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하고 강렬한 세계를 선사하는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한국 영화를 리메이크작을 들고 돌아온다.
2003년 전설의 '숨보명'(숨어서 보는 명작품) <지구를 지켜라!>를 향한 감독만의 새로운 시선이 기대되는 요즘. 그의 작품 속 유난히 돋보이는 '엠마 스톤'의 강렬한 캐릭터들을 소개해 본다.
약 20년의 세월 속 뒤바뀐 리더의 모습? - <부고니아> 속 '미셸'
2003년엔 올백머리에 수트를 입고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 속 뒷자리에 앉아 헛기침을 하던 '강사장'이 있었다면 2025년엔 레드립과 붉은색 바바리 코트를 입고 외제차를 끌고 가는 '미셸'이 있다.
장준환 감독의 <지구를 지켜라!> 리메이크 소식도 충격적이였지만, 백윤식 선생님이 하시던 '강사장' 역할에 '엠마 스톤'이 캐스팅 됐다는 소식이 2배는 더 충격적이였다.
아니나 다를까 추후 공개된 영화 스틸컷 속 '삭발' 한 엠마 스톤의 모습은 2025년 본 이미지 중 가장 강렬하게 다가왔다. 하얀 가루를 뒤집어 쓰고 투쟁하듯 납치범을 노려보는 그녀의 캐릭터는 어떻게 강사장과 비슷하면서 다른 매력을 보여줄 수 있을까?
성별 전환을 한데에는 제작으로 참여한 감독 '아리 애스터'의 아이디어 였다고 전해진다. 현대에 이르러 보여지는 젠더와 정보 권력, 그리고 갈등의 구조를 더욱 복잡하게 드러내기 위한 선택이라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고대 지중해 의식 중 소의 시체에서 꿀벌이 자연발생한다라는 의미로 '죽음에서 생명이 탄생한다' 는 뜻을 갖고 있다는 '부고니아'. 2025년 11월 5일, 그 강렬한 서막을 극장에서 만나볼 수 있다.
세상을 향해 외치는 여성의 주체성에 관하여 - <가여운 것들> 속 '벨라'
개조 전문 박사 '백스터'에 의해 성인 여자의 육체와 태아의 뇌를 갖고 새로 태어난 '벨라'. 기괴한 실험체로서 백스터 박사에 의해 통제되는 나날을 보내던 벨라는 바람둥이 '덩컨'의 유혹에 바깥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이기지 못하고 함께 모험을 떠나게 된다.
그 과정에서 벨라는 '성욕'에 대한 순수 욕구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새롭게 만난 사람들을 통해 사회적 태도를 배우기도 하고, 집 안에서는 상상하지도 못하던 현실 사회의 실체를 보기도 하며 한 여성의 주체로서 성장하기 시작한다.
다소 파격적이고 철학적 묘사가 가득한 이 영화는 강렬하게 느껴지기도 하지만, 과도한 시선으로 불편하게 느껴지기도 하여 당시 크게 호불호가 갈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 속 '벨라'를 연기한 엠마 스톤의 모습은 가히 제 2의 전성기라고 불릴 만큼 경이롭게 느껴졌다.(아직 제1의 전성기도 끝나지 않았지만!)
연기가 아닌 진짜 '유아'가 생각하고 말하는 것 같은 딕션과 표정, 특히 덩컨과 함께 파티장에서 남들과는 아주 다른 다듬어지지 않은 춤을 추는 시퀀스는 벨라의 캐릭터가 보여주는 괴팍함과 순수함 그 경계에서의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긴 다리와 팔로 파티장을 휘저으며 장악하는 그녀의 연기는 자유롭지만 여전히 통제속에서만 자유로워 보이기도 해서 마치 줄을 이용해 그녀를 춤추게하는 '마리오네트' 처럼 보여지기도 했다.
게다가 영화에서는 환상 속에 있는 것 같은 새로운 세계를 CG로 구현한 장면이 많았는데, 마치 그 세상을 미리 다녀오기라도 한듯 과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그 속에 스며드는 그녀의 살아있는 연기는 영화 속 낯선 세계를 꿈틀대게 만들었다.
그녀의 연기 차력쇼는 만국 공통으로 통한 것일까 엠마 스톤은 <가여운 것들>로 96회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여우주연상'을 수상하였다.
권력의 최정점을 향한 욕망의 하녀 -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 '애비게일 힐'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첫 시대극이자 어쩌면 강렬한 여성 캐릭터 서사의 시작이기도 한 <더 페이버릿: 여왕의 여자>는 절대 권력을 지닌 영국의 여왕 '앤'을 둘러싼 권력의 실세 '사라'와 신분 상승을 노리는 몰락한 귀족 가문 출신 '애비게일'이 벌이는 삼각 관계 이야기이다.
실존 인물을 모티브 하여 지독한 현실 풍자 속 세 여성의 암투와 사랑을 그려낸 이 영화는 지독히도 현대적인 감정과 현실적인 캐릭터 묘사로 91회 아카데미에서 여우주연상(올리비아 콜맨)을 수상했다.
영화를 보기 전 메인 포스터에 보여진 애비게일의 모습은 굉장히 인상 깊었는데, 마치 아이가 무언가를 원할 때 떼를 쓰는 자세로 바닥에 앉아 무언가 골똘히 생각하는 표정을 짓고 있다. 그 뒤론 '앤'과 '사라'가 같은 틀 안에서 서로를 바라보고 있었는데 네모 틀 너머로 마치 카펫같이 애비게일이 앉은 바닥을 푹신하게 깔고 있는 여왕의 망토가 세사람의 관계와 그녀의 캐릭터를 전반적으로 암시하게 한다.
아니나 다를까, 자신을 돈으로 산 남편에게 여자는 한달에 28일 동안 생리를 한다는 거짓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하는 그녀는 처세술의 달인이다. 천재가 노력하면 무섭다고 했던가, 몰락한 귀족이던 땅바닥 신세인 애비게일은 어느새 여왕의 옆자리에서 그녀의 연인 '사라'를 위협하는 존재가 된다.
큰 눈으로 항상 주변을 살피며 자신의 앞에 서있는 사람에 따라 적절한 태도를 취하던 애비게일의 욕망은 다른 여느 시대극의 캐릭터 처럼 아닌 척 숨기지 않는다. 화려한 옷과 메이크업으로 자신을 치장하고, 걸음걸이와 자세를 통해 거침없이 자신을 드러낸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런 그녀의 모습은 어쩐지 인간이라면 누구나 한번쯤 '갑'이 되는 상상을 하는 것과 같은 동질감을 일으키며 밉지만은 않은 캐릭터로 보이게 한다. 동물이 아닌 인간으로서 사회적으로 쟁취하고픈 자연스럽고 사랑스러워 보이기까지 하는 욕망을 엠마 스톤의 연기가 더욱 돋보이게 만든 것 같다.
요르고스 란티모스의 세계는 때론 고약할 정도로 삐딱하고, 기괴한 모습을 자아낸다.
그런 그의 세상과 대중들로 하여금 이어주는 건 믿고 보는 배우 엠마 스톤이 있어서는 아니였을까?
두 사람의 꿀조합이 영화 부고니아에서도 단연 돋보이길 바라는 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