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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우리 존재의 공허에서 비롯된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향한 노스텔지아 [영화]

우디 앨런 감독 불후의 명작,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by 이유은 에디터
2025.10.22 22: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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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존재의 공허에서 비롯된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향한 노스텔지아


자정을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면, 길은 구형 푸조에 올라탄다. 그리고 현실에서 한 발짝 벗어나 자신이 동경하던 시대의 파리로 향한다. 어제와 오늘의 경계에서, 그는 과거로 넘어간다. 낡은 자동차의 엔진 소리와 함께, 그는 꿈꿔왔던 그 시대로 떠나지만, 어쩌면 그가 찾고 있는 것은 ‘시간’이 아니라 ‘확신’일지도 모른다.


미드나잇 인 파리 속 ‘자정’은 단순한 시간의 흐름이 아니다. 그것은 과거와 현재가 겹쳐지는 순간이자, 우리가 미처 살아보지 못한 황금기로 넘어갈 수 있을 것만 같은 마법의 시간이다. 그리고 길뿐만 아니라, 우리는 모두 한 번쯤 그 자정을 꿈꾼다. 길이 꿈꾸던 1920년대의 파리는 그가 찾던 낭만과 예술로 가득하다. 하지만 과연 그곳이 진정한 황금기일까? 그리고 그가 떠나온 현재는 정말 그토록 불완전한 시대일까? 길이 ‘황금기’를 찾기 위해 떠났던 시간 여행의 끝에서 깨닫게 되는 것은, 결국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 지금도 누군가의 황금기가 될 지 모른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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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는 언제나 황금기일까?


길은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한다. 피츠제럴드 부부, 헤밍웨이, 달리, 피카소, 거트루드 스타인 같은 전설적인 인물들과 어울리며 그는 자신이 꿈꾸던 시대를 직접 경험한다. 하지만 그곳에서 만난 아드리아나는 1920년대를 현실로 살고 있으면서도, 더 오래된 벨에포크 시대를 황금기라 부른다. 그리고 벨에포크 시대의 예술가들은 다시 르네상스를 이상적인 시대로 여긴다. 이 반복되는 흐름은 단순한 유머가 아니다. 영화는 이를 통해 ‘황금기는 언제나 과거에 있다’는 인간의 집착적 본성을 드러낸다. 과거를 동경하는 마음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현실의 복잡함과 피로함,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은 과거를 더 완벽한 시대로 착각하게 만든다. 하지만 영화 속에서 길이 깨닫듯이, 우리가 꿈꾸는 그 시대의 사람들도 똑같이 현재를 불완전하게 여기며 과거를 동경하고 있었다. 결국, 우리는 늘 살아보지 않은 시절을 그리워하는 운명을 지닌 존재일지도 모른다.

 

 

과거를 동경하는 사람들, 그리고 현실을 살아가는 사람들


길은 과거 시대를 그리워하는 인물이다. 그것도 단순한 향수가 아니라, 자신의 현실을 부정하고 과거 속으로 도망치고 싶어 하는 사람이다. 그는 1920년대의 파리를 동경하고, 그곳에서 위대한 예술가들과 함께하며 비로소 자신의 삶이 완전해질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하지만 그가 만난 사람들, 길이 그렇게 동경했던 예술가들조차도 저마다의 과거를 황금기라 여기고 있었다. 그렇다면 현실에 만족하고 나름 충실히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일까? 영화 속 네 인물을 통해 이를 명확하게 대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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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이네스 (현실을 지향하는 인물)

 

이네스는 철저히 현실적인 인물이다. 과거를 동경하는 길과 달리, 그녀는 현재의 삶을 즐긴다. 과거의 예술과 문화에 무심하며, 남들이 평가하는 객관적인 성공과 부유한 삶에 만족한다. 이네스는 ‘왜 과거를 동경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데, 이는 현재의 삶에 대한 불만이 크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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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아드리아나 (과거에 몰입하는 인물)

 

길이 동경하는 1920년대에서 그는 또 다른 인물을 만난다. 벨에포크 시대를 동경하는 아드리아나. 길이 자신의 현재에서 벗어나고 싶어 했듯, 아드리아나 또한 자신의 현재보다 1890년대를 진정한 황금기라 여기고 있다. 그녀에게는 고갱과 로트렉이 살았던 그 시대가 ‘더 나은’ 세계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1920년대 대부분의 예술가와 작가들 사이 뮤즈로 꼽히는 그녀도 현실보다는 과거를 그리워하고 이에 몰입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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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길 (꿈꾸던 과거와 답답한 현실 사이에서 고뇌하는 인물)

 

길은 과거에 대한 신비한 모험 속에서 현실을 도피하지만, 과거를 진짜로 살아가는 사람들을 만나면서 깨닫는다. 과거의 사람들도 또 다른 과거를 동경하며, 본인이 살고 있는 시대를 불완전하게 느낀다는 것을. 그가 동경한 황금기는 어쩌면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들은 언제나 과거를 이상화하며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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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가브리엘 (현실을 살면서도 과거를 존중하는 인물)

 

가브리엘은 이 영화에서 가장 이상적인 태도를 가진 인물이다. 그녀는 길처럼 과거를 좋아하고 존중하지만, 그것에 과몰입하여 현실을 도피하지 않는다. 그녀는 현재의 삶 속에서도 과거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다. 그리고 길은 그녀를 통해 아드리아나에게와는 또 다른 용기를 얻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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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과 우리, 현실을 살아가기 어려운 이유


길이 과거를 찾는 이유는 명확하다. 그는 작가로서 자신의 글이 좋은지 확신이 없고, 약혼녀 이네스와의 관계도 삐걱거린다. 현재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그는 과거의 위인들에게서 확신과 위로를 찾고자 한다. 하지만 길이 마주한 1920년대는 마냥 낭만적이지는 않다. 그는 헤밍웨이와 피카소 사이에서 창작자로서의 고민을 더욱 깊이 깨닫고, 아드리아나가 머물고 싶어 하는 벨에포크 시대의 사람들 또한 본질적으로는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깨닫는다.


이러한 길의 심리는 오늘날에도 낯설지 않다. 우리 역시 현실이 힘들 때마다 과거를 동경했다. TV에서는 ‘응답하라’ 시리즈 같은 복고 열풍이 불었고, 필자의 경우, 80~90년대를 온전히 경험하지 못했음에도 그 시절의 감성을 그리워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나서 깨달았다. 그 시절에도 사람들은 현재를 살아가기 어려워했고, 또 다른 과거를 그리워했다. 현대 사회의 경쟁과 피로감은 이러한 동경을 더욱 강화한다. 기성 세대는 젊은 세대에게 “지금이 얼마나 살기 좋은 시대인지 모른다”고 말하지만, 정작 젊은 세대는 새로운 문제와 갈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기술의 발전으로 편리함을 얻었지만, 동시에 정보 과부하, 경제적 불안, 무한 경쟁 속에서 더 큰 결핍을 느낀다. 결국, 더 단순하고 덜 복잡해 보이는 과거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길이 현대 사회에서 부대끼며 1920년대를 찾았던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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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인의 조언, 그리고 길의 선택


영화에서 거트루드 스타인은 길에게 중요한 조언을 남긴다. “우린 죽음을 두려워하고, 우주에서의 위치를 묻죠. 예술가의 책임은 절망에 굴하지 않고 존재의 공허함에 대한 해결책을 찾는 거에요.” 이 말은 영화 전체를 관통하는 말이자 길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해당하는 이야기다. 우리는 현재가 힘들고, 미래가 불확실할 때 과거로 도망치고 싶어진다. 하지만 과거는 생각만큼 마냥 낭만적이지 않다. 길의 결심과 선택은 단순한 성장의 문제가 아니다. 길이 현실에서 비를 맞으며 가브리엘과 함께 걷는 장면은 단순한 로맨스가 아니다. 과거의 낭만보다도, 현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앞으로 나아가겠다는 선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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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제와 오늘의 경계에서


우리는 과거를 그리워하지만, 결국 살아가야 하는 곳은 현재다. 길이 경험한 1920년대의 파리는 환상처럼 빛났지만, 그곳도 결국 누군가에게는 부족한 오늘이었다. 우리가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동경하는 감정은 자연스러운 것이다. 하지만 지나치게 과거에 기대어 현재를 살아가지 못하는 것은 문제다.


영화는 말한다. 황금기는 늘 과거에 있는 것 같지만, 어쩌면 우리가 깨닫지 못한 채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 순간이 황금기일지도 모른다고. 길이 과거를 떠나 현재를 선택했듯, 우리도 언젠가 깨닫게 될 것이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그 ‘좋았던 시절’ 속에서도 누군가는 지금의 우리처럼 방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미드나잇 인 파리는 단순히 아름다운 과거로의 여행이 아니라, 현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에 대한 이야기다. 자정의 종소리가 울릴 때, 우리는 과거로 향할 수도 있고, 현재를 마주할 수도 있다. 선택은 언제나 우리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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