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랑을 모른다. 연애는 해봤지만 사랑은 해본 적이 없다. 이게 무슨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하지 않았다 같은 소리인가 싶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는 내가 정의하는 사랑의 이데올로기 하에, 연애와 사랑을 엄격히 구분한다. 단순히 연인을 만나 식사를 하고, 카페를 가고, 영화를 보고, 몸을 나누는 이 모든 일련의 과정은 연애일 뿐이다. 내가 한 것들을 사랑이라고 칭한다면 그건 사랑에 대한 모욕이거나, 아니면 사랑을 타이타닉으로 배운 나에게 납득할 수 없이 시시한 것이 된다.
따라서 이런 정의를 따르지 않으려면 사랑이라 함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무언가 더 깊은 감정의 발전을 수반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로 나는 연애는 해봤지만 사랑은 해본 적 없는 사람임에 틀림이 없는 것이다.
때는 바야흐로 대학교 2학년. 짧은 두 차례의 연애를 끝마치고 넷플릭스로 유미의 세포들을 볼 때였다. 유미와 구웅의 이별 장면에 깔리는 검정치마의
“나만큼 너를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은 없어.”
뭔 헛소리야 이게. 그걸 네가 어떻게 아는데.
이게 내 첫 반응이었다. 어떤 자기 확신을 가지고 그런 말을 내뱉는지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다. 오만하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이 가사에 깊게 꽂힌 나는 만나는 이들에게 족족 이 가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초중고 친구부터 대학교 동기, 알바하다 알게 된 언니, 새 썸남 등등… 의견은 화자에 따라 극명하게 갈렸다. 그러던 중 생일을 맞이한 나는 18년지기 친구로부터 생일편지를 받게 된다.
“나만큼 너를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은 없어 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사랑은 서로가 서로 밖에 없었던, 형태가 달라지는 사랑 속 하나의 형태의 사랑이 유난히 깊었던 사랑이지 않을까? 싶네요. 무례한 말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하는 것을 상상하지 못한 탓도 있겠지만 저에게는 다시는 없을 순간과 시간들을 보낸 연민처럼 느껴졌어요.”
편지를 읽고나서 사카모토 유지 각본의 영화 <꽃다발 같은 사랑을 했다>가 떠올랐다. 이하 꽃다발에서는 주인공 무기와 키누가 20대 초반 운명적 계기로 만나 깊은 사랑을 나누지만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럽게 변해가는 과정을 담았다. 영화가 후반부를 향해 달려갈수록 연애 초와는 상반된 모습으로 흔들리던 둘의 관계에는 균열이 생기고 무기와 키누는 결국 헤어지고 만다. 시간이 흐른 후 우연히 재회한 둘은 서로의 곁에 다른 연인이 생겼음을 알게 된다. 그렇게 다른 사람과 팔짱을 낀 서로에게 쿨한 작별의 손짓을 하며 영화는 끝이 난다.
사실 이 작품은 제목이 영화를 관통하는 큰 흐름이자 모든 것을 말해준다. 예쁜 포장지에 쌓인 풍성하고 향기로운 꽃다발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자연스럽게 모습이 변하고 만다. 한때는 서로가 서로밖에 없었던 그들도 이별의 순간에는 운명이라 믿었던 상대조차 대체될 수 있음을 깨달았을 것이다.
모든 관계가 그렇지만 특수한 관계성에 기반한 연인관계의 경우, 특히 이 특성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이별의 귀책사유를 연인에게 묻는 경우도 있겠다만, 한때 아름다움을 향유하는 모든 것에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소멸할 수 있는 권리 또한 있는 것이다. 그러니 이 영화는 비로소 무기와 키누의 이야기를 넘어 만남과 헤어짐을 겪은 모든 연인들의 이야기가 된다.
“나만큼 너를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은 없어“라는 말을 해주는 연인조차도 그 말이 과거의 어느 한 시점에서만 유효했음을 깨닫는 날이 온다는 것.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요한 것은 꽃다발에 물을 주고 가꾸는 찰나의 기쁨을 향유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다시는 없을 순간과 시간들에게 연민의 마음을 담아 놓아주는 것.
꽃다발이 시들 줄 안다고 해서 선물 받을 당일에 버릴 사람은 아무도 없지 않은가.
필자는 최근 새로운 연애를 시작했다. 내가 사랑을 알게 될 날이 온다면 그날은 아마도 나만큼 너를 사랑해주는 그런 사람은 없을 거야라는 말을 쉽지 않은 마음으로 내뱉는 날이지 않을까 싶다.
이제는 가을이 갈ㅡ 정도로 짧게 스쳐지나가는 한반도에 겨울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번 겨울, 사랑하는 이와 함께 검정치마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