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칼럼·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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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달 만에 처음으로 한 시간이 정확히 한 시간으로 느껴질 때 그 시간이 얼마나 긴지 깨닫는다. 집에서 올리버를 돌볼 때도 한가한 시간이 있긴 했지만, 그 시간과 이 빈 시간은 다르다. 전자는 소비하고, 쓰고, 낭비하고, 텔레비전을 보느라 사라지는 시간이어서 그냥 시간만 죽이는 게 아니라 몸도 해치울 수 있다. 후자는 옛날식으로 보내는 시간이라 여름날 포치에 앉아 바람이 부는 걸 바라보는 것 같은 시간이다.

 

p. 271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 읽으며, 삶의 순간에 마주하는 '아다지오'(adagio, 느리게 또는 천천히)를 발견했다. 아다지오는 안단테(andante, 느리게 연주)와 라르고(largo, 아주 느린 속도로 연주)사이의 느린 속도로 연주하라는 말을 뜻한다.

 

뉴욕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중심에는 '센트럴 파크'가 있고, 이와 같은 도심의 숲속에 위치한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존재는 아다지오의 의미를 되새기는 것에 있어서 중요한 장소이다. 그 존재감은 한 도시를 방문하고 이곳을 여행하는 이유가 되기도 하며, 누군가에게는 나고 자라며 자연스럽게 체득한 문화가 된다. 전자는 이 책과 함께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을 방문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고, 후자는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와 비슷한 궤도에서 그 여정을 다시 시작할 것이다.

 

더 나아가서 저자가 기록한 이야기는 일상의 경험을 섬세한 시선으로 담아낸다. 각 장면을 천천히 음미하며 독자는 어느새 한 구절을 찾아든다. 이내 마음에 닿는 문장에서부터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까지 깊게 몰입한다.

 

*

 

글은 지은이의 단 하나뿐인 세상과 연결되는 경험을 선사한다. 대화하면서 듣고 말하는 것과는 달리 이야기는 시선을 쫓을 수 있다. 이는 자신만의 속도로 탐독할 기회를 제공한다. 읽기를 잠시 멈추고 사고를 확장할 수 있으며,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온전히 글에 빠져들기를 반복한다. 또한 상상할 수 있는 틈의 간격을 한층 더 사적인 영역으로 끌어올 수 있다. 이를 통해서 독자는 글을 읽는 행위에 깊게 매료된다.

 

한편, 글의 주제와 소재 그리고 어떤 경험을 덧붙이느냐에 따라서 이야기의 방향성이 달라질 수 있다. 그렇게 이야기에 부여된 서사를 찾는 것은 읽는 재미를 더해준다. 언어의 감각에 집중하고, 활자를 자유롭게 유영하는 애서가에게 독서는 타인에게 가장 가깝게 다가가는 방법이다.

 

 

형은 라파엘로를 좋아했다. 그래서 우리는 병실 침대 머리캍에 <검은 방울새의 성모>를 붙여줬다. 디킨스를 존경하고 좋아하는 아버지는 책을 집어 들고 슬프고 웃긴 구절을 낭독했다. 위대한 예술이 그렇게 쉽게 평범한 환경에 섞이는 것은 참으로 신기한 현상이었다. 그 전까지는 늘 그 반대를 상상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학에 다닐 때는 대성당 벽에 그린 작품이나 고전이라 불리는 책으로 남긴 위대한 예술은 입을 헤벌린 채 쳐다보거나 눈을 크게 뜨고 뚫어져라 보아야 하는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는 수난극처럼 숭고한 이야기마저 가깝고 신비럽지 않은 이야기, 바로 그 병실에서 벌어지는 일상을 숨김없이 표현하려는 시도와 다를 바 없게 느껴졌다. 

 

p.68-69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근본적으로 예술만이 지닌 특별한 힘에 반응하듯 위대한 그림에 반응했다. 다시 말해 그림의 위대한 아름다움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랐음에도 이미 그것을 충분히 경험한 것이다. 그때는 내가 느낀 감상을 말로 분출할 수가 없었다. 사실 할 수 있는 말이 별로 없었다. 그 그림의 아름다움은 언어적인 것이 아니라 물감과도 같이 과묵하고 직접적이며 물질적이어서 생각으로 번역하는 것조차 거부하는 듯했다. 그래서 그림에 대한 나의 반응은 새 한 마리가 가슴속에서 퍼덕이듯 내 안에 갇혀 있었다. 그 감정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아직도 늘 어려운 일이다. 이제는 경비원으로서 수많은 방문객이 각자의 방식으로 이 신비로운 감정에 반응하는 것을 지켜볼 수 있게 되었다.

 

p. 35-36

 

 

파트타임으로 하는 비정규직 일자리에 불과하다. 평생 이 일을 하면서 살아갈 것이라고 상상하지도 않는다. 하지만 인생은 길고, 이 일은 구석에 서서 사람들을 지켜보는 대신 그들을 이끌고 다니면서 글자 그대로 세상을 탐험하도록 해줄 것이다. 봄이 오고 일을 시작할 날짜가 다가오면서 나는 가이드 일을 하기 위해 조사하고, 투어 내용을 적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들려줄 준비를 하는 내가 얼마나 신나 하고 있는지 문득 깨닫는다. 이야기를 하는 일, 나만의 것을 만드는 일이다.

 

p.313

 

 

앞선 문장들은 작가의 어조와 책의 분위기를 대변한다. 이야기를 쓰고 책을 만들게 된 이유, 의미, 목적과 같은 것들을 유츄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야기는 그 자체로 힘이 존재한다. 그리하여 문장을 읽는 이 순간조차 독자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어느 전시실의 관람객으로서 지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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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 퀼트의 기하학적 패턴뿐만 아니라 그 불완전함에 감동한다. 살짝 헤매는 듯한 구불구불한 선, 복잡하지 않고 간결한 바느질 자국, 즉흥적으로 구성된 재료. 거기에는 근면성과 영감을 비롯해서 예술의 위력 중 가장 희망을 주는 것들이 넘치도록 들어 있다.

 

혼자 생각에 잠긴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교훈이 있다.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처럼 세계적으로 장대한 곳에서 얻는 깨달음치고는 좀 우습긴 하지만, 의미라는 것은 늘 지역적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가장 위대한 예술 작품은 자신의 상황에 갇힌 사람들이 아름답고, 유용하고, 진실된 무언가를 창조하기 위해 조각조각 노력을 이어 붙여 만들어가는 것이라는 교훈까지 말이다.

 

p.308

 

 

<나는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은 쓰인 문장과 중첩된 이야기를 통해서 작품에 더 매료될 수 있다. 그 안에는 역사가 깃들어있다. 인간의 생애와 같이 각 작품에도 저마다의 역사가 존재한다. 그렇게 역사는 다양 형태로 기록되었다. 이는 인류의 삶에 대한 증거를 제시하며, 직접 목격할 수 없었던 일들에 대하여 진실성에 가까운 설득력을 제시하였다.

 

그 결과 중 하나로 오늘날 미술관은 예술을 보존·연구·전시한다. 개인에서 사회로, 더 나아가서 국가 및 세계와 같이 자신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매개체가 되었고, 문화라는 이름으로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기에 이르렀다. 이처럼 본질에 가까운 고유한 문화를 지키고, 또한 현재를 살아가는 오늘날의 새로운 문화를 더해가는 여정이 우리 모두에게 의미 있는 일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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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메트로포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입니다>는 한 사람의 개인적인 서사와 그를 둘러싼 감각적인 경험에 기인한다. 큰 틀에서 보자면,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저자인 '패트릭 브링리'가 메트로폴리탄 미술관의 경비원으로 일하게 된 계기와 함께 일을 하면서 만나게 된 작품과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내고 있다.

 

글쓰기는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창작의 과정이지만, 때로는 자신이 이미 갖고 있는 재료와 경험한 총체를 정성스럽게 다듬는 과정을 겪는다. 또한 내재하고 있는 힘을 감지하고, 내·외적으로 뻗어가는 영감의 원천을 하나로 모으는 일이기도 하다.

 

위 사진 속 문장처럼 고흐의 작품을 통해서 또다시 다른 작품으로 이어지고, 고흐가 있던 당대의 미술관에서 관람했던 작품을 지금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다. 그리고 이를 발견하고 다시금 이야기로써 세상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오랜 시간 동안 집중하고, 깊은 관심을 보였기 때문이다.

 

어렸을 때 미술관에서 예술 작품을 마주했던 경험은 형이 좋아하던 작품을 떠올리게 했다. 이어서 미술관에서 일을 하게 된 하나의 연결고리를 완성해 주었고, 그 이후로 '이야기'를 직접 전달하고 싶은 꿈을 심어주었다.

 

그렇다면 다음은 어떤 이야기로 채워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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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에 수록된 QR코드를 통해서 예술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빈센트의 <붓꽃>을 보고 있자면 가난과 자신을 괴롭히는 상념에서 벗어나 그 생기 넘치는 단숨함 속에서 영원히 살고 싶은 화가의 염원이 느껴진다. 그러나 몸을 돌려 우리 앞에 놓인 것을 직면해야 하는 시간을 오고야 만다. 빈센트의 이야기가 슬픈 것은 그가 삶을 살아내는 능력을 가지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나는 그보다 운이 좋다는 사실에 이루 말로 다 표현할 수 없이 감사하다. 내 이야기는 행복한 이야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p.322

 

 

미술을 비롯하여 문자를 끊임없이 향유하며,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사람들. 이 세계를 둘러싼 모든 것(이를테면 사람과 사물, 물질 등)을 관찰하고, 삶의 다양한 형태를 주목하고 이해하고 싶은 이들에게 이 책을 전해주고 싶다.

 

아름다움과 슬픔을 느낄 수 있을 때, 또한 우리의 감정에 솔직해질 때에 비로소 감각적인 삶에 다가설 수 있다. 이를 실현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앞으로도 우리에게 영감을 선사하고, 공감하는 마음을 전하며, 따스한 빛처럼 위로와 안녕의 말을 건네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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