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공연장 문화는 엄격하다. 물 외의 음식물 반입은 상상할 수 없다. 하지만 지구 반대편 이탈리아에서는 달랐다. '이탈리아 토리노 댄스 페스티벌'의 'BEYTNA'는 먹으면서 보는 연극이라는 전혀 낯선 방식으로 무대를 채웠다. 인터미션 없이 75분 넘게 진행된 공연은, 27유로(약 3만 9천원)의 가격으로 관람할 수 있었다.
언젠가 말이 안 통하는 타지에서 한 번쯤은 공연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한국이 아닌 다른 문화권의 공연 기획이나 공연장, 관객들의 태도가 궁금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 공연은 무용을 기반으로 한 연극이기 때문에, 극 진행을 따라가기 위해 완전한 이해는 필요 없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게다가 '먹으면서 보는 연극'이라고 팜플렛에 적혀 있었을 때부터, 이 연극은 나의 호기심을 자극했다. 나는 평소에도 실험적이고 새로운 연극을 좋아한다. 공연 기획에 관심이 많다보니, 대중들이 좋아할 공연을 만들기 위한 여러 시도들이 자꾸 눈에 밟힌다. 그리고 추후 공연을 기획할 때, 여러 인사이트가 되어줄 거라는 생각도 있기 때문에 무조건 보러가는 편이다. 한국에서는 공연과 음식이 함께 성립하기가 어려운데, 지구 반대편의 공연장에서는 음식이 하나의 공연 매체가 된 것이 문화 차이를 잘 드러낸다고 생각했다. 특히 식사를 중시하는 이탈리아 문화와 잘 맞는 공연 같아서, 특히나 더욱 보고싶었던 것 같다.

1. 공연장에 들어가서
저녁 8시 45분에 시작하는 공연이었다. 한국에서 공연 보던 습관이 그대로 남았던 나는 40분 일찍 공연장에 도착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가 사실은 없었을지도 모른다. 30분 전에 하우스 오픈하는 한국과는 다르게, 이 공연장은 5-10분 전에 하우스를 오픈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지, 공연도 아무런 공지 없이 지연되서 시작했는데, 한국에서 이렇다면 큰일이 나지 않을까 싶었다. 이러한 사소한 차이에서 한국의 빠른 문화, 그리고 그에 반해 대체적으로 여유로운 유럽의 문화를 알 수 있었다.
극장 로비 바로 앞에는 Bar가 있었다. 음식을 주는 공연이라고 해서 다들 배를 안 채울 것이라는 나의 예상과 달리, 정말 많은 이들이 공연 전 바에 앉아 수다를 떨고 계셨다. 이탈리아에서 Bar라는 개념은 술만 파는 곳이 아니라, 한국의 카페와 같은 곳이며 저녁에는 와인도 판다. 공연장의 TPO에 맞게 차려 입으신 관객분들이, 와인 한 잔씩 홀짝이고 있는 모습이 신선했다. 식사를 좋아하는 이탈리아인들답다고 느껴졌다.
팜플렛을 유심히 보다보니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했다. 여러 서양 무용가들의 이름 속 익숙한 이름 구조, JIHUN CHOI 를 발견한 것이다. 이 이름은 누가 봐도 한국인이라고 느껴서 그 때부터 새로운 기대감을 갖게 됐다. 토리노는 한국인이 정말 단비같은 도시이다. 이 공연장에도 한국인, 아니 어쩌면 동양인이 나 홀로 있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에게 더욱 '제가 한국인이에요! 한국인 여기 있어요!'라고 외치고 싶을 정도로 반가움이 들었다.
2. 마시고, 웃고, 춤추고, 음식을 준비하는 공연
"베이트나(Beytna)"는 레바논, 한국, 팔레스타인, 벨기에, 토고 출신의 네 명의 안무가와 네 명의 음악가가 함께 모여 음식을 나누는 나눔이라는 개념을 주제로 한 독특한 무용 공연이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과 예술적 경험에도 불구하고, 이들은 전통적인 가족 모임을 춤, 음악, 요리가 어우러진 예술적인 만남으로 재탄생시킨다.
마시고, 웃고, 춤추고, 음식을 준비하고, 마지막에는 공연 중에 형성된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는 관객에게 음식을 제공한다.
그들이 이야기하고, 마시고, 웃고, 춤추고, 먹는 모습을 직접 목격하세요. "베이트나"는 연민과 우정의 세계로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타인의 집으로 초대하는 단순한 초대이자 예술가의 직업과 안무적 표현, 그리고 과거의 형식과 상황에 대한 초대이기도 합니다.
- 홈페이지 소개글
공연은 할머니의 칼질 소리로 시작된다. 말 없이 칼질을 하고, 야채를 다지는 할머니에게 조명은 비춰진다. 무대 뒷편에는 공연이 시작 된 순간부터 스크린에 크게 스톱워치가 작동된다. 몇 초가 지나고 있는지를 보여주는데, 5분정도 각자 요리만 했다. 쥐 죽을 듯 조용한 무대에서 칼질 소리와 요리 소리밖에 들리지 않는 어색하고도 새로운 감각의 5분이었다. 마치 ASMR을 듣는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편안함이 느껴졌다. 물론, 몇몇 관객은 그게 어색했는지 계속해서 기침을 하기도 했지만 말이다.
7분 후부터는 드럼을 연주하시는 분이 드럼과 퍼커션을 연주하기 시작하더니, 음악 연주와 요리를 만드는 과정이 합쳐지기 시작했다. 10분이 지난 후에는 세 분이 기타를 치고, 그리고 다른 분들은 요리를 했다. 일정 시간이 지날수록, 새로운 음악과 새로운 춤이 보여졌다.
3. 서사의 도구로만 쓰인 동양인과 여성

외국어로 진행됐기에 100% 내용을 이해할 순 없었지만, 그 중에서 기억났던 건 한국인 배우의 나레이션이었다. 각자 본인들의 요리를 하다가, 갑자기 한국인 배우에게 조명을 비추더니 "I don't like japanese food"로 시작하는 나레이션 장면이었다. 누가 봐도 그 역할은 한국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동양인이었다. 나는 그 배우가 한국인인 걸 알았기 때문에, 왜 그 역할을 맡아야 했는지 의문이 들었다. 서양인들의 동양에 대한 인식이 일본과 중국으로 제한적인 탓이겠지만 말이다. 한국 배우가 동양 음식 관련 특정 대사를 맡았다는 사실이 인종적 고정관념을 강화하는 맥락으로 느껴졌다.
또한 동양인이 그러한 표현의 도구로 쓰였다는 것이 기분이 묘했다. 외국 책을 보거나 드라마를 봐도, 동양인이 그 속에서 맡는 역할이 제한적이다. 수동적인 캐릭터나, 소심한 캐릭터, 신비한 캐릭터 등 그들이 보는 고정 관념으로 다뤄지는 것 같다. 물론 그것도 그들의 새로운 시각과 관점이겠지만, 누군가에게 타자화를 당한다는 것은 달갑지 않은 듯 하다.
다른 배우분들은 인종으로 표현되는 하나의 캐릭터를 가지지 않았는데, 한국인 분만 '아시아인'을 대변하는 맥락의 표현 도구로 쓰인 것 같아서 과하게 도구화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이후에 그 분이 춤을 추시는데, 깔리는 노래가 중국풍의 노래여서 또 놀랐다. 서양에게 동양은 여전히 중국, 일본 같이 단편적인 이미지라는 것을 깨닫게 됐다. 세계 무대 속 동양인, 유럽에서 한국인으로 살아가면서 '한국인들은 세계 무대에서 어떻게 보이고 있는가? 동양인은 어떤가?' 와 같은 질문을 던지게 되는데, 그러한 질문을 더욱 깊어지게 한 순간이었다.

또, 이 뿐만이 아니라 할머니 역할에 대해서도 할 말이 있다. 나는 할머니 역할을 맡으신 분도,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다른 배우들은 음식을 만드는 것뿐만이 아니라 악기를 연주하거나, 춤을 추며 본인들의 정체성을 더욱 드러냈기 때문이다. 나는 할머니의 역할이 단순히 음식을 만드는 것에만 한정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면 너무 뻔하고, 너무 식상하지 않은가. "분명히 그도 자신만의 이야기가 있을텐데, 왜 여기서 음식을 만드는 역할로만 치부되고 다뤄져야만 하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해보니 난 하나의 역할이 단편적인 도구처럼 쓰이는 것을 싫어하는 것 같다. 다른 이들이 단체로 춤을 출 때, 할머니가 주방 앞에서 뚱하게 있는 모습은 날 자꾸 신경쓰이게 만들었다. 그래서 게속 바랬던 것 같다. 할머니도 꼭 공연이 끝나기 전에 춤을 췄으면 좋겠다고. 분명 여성도, 노인도 본인만의 이야기가 있고 세계가 있고 풍부한 정체성이 있을텐데 그 이야기를 표현하지 않는 게 안타깝게 느껴졌다. 가사를 전담하는 보편적인 어머니의 모습이 투영된 것 같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공연이 끝날 때까지 춤을 추지 않았다. 마지막에 음식이 마무리 될 때, 할머니는 샐러드를 버무리는 것으로 역할을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박수를 받으며 떠났다. 그 때 조금 생각한 것 같다. 아, 할머니의 춤은 요리였을지도 모르겠다고.
4. 그토록 기다렸던 음식을 먹는 시간

무용가들은 1시간정도의 시간동안 노래에 맞춰서 음식을 만들고, 이후에 관객들에게 대접한다. 식사를 하지 않고 온 나는, 이 시간만을 기다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처음에는 '이 많은 사람들이 과연 음식을 받아서 먹을 수 있을까?'라는 의문이 들었는데, 다들 일어나 무대쪽으로 나와서 한 명씩 받아가는 방식이었다.
정말 아쉽게도 음식은 내 스타일이 전혀 아니었다. 처음에는 고수가 올라간 샐러드를 받고, 드링크를 받고, 피자같은 것을 받았다. 샐러드는 고수때문에 향이 너무 강해서 토마토랑 오이만 골라 먹었고, 드링크는 하수구물을 먹는 것 같았다. 피자는 정말 마지막 남은 기대였는데, 정말 셨다. 정말 다시 생각해도 고개를 젓게 되는 맛이다. 그러나 다른 관객분들은 잘 먹었던 걸 보면, 문화권의 차이일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 자체의 맛은 정말 익숙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이 경험 자체가 특별했다.
음식을 먹으면서 무대에 나와있는 그 많은 사람들을 보고 있으니, 일반 공연에서는 보지 못하는 흥미로운 구도라고 느껴졌다. 그리고 진정한 쇼는 그 때부터 시작되었을 것이다. 배우분께서 "아직 공연은 끝난 게 아니다, 나가지 말아달라" 라고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관객들이 무대로 올라간 이후에도 버스킹의 구도로 춤과 음악이 이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니 이것이 진정한 관객 참여형 이머시브극 같다. 관객이 무대 구성의 한 부분이 된 것이 인상깊었다.
이 공연은 음식을 공연의 매개체이자 소통의 도구로 활용했다. 이는 단순한 관람을 넘어 관객을 무대 위의 '공동체 구성원'으로 끌어들인 진정한 이머시브 극이 아닐까? 요리와 춤, 그리고 음악이 합쳐지는 공연이라 좋았다. 사소한 일상 속에서 문화 예술을 발견해낸 것 같았다. 요리하는 손짓들이 마치 춤을 추는 것만 같았던 공연이었다.
아마 이 공연의 기획은 노래 틀면서 요리하고, 그에 맞춰 춤 추던 이의 순간에서 시작되었지 않았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