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같은 연극의, 연극 같은 삶의 피날레.
그 무대 위에서 수많은 배역을 동시에 연기하는 우리는 과연 서로의 본질을 바라볼 수 있는가?
가면 사이의 몰이해, 그 긴 여로를 함께 따라가보자.

미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던 유진 오닐에게 퓰리처상을 안긴 자전작 <밤으로의 긴 여로>는 지금도 무대에 종종 올려지는 명작이다. [fin]
유진 오닐의 <밤으로의 긴 여로> 여주인공 메리 역의 독보적인 존재 기옥은 2년 전 스캔들로 배우 삶이 끝날 위기에 놓였으나 다시 무대에 오르며 재기를 꿈꾼다.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리던 기옥은 다시 메리가 되어서야 '현실을 사는 느낌을' 회복하지만 장막 너머의 삶은 녹록치 않다.
그런 기옥의 옆에는 늘 매니저 윤주가 있다. 한결같이 기옥의 곁에서 그녀를 살뜰히 보살피는 윤주는 ‘기옥을 위하는 척하다가 자신이 정말 그렇게 되어버렸다는 것을 깨달’은 것처럼, 그러면서도 가끔은 기옥을 해치고 싶은 자기 자신을 발견하고는 ‘나는 괴물이 된 것일까’ 자문한다.

배우로 성공했으나 돈에 집착해 가정을 파탄 낸 <밤으로의 긴 여로>의 제임스처럼 태인은 영화배우로 명성을 얻었으나 빠른 속도로 추락하고, 동료들은 폭력적인 태인을 기피한다. 알코올중독에, 가끔 살인 충동에도 시달리던 태인은 연극판으로 유턴해 새로운 삶의 의욕을 꿈지만 여전히 엄습하는 불안감에 살얼음판을 걷는 기분이다.
태인의 곁을 지키는 상호는 어린 시절 배우가 되고 싶었지만 어려운 집안 환경으로 꿈을 포기하고 서른이 넘어 태인의 매니저가 된다. 배우로 승승장구하는 태인과 달리, 아무런 변화 없는 자신의 처지에 환멸과 분노를 느낀 상호는 태인의 삶을 동경함과 동시에 커져만 가는 그에 대한 반감에 괴롭기만 하다.
마지막 공연을 끝내고 함께한 자리에서 기옥은 술에 취한 태인으로 인해곤란을 겪고, 매니저 상호의 차로 귀가하던 태인은 뜻하지 않은 교통사고로 사망한다. 다음 날, 태인의 사망을 기사로 접한 기옥은 알 수 없는 불안감에 휩싸이고, 질투와 연민 속에서 기옥을 살뜰히 보살피는 윤주, 그리고 태인의 죽음으로 경찰 조사를 받게 된 상호는 숨겨진 고통과 분노로 끝없이 흔들린다.
소설은 기옥, 윤주, 상호, 태인의 시점을 한 명씩 차례대로 짚어나간다. 그 과정에서 기옥이 보는 윤주를, 윤주가 보는 상호를, 상호가 보는 태인을 묘사하지만, 정작 본인의 시점으로 넘어가면 그것은 결국 허상뿐이었음을 독자는 확인하게 된다.
기옥의 시점에서는 윤주와의 사이가 마치 기옥의 비극적인 삶을 지탱해주는 돈독한 관계처럼 보인다. 그러나 윤주는 사실 부유한 기옥의 삶에서 어떻게 불행이 생길 수 있는지조차 이해하지 못하고 그녀를 시중드는 것에 그친다. 기옥은 상호와 눈이 마주쳤을 때 서로의 깊은 곳을 바라보았다고 생각했지만 상호의 시점에서의 기옥은 상호의 이름조차 수차례 기억하지 못하는 사람일 뿐이었다. 윤주는 상호가 태인에게 살의를 가졌을 리 없다고, 상호의 마음을 ‘이해’한다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
가족보다 많은 시간을 함께하는 기옥과 윤주, 태인과 상호. 소설의 네 인물들 중 어느 하나도 상대를 제대로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 서로를 가족이라 부르면서도 남보다도 못한 유대를 지속하는 것이다. 흔히 삶은 거대한 연극이라고 부른다지만, 그렇다면 배우가 아닌, 무대 뒤편의 진짜 모습을 볼 수 있기는 한 것인가. 우리가 쓰고 있는 수많은 가면들의 층을 뚫고 어떻게 ‘본질’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인가.
어쩌면 인간 본질의 본질은 왜곡인 것이 아닐까?
마치 <밤으로의 긴 여로> 속 메리가 기옥인 것처럼….. 아니, 기옥이 메리인 것처럼, 다층적이고 병렬적인 각 배역이 모여 한 사람의 본질이 되는 것이다. 가면 자체가 본질이기 때문에 삶은 연극적이며, 그러므로 삶에 등장하는 배우들은 서로에 대한 몰이해를 기반으로 연기한다. 다만 이 상황과 이 관계에 쏟아지는 스포트라이트, 즉 순간만을 인지할 수 있을 뿐.
따라서 이 연극의 피날레는 죽음밖에 없다. 삶은 실패가 예정된 연극, 그 무대 뒤편을 볼 수 없다면 무대 위 커튼콜에 충실하자. 아무리 배우와 배역을 구분할 수 없더라도, 막이 내린 순간 어둠 속에서는 모두가 옆 사람의 손을 잡을 수밖에 없으므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