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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나는 우울할 때면 마라탕을 먹는다

매운맛을 밀어 넣으면 살아나는 마음

by 최아정 에디터
2025.11.28 0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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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독 우울한 날에는 왜 마라탕이 생각날까. 마음은 한없이 가라앉는데 왜 식욕은 살아있을까. 정확히 말하면 입맛이 까다로워진 것이다. 늘 먹던 밥과 반찬은 먹다 남은 물처럼 밍밍하다. 과자를 먹어도 종이를 씹는 것처럼 아무 맛이 안 난다. 지독한 독감에 걸려 미각을 잃은 것처럼. 기분이 이러니 감각도 사라진 거겠지. 나는 근처 마라탕집을 검색한다. 리뷰에 적힌 별점과 평을 유심히 살펴 괜찮은 곳으로.  매운맛은 3단계, 땅콩소스 없음, 감자와 버섯, 두유피, 냉동두부, 옥수수면 등 재료를 듬뿍 골랐다.

 

국물을 한 입 떠먹는 순간 버섯에 밴 얼얼한 매운맛이 올라온다. ‘아 이 맛이야’ 감탄사를 연발한다. 그러니까 내 혀는 자극적이고 뜨거운 것을 원한다. 나를 부르며 손짓하는 붉은 국물과 그 위에 올라간 재료들.


몸은 참 정직한 녀석이라 예민해지면 소화도 버겁고 속도 뒤틀린다. 컨디션이 안 좋거나 매스꺼운 날에 매운 음식은 피하는 게 좋다. 아니 그게 맞다. 맞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몸을 무시한 채 맵고 강한 것을 찾는다. 혀끝에서 번지는 얼얼함, 목뒤로 넘어가는 뜨거운 기운, 입술 가장자리가 살짝 저릿한 순간을 찾는다. 이쯤이면 매운맛 중독자, 아니 매운맛 변태다. 왜 마음이 가라앉는 날일수록 몸은 더 큰 자극을 요청하는 걸까.

 

감정은 식어가는데 감각은 뜨거움을 찾는다. 매운맛은 고통과 쾌감 사이를 줄다리기하듯이 오간다. 참 오묘한 녀석이다. 맵다고 인지하며 국물을 넘넘기는 순간 고요하게 가라앉던 마음이 입속에 번지는 얼얼함에 맞춰 움직인다. 잠시라도 일어난 감각이 ‘나 아직 살아있어’를 외친다. 그리고 잠시 후 배에서 꾸르륵 소리가 요동을 친다.

 

이가 썩는 줄 알지만 초콜릿을 찾는 아이처럼. 시험 점수를 다 봐놓고 모른척하는 어떤 학생처럼. 탈이 날 걸 알고도 먹은 거니, 내 몸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내가 짊어진다. 알고도 모른척하던 어떤 날들과 닮았다.

 

그럼에도 여전히 맵고 짠 것을 찾는다. 자극은 마음의 무게를 재배치한다. 사람의 성향이 각자 다른 것처럼. 우울하면 술로, 누군가는 달달한 디저트로 그 자리를 옮기고 채우듯이 내게 마라탕은 존재 자체로 위로가 된다. 매운맛은 명확하다. 우울하면 머리가 멍청해지고 흐릿해지는데 매운맛은 즉각적이고 분명하다. 나는 몇 컵의 물을 마시고 묵직해진 명치를 불룩해진 배를 쓸어내리며 몸의 신호를 기다린다.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괜히 몸에게 미안해져 사죄를 한다. 당분간 매운 것 금지.

 

위장에게는 미안하지만 마음은 조금 진정된 듯하다. 마라의 향이 공기 중에 퍼지는 순간, 윤기 도는 붉은 국물을 바라보는 순간 축 처져있던 감각이 되살아난다. 땀을 흘리고, 혀를 내밀고, 입 주변을 휴지로 문지르며 맛있으니 괜찮다고 위로 섞인 말을 건넨다. 그 자체로도 절반은 위안을 받은 상태가 된다.

 

아마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또 마라탕을 찾을 거다. 먹고 후회하고, 내 몸에 사죄하면서. 분명한 건 우울한데 마음이 완전히 무너지지는 않았으니 그걸로 됐다.

 

고통을 예감하면서도 다가가는 일, 매운데 먹고 나면 후회하고, 또 찾게 되는 순간들. 그래서 나는 마라탕을 먹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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