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RT insight

아트인사이트에게
문화예술은 '소통'입니다.

[Opinion] 어디에도 없는 심장 소리 - Lo-fi [도서/문학]

불가능한 기억, 그것의 현재

by 유민 에디터
2025.09.29 13:07

 

 

심장 소리를 듣는 일은 주변의 모든 소리를 멈추게 하여 나의 '지금'을 일순간 포착하는 예민함이다. 그러나 소리를 듣지 않는 순간에도 소리를 내는 심장은 '지금'을 흐리게 한다. 한 사람의 생애 속 결코 눈으로 볼 수 없는 심장을 날마다 떠올리는 일. 심장의 위치와 생김새를 짐작하는 일.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어느 거리에서 울려 퍼지는 음악을 듣는 기분.

그처럼 강성은의 「Lo-fi」는 누군가의 불규칙한 심장 소리를 기록한 악보로서 우리 앞에 놓인다. 악보 해석, 악보 변주, 악보 해체 중 그 어떤 것도 온전한 가능성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악보는 이미 오래전부터 불가능성의 그림자와 공모함으로써 자신의 탄생 배경을 은밀하게 암시하며 동시에 그 어떤 연주 없이도 자신의 존재를 적극적으로 알린다. 모두가 알지만 나만 모르는 듯한 소리로.

 

 

131.jpg


 

겨울밤

복도에는 복도의 소리

빈방에서는 빈방의 소리가 나고

거울 속에는 거울 속의 소리가 난다

 

눈길에 장화를 신은 남자가

나무를 끌고 가는 소리

겨울

음악은 사운드지

네가 말했다

쓸모없는 소리

내가 말했지

 

너의 불안에도 소리가 있어

귀뚜라미 소리

마룻바닥이 삐걱거리는 소리

누가 오나 보다

 

- 「사운드」 전문

 

 

누가 소리를 내는지 알지 못한 채 다만 그 소리의 근원지를 짐작하며 눈을 감는다. 이미 음악이 된 사운드만이 가득하다. 눈길에 장화를 신은 남자가 나무를 끌고 가는 소리는 복도와 빈방과 거울의 소리를 희미하게 한다. 소리가 발생할 수 없는 곳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끝에는 불안이 매달려있다. 그리고 그 불안마저 자신의 소리를 갖는다.

 

시 전체가 하나의 악보처럼 그려진다. 어디로부터, 어떤 경로로 생겨나 나열된 소리인지 알지 못해도 문제가 될 것은 없다. 나는 소리를 듣기 위해 온 것이 아니고, 악보는 소리를 내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그 어느 쪽도 아닌, 그 어디에도 속할 수 없는 존재는 무엇을 향하고 느끼는가.

 

그러한 질문으로부터 출발한 시집은 다양한 대극을 반복적으로 독자에게 제시한다. 남자와 여자, 노인과 아기, 동물과 식물, 지구인과 외계인, 겨울과 봄, 불과 물. 분명 존재하지만 존재한다고 말할 수 없는 것들. 그런 세상에서는 남자이면서 여자인 사람을 만난 후 자신의 성을 잃어버리는 일도 그다지 이상하지 않을 것 같다. 남자도 아니고 여자도 아닌 존재, 둘 다 참일 수는 없으나 둘 다 거짓일 수는 있는 반대 관계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것만 같다.

 

 

한 아이가 골목에 앉아 노래 부른다

후렴구만 계속 부른다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

아무도 본 적 없는 골목

겨울의 환한 빛과

여름의 서늘한 이끼와

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고여 있다

이따금 옆집 새와 고양이가 따라 부른다

아이를 찾던 사람이 홀린 듯 걸어 들어와 울다 지쳐 잠든다

고요한 물결에 휩쓸려 거울 밖으로 밀려난다

한없이 맑은 날

골목의 담이 모두 허물어지고

아이는 일어나 어디론가 걸어간다

이제 아무도 울지 않는다

거울 속은 텅 비어 있다

 

- 「거울」 전문

 

 

아무도 오지 않는 골목, 아무도 본 적 없는 골목은 존재하지 않는 골목과 다르지 않다. 그렇기에 존재하지 않는 골목에 앉아 있는 아이와 그가 부르는 노래의 실재를 따지는 일은 처음부터 의미를 상실한다. 아이가 곧 거울에 비친 나의 모습일 수도 있겠으나 전혀 다른 무엇이라 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 불가능성 속에서 태어난 악보의 끝은 텅 비어 있다.

 

「사운드」의 화자는 거울 속의 소리를 포착하고 그 소리를 악보 위에 기록했지만 실제로 그 소리를 들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 소리가 났는데 소리를 들은 사람이 없다.


아이를 찾던 사람이 나였을까. 거울 속을 들여다보며 울었던 사람이 나였을까. 그 질문에 답할 수 있는 아이는 어디론가 걸어가 사라졌다. 아무도 울지 않아서 웃는 법을 잊었다. 꿈속에서도 만날 수 없는 아이, 꿈에서 깨어난 후의 거울.

 

 

우린 다 죽었지

그런데 우리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

우린 이미 죽었어요

말해도 모른다

매일 갑판을 쓸고 물청소를 하고

죽은 쥐들과 생선, 서로의 시체를 바다로 던져버리고

태양을 본다

태양은 매일 뜨지

태양은 죽지 않아

밤이면 우리가 죽었다는 것을

죽음 이후에도 먹고 자고 울 수 있으며

울어도 바뀌는 건 없으며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 「유령선」 부분

 

 

시집의 시들이 톱니바퀴가 맞물려 돌아가듯 계속된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삶과 죽음이라는 대극이 불가능성 속에서 맞물린다. 태양은 우리의 죽음을 가린다. 말해도 모르는 사람이기에 심장 소리를 들어도 심장을 느끼지 못한다. 모든 것은 이미 죽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죽어있는 남자, 죽어있는 아이, 죽어있는 너와 나. 악보는 이미 멎어버린 심장의 소리를 계속해서 기록한다. 살아있는 동안에는 말하거나 들을 수 없는 것만을.

 

우리가 죽었다는 걸 아무도 모른다는 사실은 기묘하다. 만일 우리 역시도 우리의 죽음을 깨닫지 못하는 상태에 놓여있다면 어째서 그와 같은 착각에 빠지게 된 것일까. 삶은 과연 계속되는 것일까. 우리는 죽음을 삶이라고 믿어온 사람들이다.

 

유령은 삶과 죽음 어디에도 속하지 못하는 존재로 상정될 수 있다. 나아가 유령은 삶과 죽음 중 어느 쪽으로 확정되지 못한 존재다. 존재의 원인이 결정에 기인하지 않으므로 무언가를 결정할 수 있어도 바뀌는 것은 없다. 아무도 본 적 없는 골목에서 아이를 찾으며 울었던 사람이 울음을 멈추게 된 이유가 그것이다. 다만 존재한 적 없는 유령의 심장 소리가 들려온다. 죽음 이후에도 그치지 않는 심장 소리는 누군가의 고유한 사운드로서 음악이 될 수 있다. 그 음악은 곧 음질이 낮고 잡음이 많은 Lo-fi다.

 

 

좁고 어두운 방

창가에 기대서서

마지막 햇빛이 떠나가는 걸 본다

 

오늘 죽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않고

오늘 산 자는 영원히 살지 않고

 

결코 다시 죽지 않으리

 

마지막 햇빛이

사라지는 걸 본다

 

- 「안티고네」 부분

 

 

죽지 않는 태양의 마지막 햇빛. 우리라는 미결 속의 나라는 완결. 어디에도 없는 나의 심장 소리. 그 불가해한 사운드.

 

 

 

아트인사이트 에디터.jpg

 

 

유민 에디터의 인기글

많이 읽힌 글 3편
  1. 01 [Interview] 소리가 아닌 말을 전달하는 음악 - 성악가 이형욱
  2. 02 [Opinion] 그와 그녀의 이율배반 - 밀양 [영화]
  3. 03 [Review] 이상적 세계의 재현과 여성 - 알폰스 무하 원화전
<저작권자 ⓒ아트인사이트 & www.artinsight.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