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소리가 되지 못한 것들 [도서/문학]

[시집] 손택수,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글 입력 2023.07.12 1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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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하지 않아도 알게 되는 것들이 있다. 소리가 아닌 행동으로 우리는 가끔 그것들을 위로한다. 손택수 시인은 시집『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를 ‘내 삶의 그늘 속 이야기들을 담았다는 점에서 시로 쓴 자서전인 셈이다’라고 이야기한다. 자신이 생각하던 시의 형식, 상징에 대한 틀에서도 벗어났다. 그리고 자신이 기억하는 순간들을 아름답기보다는 직설적으로 적어낸다. 입으로 내뱉지는 않지만, 눈으로 이야기하는 순간들이 있다. 말보다 행동이 더 크게 남는 순간들이 있다. 그런 순간들을 시인은 또다시 시로 묵묵히 담아낸다.

 

 

소리 쪽으로 기우는 일이 잦다

감각이 흐릿해지니 마음이 골똘해져서


나이가 들면서 왜 목청이 높아지는가 했더니

어머니 음식 맛이 왜 짜지는가 했더니

뭔가 흐려지고 있는 거구나


애초엔 소리였겠으나 내게로 오는 사이

소리가 되지 못한 것들


되묻지 않으려고

상대방의 표정과 눈빛에 집중을 한다

너무 일찍 온 귀의 가난으로

내가 조금은 자상해졌다


- 「귀의 가난」 전문

 

 

귀의 가난은 손택수 시인의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에서 첫 문을 연다. 시에서 가난은 노화의 비유이다. 즉, 귀의 가난은 노화로 인해 손실된 청각을 뜻한다. 기능의 손실로 인하여 목소리도 커지고 음식의 맛도 변했다. 그러나 정작 커지고 진해졌으면 하는 소리는 희미해져만 간다. 나이가 들어 불편해지는 것들을 나열로, 시인은 어머니의 모습을 그려낸다. 그리고 불편함을 불평하기보다는 자상함으로 그것을 받아들인다. 그의 행동에 집중해본다. 시인이 소리가 아닌 시로 적은 것을 우리도 자상하게 읽어보면 좋을 것 같다.

 

 

이력서엔 영영 옮겨올 수 없는 것들로 하여

구겨진 이력서에 나는 시를 쓰고 있네


- 「이력서에 쓴 시」 부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현대인과 떼어내고 싶어도 뗄 수 없는 것이 있다. 그것은 바로 이력서이다. 시와 비슷한 것이 있다면 이야기를 담는다는 것, 자신이 살아오는 과정의 일부분을 적어낸다는 것이다. 그러나 시에서는 내면적으로도 이야기할 수 있는 것을 이력서에서는 적어내지 못한다. 자신의 인적 사항을 적어야 하는 칸에서는 반듯하게 정보만은 적어낼 뿐 정작 삶 속에 일어난 이야기와 그를 통한 감정 등을 적어내지 못하는 것이 이력서이다. 반면, 시는 다르다. 자신의 이야기와 자신의 감정을 가득 담아낼 수 있다. 시와 이력서는 닮은 것 같으면서도 닮지 않았다.

 

이력서에 쓴 시에서는 ‘없고’라는 시어가 계속되어 반복된다. 이력서에는 적을 수 없는 것들, 볼 수 없는 것들 그것을 시로 적어낸다. 시인은 이력서가 아닌 시를 적는다. 

 

 

향이 나지 않아 속이 썩은 것 같다고 해서 얻어온 모과

제 방에 들어오니 향이 살아납니다

향이 없었던 게 아니라 방이 너무 컸던 거예요

애옥살이 제 방에 오니 모과가 방만큼 커졌어요

방을 모과로 바꾸었어요


- 「모과의 방」 부분

 

 

커다란 곳에 있던 모과는 작은 시인의 방에 와서야 자신의 가치를 보인다. 향이 나지 않는 이유는 모과에게있지 않다. 커다란 방안은 작은 모과의 향을 담아내지 못했다. 너무 커다란 공간을 작은 방으로 바꾸었던 것만으로 모과의 가치는 빛을 본다. 좁은 방에서 모과를 가까이하며 바라보며 그 가치를 알고, 그것과 동일시되면서 시인은 작지만 힘을 내뿜어 내는 모과의 가치에 대해 자신에 대해서 생각하게 만든다. 어쩌면 시인은 방을, 자신의 곁을 내어준 것일지도 모른다. 자신의 곁에서 가치를 보이는 것은, 나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는 공간은 무엇일까. 



어떤 슬픔은 도무지 함께할 수 없는 것이다

혼자 중얼거리는 사람이 사라지자 혼자서 

중얼거리는 사람들로 거리가 가득 찼다


-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 부분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는 이 시집의 표제작이다. 시인은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는 이 구절을 사람들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하며,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고 고집하는 세계에 대한 슬픔의 아이러니라고 말한다.

 

시를 읽으며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자신의 주변에 존재하는 슬픔은 늘 누군가와 함께한다는 것을 기억해 주기를 바란다. 시에 등장하는 중얼거리는 사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그가 사라져도 중얼거리는 것이 남는 것처럼, 다른 사람이 중얼거림을 이어받는 것처럼 슬픔도 누군가가 어디선가 함께하고 있을 것이다.

 


꽃말을 지워보렴 차라리

라일락의 우정과 코스모스의 순정과

영산홍의 첫사랑을 놓아주니

뜻밖에, 홀가분해진 건 나


이름에 가려져 있던 이목구비가 찬찬히 눈에 들어온다

찾지 못한 꽃이 잎과 잎 사이의 하늘처럼 하늘거린다


- 「숨은 꽃」 부분

 

 

꽃을 살 때 꽃말에 집중하는 사람들이 많다. 꽃을 주고받으며 그 안에 숨겨진 의미를 찾는다는 것은 재미난 일이기도 하지만, 꽤 머리가 아픈 일이기도 하다. 꽃말을 진중하게 그 의미를 받아들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숨은 부분을 바라보기보다는 꽃이라는 것에 집중을 해보면 어떨까. 꽃에 색은 어떤지 생김새는 어떤지 꽃잎은 몇 개인지,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다 보면 숨겨진 의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을 마주할지도 모른다. 시인 역시도 이름에 가려져서 보지 못했던 것을 천천히 바라보는 순간을 시 안에 담는다. 하늘 하늘거리는 꽃잎들은 의미를 볼 때 마주할 수 있는 것이 아닌 꽃을 있는 그 자체로 바라볼 때 볼 수 있는 것이다.

 

시인 손택수는 일상에서 순간을 포착하여 독자의 공감을 불러올 수 있도록 그려낸다. 화려함보다는 편안함을 보여주는 시들이 많다. 깊이 생각해본 적은 없지만 우리의 일상에서 볼수 있는 것들을 톡하고 건드려주는 기분이다. 화려함은 눈길을 휘어잡지만 편안함은 잔상을 남기고 오래오래 기억된다. 시집 『어떤 슬픔은 함께할 수 없다』가 그러하다. 시인의 말로 응축된 슬픔과 죽음은 늘 우리의 일상에서 맴돌고 기억된다. 우리는 그들을 기억한다.



[김지우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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