 대표곡 중 하나인 '좋은 날'이 실린 앨범의 수록곡으로 시작한 이 노래는 크리스마스 시즌이 다가옴과 동시에 여러 차트에서 모습을 드러내는 중이다. 벚꽃 연금을 이을 캐롤 연금인 셈이다.
이제는 하나의 연례 행사로
'Must Have Love'와 '미리 메리 크리스마스'로 활성화 된 국내 캐롤은 하나의 이벤트로 자리잡았다. 겨울만 되면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노래가 쏟아져 나오고, 꼭 크리스마스가 아니더라도 겨울의 분위기에 맞는, 겨울 시즌송을 통해 많은 노래가 역주행했다.
위의 노래 다음으로 유명한 노래는 EXO의 '첫 눈'이다. 크리스마스를 겨냥한 노래는 아니지만 제목에서도 알 수 있 듯 첫 눈이 오는 겨울에 대한 이야기이다. 또한 실제로 눈이 내리는 날마다 역주행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기도 하다.
숏폼이 새로운 미디어로 자리잡으면서 각종 챌린지가 유행하던 2023년, 한 틱톡커가 안무가 전혀 없는 이 노래에 가벼운 안무를 만들어서 올린 영상이 유행하기 시작했고, '첫 눈 챌린지'는 그 해 겨울을 휩쓸었다. 결국 이 노래는 차트 1위까지 하게 되었고, 숏폼 시대의 영향을 드러냄과 동시에 한국의 캐롤 시장이 다각도로 활성화 되었다는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노래가 되었다. EXO의 수록곡을 전혀 모르던 사람들도 이 노래만큼은 잘 알고 있을 정도로 많은 사람들이 겨울만 되면 듣는 시즌송이 되었다.
유독 겨울에 이벤트성으로 스페셜 앨범을 발매하는 가수가 늘게 된 것도 이와 같은 영향일 것이라 추측한다. 트와이스의 'Merry & Happy', 엔믹스의 'Funky Glitter Christmas', 엔시티 드림의 'JOY', 그리고 레드벨벳과 에스파의 'Beautiful Christmas' 모두 크리스마스 시즌을 겨냥하고 발매한 이벤트성 노래이다. 팝송이 주를 이루던 시대를 지나, 최근의 겨울 차트에서는 해당 노래들을 비롯해 여러 K-POP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꼭 크리스마스를 노리지 않더라도 겨울 특유의 분위기와 잘 맞는 노래라면 종종 역주행을 하기도 한다. 대표적으로는 러블리즈의 '종소리'가 있다. 전형적인 크리스마스를 노린 듯한 노래이지만 정작 해당 앨범은 11월의 초입, 그룹의 기념일을 맞이해서 발매되었다. 이에 팬들은 소속사가 계절감을 잡지 못한다며 비판하기도 했지만 노래의 힘은 위대했다. 좋은 노래와 겨울에 꼭 맞는 분위기로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더니, K-POP 캐롤로 간간히 역주행을 하면서 연말 기념으로 음악 방송에서 특별 무대까지 하게 되었다. 발매한 지 2년이나 지난 시점이었다.
'케이팝 고인물'들 사이에서 이미 캐롤로 유명해진 '종소리' 외에도 라붐의 '겨울 동화' 등이 숨겨진 캐롤 명곡으로 입소문을 타면서 겨울의 시작과 함께 여러 음악 차트에서 역주행을 하게 되었고, 몇 년 전부터 크리스마스 시즌의 음악 차트는 한국 노래들로 가득 차게 되었다.
유명한 캐롤 외에도 자신이 겨울 노래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이 곧 캐롤이 된다고 생각한다. 에디터의 경우, 원위 기욱의 'Outro : 한 소년의 촛불 (Dresden)'이 겨울하면 생각나는 노래이다. 11월에 발매된 앨범은 여러 겨울 감성을 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해당 노래는 독일 드레스덴의 크리스마스 마켓을 배경으로 헤어진 연인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첫 눈이 온다는 가사로 시작하는 이 노래는 사심을 가득 담은 '첫눈 노래' 중 하나이다.
유난히 설레고 들뜨는 연말, 캐롤과 함께라면 분위기가 더욱 무르익는다. 어떤 노래를 들어야 할 지 망설여질 때,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하지만 정해진 캐롤은 없다. 내가 생각하는 겨울 노래로 나만의 겨울을 꾸려가는 건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