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에는 한낮에도 걸칠 만한 옷을 들고 나간다. 그런데도 옷장에 켜켜이 쌓인 반팔과 반바지를 정리하지 못하는 건, 햇볕의 변덕 때문인지 여름에 대한 미련 때문인지 모르겠다. 올해 여름에는 여기저기로 많이 놀러 다녔다. 친구와 즉흥적으로 대전에 가기도 했고, 동생과 락페스티벌도 갔었고, 집 근처 바다에 가서 초계국수도 먹었다. 좋은 기억들이 많아서 그런지 점점 짧아지는 해가 반갑지만은 않다.
하지만 계절을 붙잡을 수도 없거니와 떠나려는 무언가를 붙잡는 것에는 의미가 없다. 그래서 남은 여름을 미련없이 보내주기로 했다.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여름 고별 플레이리스트를 만들었다. 해당 글에서는 PLAYLIST 상단에 있는 세 곡을 추천하고자 하니, 저무는 늦여름을 만끽할 때 배경음악으로 깔아주기를 바란다.
바이, 썸머
안녕, 오랜 내 여름아, 뒤돌아보지 마
어려운 말 없이 이대로 보내 주자 멀리
달려가는 우리를 따라오던 밤
아무 예고 없이 시작된 여름날처럼
지난 9월 10일에 정식 발매된 「바이, 썸머」. 최근에 접하게 된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실 작년 이맘때쯤에 콘서트에서 먼저 공개되었던 곡이다. 당시의 무대를 촬영한 영상은 그새 조회수 800만 회를 넘겼다. 물론 노래 자체도 좋지만 유달리 폭발적인 반응을 얻은 이유가 더 있다. 처음으로 곡을 공개하던 순간이 마치 영화 같았다.
전날까지만 해도 폭염주의보였던 것이 무색하게 하늘에서 이슬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동시에 처음 듣는 전주가 시작되었고, 오랜 팬들은 잠시 멍하니 있다가 신곡임을 알아챘다. 가사처럼 '못 잊을 것 같은' 4분이 지나고 나서는 마법처럼 다시 비가 그쳤다고 한다.
아주 가끔, 신기할 정도로 짜여진 각본 같은 순간들이 있다. 인생이 한 편의 영화라면 그러한 순간들은 《다시 보고 싶은 명장면》이라 볼 수 있겠다. 아이유와 팬들에게는 상암에서의 '바이, 썸머'가 그랬을 거였다. 이와 같은 명장면은 전혀 기대하지 않았을 때 선물처럼 찾아온다는 것이 특징이다.
나와, 당신과, 우리의 명장면은 언제쯤에 아무 예고 없이 찾아올까? 아마 다가오는 가을일지도 모르니 잘 챙겨 먹고 푹 자며 기다려보도록 하자.
시간을 달리네
멈춰버린 시간 속에 네가 서 있어
아무도 모를 추억 틈에 너와 내가 있어
기나긴 여름을 지나서 너에게
안기기 위해 오늘도 시간을 달리네
「시간을 달리네」는 올해 여름에 발매된 '자몽살구클럽'에 수록된 곡이다. 그리고 '자몽살구클럽'은 내가 태어나서 본 것 중에서 가장 획기적인 앨범이다. 다름이 아니라, 앨범을 발매하며 동명의 소설도 함께 출판해버렸다. 국문과를 나온 한로로가 전공을 살려서 직접 집필했다고 한다. 자몽살구클럽, 죽고 싶은 네 여학생의 살구 싶은 이야기. 이는 한 줄로 정리한 책의 줄거리이자 앨범을 관통하는 주제이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은 평생 줄어들지 않을 거야. 너를 생각하는 날들도 마찬가지일 거야. 나는 너를 너무너무 사랑했고, 지금도 너무너무 사랑하고, 앞으로는 너무너무너무 사랑할 거야. 네 소원대로 잘 먹고 잘 살다가 이 마음을 주체할 수 없을 때면 당장 달려올게. 그럴 때면 나를 꼭 안아줘야 해. _p.161
여름을 달려서 '전부였던 너'에게 달려간 인물은 지금쯤 어디에 도착해 있을까? 상대에게 무사히 안겼을까? 글을 작성하며 호기심이 생겼다. 날이 더 추워지기 전에 책을 구매해봐야겠다.
let it be summer
한평생 Let it be summer
눈물마저 얼어 버릴 날이 와도
잊지 않게
녹여 버릴 수 있게
계속 간직할게
오늘의 여름을
여름을 대하는 태도가 제각각이다. 아이유는 어려운 말 없이 보내주기로 했고, 한로로는 너에게 가기 위해서 여름을 그저 달리고, 영케이는 계속 간직하겠다며 몇 번이고 다짐한다.
「let it be summer」은 영케이가 데이식스라는 둥지를 벗어나서 처음으로 선보인 솔로 정규 앨범 'Letters with notes'에 수록된 곡이다. 타이틀곡 「이것밖에는 없다」를 포함하여, 가을의 문턱에서 보내는 11통의 편지들이 모두 저마다의 매력을 가지고 있지만 「let it be summer」는 특히나 남다르게 다가온다.
잡을 수 없는 여름의 끝자락을 치열하게 노래해서 유달리 마음에 와 닿는 곡이다. 시간이 흘러서 겨울이 와도 마음속에 있는 청춘과 뜨거운 여름의 기억만큼은 시들지 않게 간직하겠다는 의지가 느껴진다. 나뭇잎들이 점점 익어가고 추위가 품을 파고들려고 하는 찰나에 마지막 에너지를 불태우고 싶다면 재생하기를 추천한다.
여름을 보내며
글을 쓰며 여름이라는 단어를 몇 번이나 썼는지 모르겠다. 의도하진 않았는데 이쯤 되니 약간 질리는 것도 같다. 아쉬워하는 것보다는 질리는 것이 더 속 편하니 좋은 건가 싶기도 하다. 이런 말을 하면 여름이 내심 섭섭해 하려나, 싶지만 솔직한 심정이 그렇다.
만약 여름이 여전히 아쉬운 사람이 있다면 위에서 추천한 곡들을 반복재생하길 추천한다. 계속 상기하며 소모시키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라며 프로이트가 추천했다. 그러니 「바이, 썸머」, 「시간을 달리네」, 「let it be summer」를 들으며 계절을 무사히 보내주자.
어차피 여름은 내년 이맘때쯤에 다시 돌아올 거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