엇박자도 음악이 된다.
- 내털리 호지스 『엇박자의 마디』
우리는 종종 힘든 일을 '덮어두면 사라질 것'이라 믿는다. 시간이 흐르면 무뎌지고, 잊히고, 더는 나를 흔들지 않을 거라고. 하지만 마음에 남은 흉터는 생각보다 오래 남아, 정박으로 가던 일상의 리듬 속에 툭 하고 들어와 엇박자로 만들 때가 종종 있다.
내털리 호지스의 『엇박자의 마디』는 바로 그 묵혀둔 시간과 감정을 정면으로 마주하는 기록이자, 그 대면의 과정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전혀 다른 방향으로 이끄는지를 보여주는 책이다.
저자인 내털리 호지스는 다섯 살 때부터 바이올린을 연주해 왔다. 재능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무대에만 서면 왼손이 굳어버리는 극심한 공포증이 그녀를 끊임없이 압박했다.
이는 단순한 신경과민이 아니었다. 클래식을 전공하는 아시아인을 향한 차별, 음악 캠프에서의 혹평, 가족 안의 긴장감까지 여러 층위의 두려움이 무대라는 공간에 겹쳐 있었다. 그럼에도 저자는 악착같이 연습했고, 혹평을 들을수록 더 오래 남아 활을 쥐었다. 마치 시간이 지나면 공포가 사라질 것이라 믿으면서.
하지만 평생을 바쳐도 충분하지 않을 것 같은 압박감,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은 벽 앞에서 사랑하는 음악이 점점 공포의 대상이 되어가는 순간들은 결국 스무 해 가까이 함께한 바이올린을 내려놓게 했다. 이 결정은 '실패'나 '도망'이 아니었다. 더는 자신을 속일 수 없는 순간이었고, 자신의 감정과 신체의 신호를 진정으로 경청할 때 필연적으로 도달하는 선택이었다.
이후 저자가 선택한 것은 놀랍게도 '글쓰기'였다. 활 대신 펜을 들어 과거를 다시 마주하기 시작했고, 그 시간을 전혀 다른 의미로 읽기 시작했다.
"나는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 과거에 관한 글을 썼고, 그럼으로써 필연적으로 과거를 다시 쓰게 되었다. 일어난 사실을 바꿨다기보다 그것들이 모여서 서사와 의미를 창조하는 방식을 바꿨다." 이 문장은 호지스가 글을 통해 과거를 다시 쓰는 이유는 후회 때문이 아니라, 그 시간을 더는 자신을 붙잡아두는 족쇄로 두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을 단단하게 보여준다.
시간과 음악의 교차
이 책이 특별한 이유는 단순한 회고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시간'이라는 개념 자체를 탐구한다는 점이다. 음악적 시간, 기억의 시간, 물리적 시간을 교차시키며 설명한다. 저자에게 시간은 절대적인 흐름이 아니라 경험에 의해 형태가 달라지는 유동적인 것이며, 음악은 그 유동성을 몸으로 경험하는 영역이었다.
"음악은 유연한 시간을 구부려 음향의 형태로 빚어낸다"라는 표현은 같은 악보도 해석자의 의도에 따라 완전히 다른 울림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리고 저자는 음악에서 느꼈던 감각을 글쓰기에서도 그대로 이어간다. 문장의 길고 짧음, 구두점의 배치, 문단 사이의 공백까지, 글쓰기의 의미를 만드는 시간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글쓰기는 저자에게 기록이 아니라 '과거'라는 시간을 재구성하는 행위가 되었다. 이미 일어난 사건 자체는 변하지 않지만, 그 사건을 바라보는 시선과 서사의 구조가 바뀌면 의미는 완전히 달라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바이올린을 내려놓은 뒤에 남은 것은 상실감이 아니라 그 공백을 다시 바라보는 능력이었다.
음악을 떠난 뒤에도 손끝에는 여전히 감각이 남아 있었고, 무대에서는 공포로 굳어버렸던 손이 문장 앞에서는 오히려 유연해졌다. 이는 새로운 재능이 아니라 다루지 못했던 감정을 다른 방식으로 마주할 수 있게 되었다는 의미다.
과거의 파편은 그대로지만, 그 조각들을 어떤 순서와 의미로 배열할 것인지는 이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일이 된 것이다.
엇박자 위의 음악
저자는 자신의 시간을 다시 읽는 과정에서, 상처가 자신을 무너뜨린 게 아니라 새로운 길로 이끌었다는 사실을 받아들인다. 음악가로 사는 삶을 "그 당시 나에게 꼭 필요하고 놀라운 일이었으며, 동시에 마침표를 찍어야 했던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엇박자의 마디』는 결국 말한다. 힘든 일을 덮어둔다고 우리를 강하게 만들어주지 않는다고. 오히려 들여다보고 다시 읽을 때 우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고. 삶의 엇박자를 이해하는 일은 그 엇박자에도 리듬이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과정이다.
어쩌면 우리가 살아가는 대부분의 시간은 완벽한 박자가 아니라 엇박자 위에서 만들어진다. 그리고 그 만의 박자를 정직하게 인식하고, 이를 무언가 다른 형태로 다시 표현할 수 있는 용기를 찾는 것이 호지스가 이 책을 통해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깨달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