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코엑스에서 세계적인 아트 페어인 '키아프'와 '프리즈'가 열렸다. 필자는 올해 처음으로 이 아트 페어를 구경했는데, 처음 듣는 갤러리와 작가들의 처음 보는 작품들이 대부분이었다. 식견이 짧아 그나마 들어본 작가들의 작품을 찾고자 열심히 눈으로 전시장을 둘러보다가 어느 순간 그 행위에 지쳐버려 그 '낯섦' 속에 던져지는 것을 선택했다. 중세 도서의 필사본을 제외하곤 다 20세기와 21세기에 만들어진 현대 예술의 장에서 느껴지는 낯섦은 대부분 이해가 어려운 것들이었다. 도대체 이 작품이 나타내고자 하는 의미가 뭔지 알 수가 없어 미간을 찌푸리고 한참을 들여다봐도 당최 모르겠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웬만한 것에 '그럴 수 있지' 라는 마음을 가진 필자조차도 '예술 참 어렵다' 라고 느꼈다. 아니, 어디서 '미'를 느껴야 하는 건지 이해가 가지 않는 작품도 있었다. 그런 작품들이 수억 원을 호가하는 엄청난 가치를 가지고 있을 줄이야. 가방과 몸이 작품에 닿지 않도록 가방을 품안에 안고서 게걸음으로 전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코엑스에서 나오니 어느 새 늦은 오후. 곰곰히 다시 떠올려봐도 이해가 안 가는 작품들이 많다. 현대 예술이 이렇게 어려웠었나. 숨겨진 히스토리를 알아야 이해할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건 가치가 높은 걸까. 여러 생각이 들었다. 과거 사조,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기의 작품들이나 인상주의 같은 정통 회화와 달리 현대 예술은 그 세계와 배경을 이해하는 것조차 어렵고 참고 자료를 찾기도 어렵지 않은가. 그럼 결국 시간이 지날 수록 이런 작품들은 극소수만이 향유할 수 있는 게 아닐까. 이런 저런 생각이 들며 곧바로 집어든 책,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
표지 우측 상단에 자그맣게 적힌 문구가 인상 깊다. '어느 문외한의 뉴욕 현대 예술계 잠입 취재기'란다. 일단 뉴욕, 현대 예술의 트렌드를 이끄는 대장격의 도시. 과거 메트로폴리탄 미술관과 스미스소니언 미술관에 놀러갔을 때 그 규모와 작품들의 다양성에 너무 놀라 온종일 박물관을 정신없이 돌아다니며 구경만 했던 기억이 난다. 그 다채롭고, 종합적이면서, 세련되고, 차갑고도, 뜨거운 열정의 뉴욕에서의 현대 예술계에 '문외한'이 뛰어들었다니. 이 용기에 먼저 작가 비앙카 보스커를 향해 박수를 친다. 그녀는 정말 문외한이었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의 17페이지, 그녀는 말한다.
굳이 고백하지 않아도 될 일이지만 여기서는 솔직하게 말하고 싶다. 난 예술을 예술로 느끼지 못하는 때가 정말 많았다. 어느 유명한 미술관의 정숙한 전시실에서 뿔과 코뚜레가 달린 거대한 봉제 곰을 보았을 때 난 그 자리에 1초도 더 있고 싶지 않았다. 어느 날 저녁, 로어 이스트 사이드의 브리짓 도너휴 갤러리-내가 조사한 바로 온갖 멋진 것들이 태어나는 자궁이었다-에서는 그야말로 정신이 혼미해졌다. 그날의 전시회 오프닝에서 나는 목까지 수염을 기르고 스포츠 양말로 멋을 부린 사람들을 비집고 들어가, 줄에 매달린 까만 비닐 갈매기가 바닥에서 한 뼘 정도 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술을 마시면 한결 나아져요." 옆에 있던 남자가 천절히 조언했지만 효과는 보지 못했다. (후략)
그래, 우리 모두 솔직해지자. 모든 사람은 아닐 수 있어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예술을 '예술'로 느끼지 못하는 때가 분명 있을 것이다. 필자도 이번 아트 페어를 보며 정말 깊게 공감한 점이다. 이런 생각을 한 작가가 미술에 대해 정말 너무나도 궁금증이 들어서, 뉴욕 갤러리에 알바를 하게 된 게 놀라웠다. 315 갤러리의 운영인 '잭'조차 작가가 미술사 수업조차 한 번도 들은 적이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도 놀라 "공부도 훈련도 하지 않고 많은 걸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은 없어요"라고 말할 정도다.
갤러리에서 총 아홉 번의 벽 페인트질을 하며 일하기 시작한 작가. 그녀는 이 책에서 오랜 미술사와 깊은 미학에 대해 다루지 않는다. 뉴욕의 한 갤러리에서 직접 마주한 현대 예술 세계의 솔직한 단면을 날카롭게 얘기한다. 미술 작품을 걸며 작가의 내면을 세상에 보이는 갤러리는 '순수한' 칭찬을 받기 위해 설사처럼 돈을 대하고, 한때 특정 작가의 작품을 사랑하던 사람이 '테크닉이 너무 뛰어나다'라는 이유로 '장식적'이라는 사형 선고를 내리기도 한다. 현대 예술이라는 심오하고도, '좋은 작품'의 후보로 가득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 하나는 인맥이다. 어떤 사람과 친분을 쌓을 것인가, 그것이 좋은 작품을 선정하는 방법 중 하나가 된다. 물론 이런 행위는 일반 대중이 참가하기 어렵다. 엄청난 돈이 오고가는 화려하고도 냉소적인 이 세계에 환영받는 것은 그 인맥과 돈을 가진 '특정 부류'를 위한 것이며, 일반 대중은 가장 후순위에 선심 쓰듯 공개되는 세계에 겨우 발을 들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 '새침한' 세계에 대해 읽어가면서 아트 페어가 생각났다. 올해 관람한 그 아트 페어 역시, 일반 대중에게는 개최하고 며칠 뒤에야 공개되었기 때문이다. 씁쓸해지는 마음과 함께 책을 넘긴다.
그렇다고 그녀가 예술에 대해 늘 회의적이고 비판적인 시선만 보이는 건 아니다. 그녀가 거의 10년 동안 매일 보았다는 이스트 81번가 공동주택 건물의 석회석 벽이 햇빛에 따라 다양한 색채를 보이는 것을 보고 남편 곁에서 감격한다. "저 색을 봐!" 매일 본 똑같은 광경이었을 지언정 어느 특별한 순간, 그녀에겐 새로운 낯섦이 되어 아름다움으로 흘러들어왔다. 결국 예술을 사랑한 그녀에게 현대 예술 세계가 어떻든 간에 그 자채로 느끼는 기쁨은 새로운 자극이자 활력이라는 것이고, 예술이 가진 순수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물론, 그 와중에도 본인의 작품이 오히려 가격이 내려가 본인의 작가 수명이 늘길 바라는, 또 일부 큐레이터 집단으로부터 소외받는 것을 두려워하는 '줄리'가 '비앙카'의 시선으로서 그려진다. 그녀의 갤러리 속 생존을 읽어가면서 현대 예술 참 지독하게 현실적이라고 느꼈다. 지금까지 생각한 '좋은 예술', '귀감이 되는 예술' 이라는 기준이 완전히 계산적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현대 예술에 대해 실망감이 생겼다. 그러나 그와 동시에 그 세계가 더욱 궁금해졌다. 그 속에서 살아남은 작품들에 오히려 관심이 생겼다. 그렇게 선정된 작품인줄도 몰랐으면서 보면서 괜시리 마음이 호젓해지는 작품들이 분명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자본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감성의 영역이기 때문이다.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를 덮으며 가장 크게 느낀 건 혼란스러움이었다. 역시 문외한인 필자 또한 스파이로서 뉴욕 현대 예술계에 잠깐 잠입했지만, 그 '순수함', 그러니까, '날것'에 가까운 사실적인 이 세상의 이야기가 쓰라리게 현실적이면서 쓰라리게 아름다웠다. 아득바득 그 속에서 본인의 이야기를 내고 싶은 작가들이 느꼈을 다양한 생각, 갤러리에서의 시야, 컬렉터들의 고민들을 모두 다 헤아릴 순 없겠지만 그 모든 것이 중첩된 사회로서의 현대 예술도 얼마나 치열한지에 대해 어렴풋이 느꼈다. 물론 당사자가 아닌 스파이로서 바라본 시야를 독자로서 함께 하였기 때문에 그 생태가 정확하진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사회의 한 구성원으로서 살아가는 그 발자국이 현대 예술에서도 똑같이 남고 있다는 점에서 묘한 동질감이 느껴졌다. 동시에 '현대 예술 그냥 어려운 것도 아니고 정말 어렵다' 라는 생각도 든다. 그렇기에 필자도 이 책의 내용처럼 '초대 받지 못한 이방인'이겠지. 이방인으로서 치열한 '삶의 현장 속 체험'을 하고 싶다면, 갤러리 뒤편에서 땀 흘리며 벽에 9번이나 페인트칠을 했음에도 벽이 모래와 같다는 꾸중을 듣고 10번째 페인트칠을 당한 벽에서 한숨 돌리고 있을 비앙카 보스커의 <미술관에 스파이가 있다>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