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돌파구] 연극 아이들_포스터 이미지_edit.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23141425_huayuqen.jpg)
작년 8월 돌파구가 초연으로 선보인 <아이들>이 약 1년 만에 재연으로 돌아온다. 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를 배경으로 하는 이야기는 은퇴한 핵물리학자 부부 로빈과 헤이즐의 집에 옛 동료 로즈가 찾아오며 시작된다. 작품은 치정극처럼 출발하지만 로즈가 방문한 진짜 목적이 밝혀지며 다음 세대에 관한 무거운 질문으로 나아간다. 초연 때 30대 젊은 배우들이 60대인 인물들을 연기하며 무대에는 등장하지 않는 ‘아이들’의 모습도 함께 보여줬다면, 이번 공연에서는 50대 배우들이 배역을 맡으며 좀 더 공감할 수 있는 인물을 표현한다. 장소도 바뀌어 초연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공연이 될 예정이다.
‘아이들’은 극 안에서 다양한 사람을 지칭한다. 로빈 헤이즐 부부의 딸인 로렌, 이들의 집에서 소젖 짜는 일을 하던 피오나, 지금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를 수습하는 젊은 노동자들... 모습은 보이지 않아도 대화하다 종종 드러나는 이들의 존재감은 로빈과 헤이즐, 로즈를 불편하게 한다. 돌파구의 <아이들>은 아이들을 위해 세 사람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답을 제시하거나 누군가를 비판하는 대신 이들이 살아온 시간을 묵묵히 보여주고자 한다. 관객은 거기서 무엇을 발견할 수 있을까. 공연 준비가 한창인 지난 16일, 전인철 연출과 전강희 드라마터그를 만났다.

<구미식> 이후 두 분 모두 LG아트센터에서 <헤다 가블러> 공연에 참여하시고 다시 돌파구 작업으로 돌아왔어요. 어떻게 지내셨나요?
전인철(이하 ‘철’): <헤다 가블러>는 정말 많은 사람이 참여한 프로덕션이었어요. 돌파구 작업을 할 때와는 또 다른 느낌으로 열심히 했고, 즐거웠습니다. 이런 방식의 작업도 있다는 걸 깨달은 시간이었죠. 내가 돌파구에서 작업을 하는 의미에 대해서도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어요. 돌파구에서의 작업은 큰 프로덕션과 함께하는 작업과는 달리 매우 자유로운데, 또 그만큼 철저하게 해야겠다는 생각도 했고요.
<아이들>은 1년 만의 재연입니다. 작업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재연을 결심한 이유도 궁금합니다.
철: <아이들>은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관한 이야기이면서, 한편으로는 세대 간의 차이와 그 사이에서 벌어지는 다양한 문제도 담고 있거든요. 작년에는 노인인 주연 3인을 30대 배우들이 연기했는데, 그러다 보니 세대와 관련된 부분을 제대로 다루었나 하는 의문이 제 안에 있었어요. 그 지점을 더 파보고 싶어 재연을 결심했죠. 재연이지만 공연 장소도, 배우들도 다 바뀌어서 처음부터 새로운 작업을 하는 느낌이에요. 똑같이 에너지가 많이 듭니다.
그래서 이번엔 50대 배우들이 주연을 맡았어요. 30대 배우들과 작업할 때와는 느낌이 많이 다를 것 같아요.
전강희(이하 ‘희’): 초연에서는 젊은 배우들이 노년인 인물들을 연기하다 보니 이들에게서 자연스레 이 극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피오나, 로렌, 동네 꼬마들 등)의 모습이 보였어요. 이들이 옛이야기를 들려주고 자기 자식 이야기를 하며 아이들 흉내를 내기도 하고요. 이번에는 50대 배우들과 함께하다 보니 그 얼굴에서 아이들 대신 실제 극중 인물들의 젊은 시절이 상상이 되더라고요. 과학자로 활약했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진짜 그때의 모습이 배우들한테서 보이는 거죠.
철: 비슷한 맥락인데, 초연 때는 손자를 볼 나이의 인물들을 젊은 얼굴의 배우들이 연기하면서 오히려 작품의 주제가 잘 드러났던 것 같아요. 이 작품은 무대 위에 아이들을 등장시키지 않고 아이들, 그러니까 다음 세대 이야기를 하는 작품이니까요. 반면 인물들과 비슷한 나이의 배우들이 연기를 하는 이번에는 실제 그 인물들의 고민에 관객이 좀 더 공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감정적으로 이입하기도 좋고요.
공연 장소도 독특해요. abnormal 필운은 일반적인 극장이 아닌데 여기서 공연하기로 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철: <아이들>은 해 지기 전 로즈가 로빈-헤이즐 부부의 낡은 오두막을 찾아오며 시작해 그때부터 2시간 동안 일어나는 이야기예요. 인물들을 둘러싼 세계가 원자력 사고 이후 분초를 다투는 급박한 상황이라는 걸 보여주죠. 이러한 연극 속 시간과 공간을 관객과 최대한 잘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가 abnormal 필운을 발견했어요. 극장이 아니라 객석도 따로 없고, 어느 집 거실 같은 공간입니다. 극장이라는 공간에서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관객과 무대 간의 약속이 있잖아요. 이번 장소는 그런 게 없어서 관객에게도 새로운 경험이 될 것 같아요.
희: 인물들이 거실에 관객을 초대한 다음 대화를 나누며 관객을 설득하는 느낌의 공연이 되지 않을까 싶어요. 저는 작가인 커크우드도 이런 의도로 작품을 썼다고 생각하는데, 이런 무대라면 작가의 의도를 잘 실현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극단 돌파구] 아이들 공연사진_240802_121_edit.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23141938_dedocdrm.jpg)
일반적인 극장은 사방이 막힌 암실에 가까워서 관객들은 공연이 시작되면 외부 시간의 흐름을 잊고 극의 시간을 따라가는데, 이번 <아이들>은 어떤가요?
철: 공간의 장점을 살려 대본 속 시간의 흐름과 실제 현실의 시간의 흐름을 맞춰보려 했어요. 실제로 이번 공연은 작품 속 시간대와 비슷한 저녁 6시에 공연을 시작합니다. 해 지기 전 통창으로 드는 자연광에 의지해 약간 어두운 상태로 시작했다가, 완전히 해가 지고 나면 배우들이 배터리가 장착된 휴대용 조명을 사용할 거예요. 극중 전기 공급이 제한되는 상황을 잘 보여주기 위해서죠. 그러다 이야기 흐름상 전기가 들어오는 시간이 되면 공간 자체의 조명을 사용할 예정입니다.
연출님은 예전에 돌파구에서 ‘재현하기와 재현하지 않기’를 탐구 중이라 하셨는데, 이번에는 시간과 공간을 실제 연극 속 이야기와 비슷하게 만들어 초연보다 더 많은 재현이 이루어질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
희: 다른 나라에서 공연한 <아이들> 무대를 찾아봤는데, 다 리얼리즘 무대긴 하더라고요. 진짜 오두막처럼 꾸민 세트에서 공연이 펼쳐지죠. 저희는 그런 방향으로는 가지 않으려 해요. 어디까지를 재현으로 봐야 하는지 저도 고민을 하는데, 배우들이 나이 든 사람을 연기하기 위해 몸을 구부린다거나 하는 재현은 하지 않아요. 공간도 극장 느낌이 아닐 뿐 오두막을 재현하지는 않고요. 초연 때 소품을 최소화했듯이 이번에도 무대는 단순할 거예요.
철: 이전에 했던 <고목>도 어느 마을의 부잣집 마당이 배경인데 오히려 공간을 비움으로써 작가의 텍스트와 배우의 몸이 두드러지게 했어요. 그랬을 때 작가의 메시지가 관객의 몸을 통해 똑바로 전달된다고 생각하거든요. <아이들>도 대본에는 식탁, 싱크대처럼 일상 공간이 그대로 나오지만, 저희는 그걸 다 물리고 배우가 직접 관객에게 몸과 목소리로 이야기를 전하길 바라요.
앞서 이 공연이 인물들이 관객을 각자 설득하는 느낌이 될 거라 하셨는데, 두 분은 헤이즐, 로즈, 로빈 셋 중 누구의 삶의 방식이 관객에게 가장 와닿을 거라 생각하나요?
희: 대부분의 사람이 헤이즐에게 이입을 할 것 같아요. 대본에서 헤이즐이 발전소로 들어가는지 아닌지 여부를 명확히 하지 않는 것도 그 때문이고요. 극을 올리는 창작자에 따라 다양한 선택을 할 수 있을 거예요. 집에 남는 것을 암시할 수도, 발전소에 들어갈 것을 암시할 수도 있겠죠. 관객도 자신이 어떤 선택을 할지 생각해 볼 수 있고요.
철: 한 사람의 편을 들고 싶진 않아요. 누군가에게 설득되려면 결국 그 사람에게 공감을 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관객이 인물의 삶과 이야기에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것이 제 몫이죠. 공감하면서도 세 사람 각자의 입장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들려 해요.
![[극단 돌파구] 아이들 공연사진_240802_091_edit.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23142458_hvenughw.jpg)
초연 때 기억에 남는 관객 후기가 있었나요?
희: 젊은 관객이 남긴 글인데 <아이들>에서 이런 생각을 하는 어른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위로가 되었다고 하더라고요. 그게 좀 놀라웠어요. 저로서는 상상하지 못했던 지점이었습니다.
저는 발전소 사고가 한참 전에 일어난 걸로 시간의 흐름을 잘못 파악한 리뷰를 봤는데, 저도 처음 대본을 읽을 때 초반에 그런 착각을 했기에 신기했어요. 시간적 배경이 모호하게 느껴지는 것도 작가의 의도일까요?
철: 아마 집안 묘사 때문에 더 그런 느낌을 받을 것 같아요. 로빈과 헤이즐이 사는 오두막은 오래되고 낡은 모습으로 그려지니까요.
희: 저희끼리도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어요. 별생각 없이 읽으면 예전에 일어났던 이야기처럼 느껴지는데, 읽다 보면 가까운 미래가 배경이라고요. 저희도 작가가 의도했을 거라고 봐요. 사실주의 극이지만 그런 것 치고는 명확하게 쓰지 않은 게 많거든요. 일부러 모호하게 만들어서 아이들의 의미도, 시간적 배경도 열어놓은 듯해요.
서로 방향은 다를지언정 세 명의 기성세대가 삶에 매우 적극적인 반면, 무대에 나오지 않는 아이들은 그다지 긍정적으로 그려지지 않는다는 것도 인상적이었어요. 두 분은 작품 속 아이들을 어떻게 바라봤나요?
희: 아이들은 이들이 젊은 시절에 만들어낸 결과물이에요. 성장을 위해 열심히 달렸지만 좋은 미래를 주진 못했죠. 로렌과 피오나가 이 작품에서 아이들의 대표라고 생각하는데, 어른들에게 그들이 긍정적으로 묘사되지 않는 것은 기성세대인 어른들이 제대로 된 미래를 만들지 못했다는 걸 보여주는 장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한 가지 재밌었던 건 로빈과 헤이즐의 맏딸인 로렌에 대한 배우들의 생각 차이였어요. 초연 때도 이번에도 공연 준비하며 로렌이 어떤 인물인가를 놓고 많이 이야기가 오갔거든요. 분노조절장애가 있다, 몸이 아프다... 그러다 이번에는 사실 별문제가 없을 수도 있다는 이야기가 나오더군요. 진짜로 로렌이 이상한 게 아니라 그냥 어른들 눈에는 아이들이 뭘 해도 성에 안 차서 그렇게 이야기하는 거라고요. 50대 배우들과 작업을 하니 이렇게 또 관점이 달라지더라라고요.
철: 저도 피오나와 로렌이 아이들을 대표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렇기에 기성세대 3인이 이들을 어떻게 대하는지가 매우 중요하고요. 아이들을 걱정하지만, 그건 어른들 생각일 뿐이고 정작 아이들은 나름대로 자기 인생을 잘 살고 있는지 모르죠. 지금까지 어른들(기성세대)에게 아이들(다음세대)이란 걱정거리거나 성적 대상일 뿐이지 않았나. 그런 반성이 작품에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고, 이번에 좀 더 잘 표현해보고 싶어요.
![[극단 돌파구] 아이들 공연사진_240802_076_edit.jpg](https://www.artinsight.co.kr/data/tmp/2509/20250923142840_hwrnpzpx.jpg)
<아이들> 이후로는 어떤 공연을 생각하고 계신지도 궁금합니다.
철: 요즘은 동아시아 역사에 관심이 생겨 관련된 자료를 찾아보고 있어요. 어떤 때는 보다가 재미있어서 새벽 5시, 6시를 훌쩍 넘길 정도로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삶의 모습이 상당 부분 20세기에 만들어졌잖아요. 조선이 망하고 일제강점기, 광복, 전쟁을 거쳐 현대로 넘어오는 그 시기를 좀 더 알고 싶어요.
그 시기의 혼란이 잘 드러내는 작품을 찾아보다가 제주도를 배경으로 해녀와 4.3사건을 다룬 작품을 무대에 올리기로 결정을 했습니다. 우선 오는 10월 말에 제주도에서 낭독공연을 할 예정이에요. 또, 우리나라만이 아니라 같은 시기 일본과 중국의 이야기도 함께 다뤄보고 싶어서 내년 3월에는 <튤립>이라는 작품도 준비 중이죠. 한국과 일본의 전쟁과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카자흐스탄으로 이주한 고려인 이야기에도 관심이 있어 언젠가 공연을 올리기 위해 지금 공부 중입니다.
<아이들>의 삼연도 있을까요?
철: 그런 민감한 질문을. (웃음) 농담이고요. 또 할 의향이 있습니다. 같은 작품이라도 새로 공연할 때마다 각각 새로운 의미가 발생하니까요.
희: <아이들>은 2016년 영국에서 초연을 하고, 2017년 미국 브로드웨이에서 투어 공연을 했어요. 영국에서는 작은 극장에서 공연되다 미국으로 오면서 600석 규모의 공연이 되었지요. 미국 공연이 어땠을지가 무척 궁금해요. 큰 무대에서 많은 관객을 만나면 달라지는 작품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변주할 여지도 많고요. 이번에 저희는 배우의 연령대가 바뀌었는데, 삼연을 한다면 또 새로운 변화로 돌아오고 싶어요.
인터뷰를 마치며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려요.
희: 인간이 아닌 비인간 중심의 기후위기 담론이 발전하며 기후위기 이야기를 기존의 연극 형식으로 다루는 게 가능한지 고민이 있었어요. 새로운 형식을 찾아야 하나 의문이 들던 중 <아이들>을 발견하고 그 의문이 좀 풀렸어요. 인간의 유한성을 다룬다면, 정통적인 사실주의로도 기후위기라는 주제를 돌파할 수 있는 지점이 있다는 걸 깨달았죠. 제게는 여러모로 흥미로운 작품이니 관객분들도 재미있게 보시면 좋겠습니다.
철: 20세기 동아시아 사람들이 근대와 현대를 거치며 경험한 폐허와 혼란에 관해 탐구하고 싶다고 말했는데, <아이들>도 어떤 의미에서는 거기에 들어맞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근대화 과정에서 맞닥뜨린 혼란이 지금에 이르러 세대 문제로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아이들>을 포함해 앞으로의 돌파구 작업을 통해 20세기의 우리가 맞닥뜨린 혼란스러움에 대해서 이야기 나눠보고 싶습니다.
*2024 공연사진 제공: 박혜정 (스튜디오 에이치) / 극단 돌파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