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서부 개척 시대를 떠올리면 흔히, 광활한 황야를 달리는 카우보이의 모습이 떠오른다.
하지만, 2019년 개봉한 켈리 라이카트 감독의 영화 <퍼스트 카우>는 그 익숙한 이미지와 달리, 초기 미국의 자본주의 사회의 모습을 독창적으로 담아낸다. 영화는 1820년대의 오리건을 배경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태동기를 그리지만, 웅장한 서사 대신 두 남자의 소박한 우정을 통해 역사의 이면을 섬세하게 조명한다.
<퍼스트 카우>의 오프닝은 묘한 여운과 궁금증을 동시에 일으킨다.
이를 흔히 ‘서부 개척 시대’라고 불리는 미국의 역사적 맥락과 비교해 보면 흥미로운 대조점을 찾을 수 있다. 전쟁과 영토 매입을 거치며 뉴올리언스, 미주리 등 동부에서 서부로 확장되어 온 미국의 개척 역사 달리, 선박은 그 흐름을 거스르는 듯 반대 방향으로 나아간다.
이러한 선박의 방향성은 곧 이 영화가 우리가 익숙하게 알고 있는 미국 서부 개척의 서사를 탈피할 것을 암시하는 게 아닐까.
<퍼스트 카우>만의 독창적인 미학은 영화가 사용하고 있는 4:3의 화면비에서 잘 드러난다.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이 비율을 소박하다고 표현했으며, 웅장하고 광활한 스펙터클을 강조하던 기존의 서부 영화와 의도적으로 차별점을 두었다. 그녀는 이 화면비를 활용한 것이 ‘땅에 가까운 것들을 담아내는 데 효과적이었다’라고 이야기한다.
즉, 켈리 라이카트가 영화 속에 담고자 했던 것은 자연 공동체 속에서의 소박함과 맞닿아 있다. 영화는 배경인 오리건주의 대지와 자연을 중심으로 서사를 전개하며, 인물들이 자연을 대하는 방식을 영화 내내 비춘다. 특히 쿠키가 암소의 젖을 짜는 장면에서, 그는 최대한 바닥에 붙어 자연과의 교감 속에 있으려 노력하며 카메라 역시 그의 움직임에 맞춰 땅에 붙어 그 몸짓을 따라간다.
이처럼 <퍼스트 카우>는 서부 개척 시대를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기존의 방식에서 벗어나, 오히려 반대의 방식으로 미국 자본주의의 초기의 민낯을 드러낸다. 소박한 일상, 소외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이 작품은 서부 개척 시대와 자본주의 초기 모습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게 한다.
영화는 현재 시점의 거대한 선박이 강을 가르는 장면과, 과거 오리건 주로 들어오는 ‘최초의 암소’가 마을 사람들 -특히 아메리칸 원주민-의 이목을 끌며 마을로 발걸음을 내딛는 장면을 겹쳐 보여준다. 관객은 자연스레 두 이미지를 연결 짓게 되며, 이 대비로 하여금 자본주의가 태동기에서 시작해 점차 무리하고 복잡하게 팽창해 온 과정을 상징적으로 떠올리게 된다. 오리건주 최초의 암소는 동부에서 서부로 정착한 자본주의의 초기 형태를 상징함과 동시에, 서부 개척 속에서 각 집단이 ‘자본’을 맞닥뜨리는 태도를 보여준다.
영화는 미개척지였던 미국 서부에 자리를 잡고 있던 다양한 혼혈 공동체들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유대인 ‘쿠키’와 중국계 이민자인 ‘킹 루’를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둘은 협력과 존중을 기반으로 암소를 다루며, 정복으로 대표되었던 서부 개척 시대의 정서를 전복한다.
이러한 태도는 쿠키와 루가 밤에 들키지 않도록 은밀하게 팩터 대장의 소의 젖을 짜는 장면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쿠키는 비록 몰래 젖을 짜면서도 소를 거칠게 다루지 않고, 오히려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며 유대감을 쌓는다. 이처럼, 야만적인 서부 개척 시대와 대비되는 이들의 부드러움은 당시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이 갑작스럽고 낯선 자본주의를 대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바로 이러한 폭력 속 부드러움이 관객에게 아이러니를 선사하고, 초기 자본주의의 잔인함에 대한 사유를 유도하는 것이다.
영국인 팩터 대장이 암소의 주인이자, 결국에는 쿠키와 루를 좌절시키는 근원이 된다는 것은 또 다른 아이러니를 시사한다. 그는 미국의 개척 시대에, 유럽 이민자가 권력을 장악했던 모습을 상징하는 인물로 바라볼 수 있다. 쿠키와 루는 그의 암소 젖을 담은 반죽으로 빵을 팔며 단기적으로는 이익을 보지만, 결국 그에게 뒤를 쫓기다 쓰러져 버리고 만다.
원주민의 땅을 갈취한 행위는 영웅 서사로 포장하면서도, 쿠키와 루의 행위는 영국인 팩터 대장에게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유럽 이민자들이 아메리카 대륙에서 입지를 넓힐 때, 원주민들은 설 자리를 잃게 되었고 당시 전염병의 영향에서 자유로울 수 없었기에 큰 인명 피해를 입었다. 이러한 현상을 ‘자본주의 청소’라 부르며, 켈리 라이카트 감독은 인터뷰에서 직접 이러한 현상에 영감을 받아 <퍼스트 카우>를 만들게 되었다고 이야기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소의 젖을 몰래 짜다가 들킨 두 사람은 뒤를 쫓는 이들을 피해 도망치다가 지쳐 나무 밑에 기대 눕는다. 이는 관객으로 하여금, 영화의 초반부에서 여자가 발굴해 낸 두 구의 해골을 환기한다. 영화는 쿠키와 루의 빵으로 대표되는 부드러운 우정을 통해 서부 개척 사회에서 소외된 이들의 삶을 조명하며, 이 우정을 매개로 관객이 미국의 역사를 새로운 시각으로 성찰하도록 한다.
이 소박한 이야기 안에 담긴 상징들은, 우리가 알던 서부극의 서사를 해체하고 협력과 유대의 정서를 통해 미국의 자본주의 역사의 아이러니를 드러낸다. <퍼스트 카우>는 단순히 미국 초기 역사를 재현하는 것을 넘어, 켈리 라이카트 감독이 초기 자본주의를 비틀어 바라본 색다른 해석의 결과물로 바라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