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년 전에 본 영화 <소공녀>에서는 위스키와 담배만 있다면 과감하게 집까지 포기하는 프로 가사도우미 미소가 등장한다. 일을 해서 번 돈을 위스키와 담배에 투자하고, 남자 친구와 소박한 데이트를 하는 데 쓰는 미소는 현실 감각이 떨어진다는 소리를 듣지만 정작 본인은 불행해 하지 않는다. 미소의 결단력은 스스로에게 두 가지 질문을 생성하게 만들었다. 나를 지탱해 주는 취향을 보존하기 위해 어떤 것을 포기하고 사치를 부릴 수 있나. 나에게도 그런 경험이 있었던가.
미소처럼 집을 포기할 만큼 극단적이진 않지만 내게도 남들이 보기에 쓸데없는 소비로 보이기 충분한 사치가 더러 있었다. 한때 가장 공 들였던 사치는 음반 가게나 인터넷을 뒤적거리며 LP를 모으는 것이었다.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유브 갓 메일>, <라붐>의 OST가 담겨있거나 카펜터스, 류이치 사카모토와 나카모리 아키나의 음악 세계가 압축된 LP들. 구하기 어려운 레코드판을 사기 위해 며칠 동안 기를 쓰며 마침내 구해낸 적도 있을 만큼, 높은 가격을 염두에 두지 않고 바로 결제를 할 만큼 나는 이 사치를 꽤 좋아하고 즐겼다.
이 사치의 유효기간은 재작년까지였다. 턴테이블은 무용지물로 전락했고 소중히 모은 LP는 집 안을 꾸미는 장식품이 되고 말았다. 도대체 어떤 계기가 있었길래 저 많은 걸 모았을까. 장기간 쓸데없는 돈 낭비를 한 것만 같아 ‘지금 저걸 다 팔면 얼마나 받을까?’ 하는 생각도 잠시 해 보았다. 오롯이 나만을 위한 취미와 사치는 몇 년 사이 먼지 누울 자리만 만들어준 꼴로 변질되고 말았다.

커피와 담배를 자기만의 사치로 삼는 소설가 정은은 『커피와 담배』에서 이렇게 말한다. “오늘도 커피 한 잔을 앞에 두고 앉아 혼자 공상에 잠긴다. 내게 커피는 담배, 영화, 시, 산책, 연애, 술, 농담, 그림자, 새벽, 음악이다. 내겐 그런 사치와 낭비가 필요하다.” 화자는 자신이 유일하게 부릴 수 있는 사치로 커피를, 기억과 감정을 소환시키는 기호식품으로 담배를 꼽는다. 어디서든 구할 수 있고 특별함이 도드라지지 않지만 화자는 커피와 담배를 향한 애정을 지면에 꾹꾹 눌러 담는다. 커피값도 담뱃값도 한없이 오르는 세상에서 이것만큼은 꼭 품겠다는 의지를 담아.
커피에 대한 한 일화로, 화자는 사직서를 내고 영화과에 다시 입학했던 시절을 소환한다. X세대에 속하는 화자는 한 꺼풀의 시대를 지나 88만원 세대로 불리는 사람들과 대학을 다니게 되지만, 새로이 마주한 현실은 아르바이트만으로 등록금과 생활비를 벌 수 있었던 과거와는 판이해져 있었다. 좋아하는 커피를 마음껏 마실 수도 없었다.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아메리카노를 포기하고 가장 싼 에스프레소만을 마셔야 했다고 회상한다. “아무 고민 없이 몇백 원 비싼 아메리카노를 주문”하는 것이 당시 정말 하고 싶은 일이었지만, 내일을 위해, 미래를 위해 적은 지출도 삼가는 일상을 택하고 그건 일종의 강박으로 자리 잡게 된다.
꿈을 이루기 위해 현재의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강박은 같은 과 동기가 연출하는 단편 영화에 출연하면서 바뀌게 된다. 길바닥에서 식은 김밥을 먹은 뒤 퇴근한 직장인들 틈에 끼어 여의도 버스 환승 센터에서 야외 촬영을 하던 중, 문득 이런 생각이 화자의 머릿속을 스친다. “어쩌다 여기에 서 있는 걸까.” 그 찰나는 영화 속 인물을 연기하는 허구가 아닌 지금 이 시간 자체를 살고 있다는 감각으로 변모한다.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느낌은 막막한 앞날만을 위해 고생을 감내해야 했던 외로움, 이를테면 “몇백 원 비싼 아메리카노를 차마 주문하지 못하는 가난한 마음”을 충만함으로 채워주는 계기가 된다. 때문에 화자에게 ‘지금 바로 여기’를 인식하는 것은 삶의 중심점이 되고, 이 중심점의 출발점인 커피는 화자의 삶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음식이자 사치로 자리 잡는다.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는 감각을 마음껏 퍼부어주는 커피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는 것이다.
지나친 도약이라고도 생각할 수도 있지만 커피를 마시면서 때때로 마음의 여유에 대해 생각한다. 커피를 마시는 허상의 이미지에 자신을 담기 위해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지만 때때로 커피는 ‘내가 지금 바로 여기에 있다’는 걸 완벽하게 느끼게 한다. 그 순간은 내가 만들어낸 ‘커피를 마시는 나의 이미지’를 넘어서는 것이다. 커피는 내 몸으로 감각할 수 있기 때문이다. - 58쪽
담배에 관한 상념에서도 화자는 아련한 추억을 데려온다. 화자에게 첫 담배의 기억은 은하수를 즐겨 피우던 할아버지로 향한다. 파킨슨병을 앓았던 화자의 할아버지는 다리에 힘이 빠져 거의 누워만 있었고, 외출할 때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할 만큼 몸이 좋지 않았다. 그런 할아버지의 소소한 재미는 방에서 담배를 피우며 자욱한 연기를 만들어내는 것이 전부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담배가 몸에 해롭다는 교육을 듣고 온 화자는 애연가였던 할아버지의 담배를 숨긴다. 건강을 위해서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평소 자신을 예뻐했던 할아버지는 이 일을 두고 크게 화를 낸다. 당시에는 알지 못했던 할아버지의 행동을, 10년이 지나 흡연자가 된 화자는 어렴풋이 이해하게 된다. 담배를 피우는 행위는 이제 화자에게 기억과 감정을 소환하는 의식으로 굳혀진다.
10년 동안 방에 누워만 있던 사람에게 담배와 라디오가 어떤 의미였을지 그땐 몰랐다. 할아버지의 건강을 악화시키는 데 담배가 일조하긴 했을 거다. 하지만 담배를 안 피우고 1년을 더 사셨다면 더 행복하셨을까? (…) 담배 한 개비의 영향과 가치는 다 다르다고 믿고 싶다. 중요한 것은 지금 나에게 담배 한 개비가 어떤 의미를 가지냐일 뿐. - 65쪽 ~ 66쪽
이렇듯 커피와 담배를 문신처럼 지니고 살던 화자지만, 커피와 담배를 놓아버린 전적을 갖고 있기도 하다. 짝사랑을 시작한 화자는 상대가 커피도 담배도 즐기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채고, 그를 따라 커피와 담배를 멀리하게 된다. 여기서 화자만의 커피와 담배의 역사는 잠시 명맥이 끊긴다. 해로운 사치를 끊으니 창조력은 샘솟고 몸은 건강해졌으나 어딘가 공백이 생긴 느낌이 화자를 찾아온다. 금욕은 몸을 건강하게 만들었지만 건강이 선사해준 일상에는 굴곡이 없다. “무미건조한 삶보다는 고통도 있고 행복도 있고 많은 것들을 견디는 삶이 더 의미 있어 보였다. 아니 사실 이 모든 것은 다 핑계고 그냥 내 몸은 카페인과 니코틴을 원했다.” 행운과 불행, 행복과 고통, 명과 암, 선과 악이 교차하며 이어지는 삶이 화자에게는 더 유의미한 것이다. 그리고 커피와 담배는 단순한 식품을 넘어서 자신이 원하는 삶의 모습을 뚜렷하게 만들어주는 데 필수적인 요소가 된다.
빗대어 말하면, 커피와 담배는 고립을 고독의 상태로 만들어준다. 커피와 담배는 내가 나 자신과 함께 있게 해준다. (…) 혼자 있어도 완전하다는 느낌이 뭐냐고 다시 질문을 던지면 그것은 잠시 죽음을 경험하는 것이라고 답하고 싶다. (…) 죽음은 두렵지만 매혹적인 것이고 커피와 담배는 어떤 식으로든 죽음을 떠올리게 한다. 그건 매번 작은 죽음을 경험하는 것과도 같다. 안전한 방식으로 살아 있다는 것을 더욱 강하게 느끼게 하는 방식으로. 적어도 나에게 커피와 담배는 그렇다. - 96쪽 ~ 97쪽
고백하건대 한때 내가 LP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었던 이유는 ‘알맹이가 꽉 찬 사람이 된 느낌’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그때의 나는 지금보다 텅 비어 있었고 아무것도 없는 공간에 뭐라도 채워 넣고 싶어 했다. 나의 취향과 맞닿아있되 크고 무겁고, 개수가 적더라도 많은 자리를 차지하는 물상으로. 돈과 시간과 애정을 들여 탄생한 사치는 무엇 하나 내세울 것 없는 나를 그럴싸해 보이게 해 주었고, 그 착각은 효과적이었다.
이런 내가 위선적이고 허세 부리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괴롭다가도 ‘그게 나쁜가?’라는 반문이 튀어 올랐다. 비싸고 희귀한 LP를 모아봤자 내가 원하던 충만함은 걸어오지 않았다. 대신 어떤 LP를 살지 고르는 시간, 갖고 싶은 LP를 구하기 위해 집중하는 그 시간에서만큼은 나를 괴롭히는 상념으로부터 잠시 물러설 수 있었다. 때로 현실감을 잠시 잊는 건 필요하기에. 이것도 사치의 순기능이라면 순기능이랄까. 지금은 전혀 다른 사치를 부리는 중이고 LP 모으기를 예전만큼 사랑하지 않지만, 이 사치의 역사는 일시적으로 중단되었을 뿐 언젠가 나를 찾아올 것이라 믿는다. 그때는 다른 순기능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