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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에세이

 

 

“남이 만든 말 신경 쓸 거 있나? 사실이 아닌 말에 무슨 힘이 있다고.”

“그 말들이 모이면 덩치 큰 멍청이가 되지. 멍청이가 힘자랑하면 사람이 다쳐요.

그러다 죽기도 하고.”

 

- 드라마 <멜로가 체질> 中

 

   

연극 <맵핑히틀러>를 보며 드라마 <멜로가 체질> 중 ‘한주’와 ‘진주’의 대화가 떠올랐다. 말도 안되는 거짓과 오해가 모여 그럴싸하게 부풀려졌을 때, 너무나 어이없게도 그 말은 강력한 힘을 지니게 된다.


이는 단순한 가십과 루머로 가볍게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우리 사회에, 또 사람들의 삶에 큰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이렇게 몸집을 불려가는 말들 사이 권력을 얻을 기회를 포착하고, 다른 사람들을 선동하며 자신의 이익도 불려가고자 한다.


너무나 평범했던 취준생 ‘한들호’와 그의 유튜브 채널을 중심으로 모인 보슬, 가람, 래민 역시 이러한 기회를 놓치지 않고, 사람들의 비뚤어진 정의감과 혐오를 교묘히 이용하며 돈과 권력을 늘려간다.


‘히틀러’와 나치를 경유하여 그려낸 그들의 모습은 너무나 익숙하기에 오히려 왠지 모를 불쾌감과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정교한 연출과 연기로 더욱 완성도를 높인 연극 <맵핑히틀러>가 SNS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비뚤어진 정의감과 소속감을 자극하는 선동의 위험과, 수많은 정보 속 진실과 거짓을 구분하는 능력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웹포스터-맵핑히틀러.jpg

 

 

 

누구나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는 시대 : SNS 시대의 불쾌한 골짜기를 파고드는 블랙코미디


 

괴물은 태어나는가, 만들어지는가. 많은 이들이 고민했던(어쩌면 지금도 진행 중인) 이 질문이 무색하게, 지금 우리는 너무나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는 시대에 있다는 생각이 든다.


보잘 것 없는 말들은 SNS와 같은 매체들을 통해 더 쉽게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알고리즘은 더 극단적인 의견이 다수의 의견인 것처럼 몰아간다. 그렇게 결집되어 몸집을 키운 세력들은 위험한 정의감에 고취되어 그들과 다른 집단을 공격하고, 이를 통해 더욱 소속감을 키워나간다.


어쩌면 너무나 익숙하게 느껴지는 이러한 극단적인 정치 세력의 작동 방식은, 이제 큰 권력을 가진 지도자나 국가가 아니어도, SNS와 같은 매체들을 통해 너무 쉽게 시도할 수 있는 방식이 되었다.


SNS와 같은 매체들이 우리 삶 속에 들어오면서 우리는 많은 것을 동시에 보고 들을 수 있게 되었지만, 오히려 그것 때문에 우리의 눈과 귀는 가려지기도 한다. 사실이 아닌 것들을 가려낼 겨를 없이 밀려드는 방대한 정보와 날선 논쟁들, 그리고 그 속에 자리잡은 혐오와 갈등은 사람들을 더 극단적인 정치의 장으로 끌어낸다.


<맵핑히틀러>의 주인공 ‘한들호’는 이렇게 분열된 정치의 장에서 사람들에게 눈먼 정의감을 주입했고, ‘무소인’이라는 허상을 만들어내 적대감과 분노를 권력의 동력으로 삼는다. 이를 통해 그는 자신이 사는 아파트 내의 부조리를 촬영하여 사람들에게 알리던 유튜버에서 시작하여, 수백만의 구독자를 가진 ‘구좋대장’이 되었고,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이 과정에서 한들호의 이미지를 설계하고 메시지의 전달방식을 조언했던 ‘보슬’의 역할은 결정적이다. 보슬은 한들호가 가진 평범함을 ‘친근한 영웅’의 자질로 만들었고, 화술에 대한 지식과 구독자의 니즈를 파고드는 기획을 통해 프로파간다의 효과를 높였다.


‘가람’은 들호의 사상을 맹목적으로 수용하며 온라인 상의 분노와 혐오를 현실 세계로 옮기는 행동대장의 역할을 한다. ‘래민’은 높은 학력과 법을 전공한 경험을 살려, ‘우리의 투쟁’의 운영을 체계화하고, 더 많은 당원을 끌어모으기 위한 당규를 세우고자 한다.


한들호를 비롯한 보슬, 가람, 래민은 모두 자신이 바랐던 길에서 이탈, 혹은 낙오한 인물들이다. 초기의 목표와 꿈을 달성하지 못하고, 주변부를 맴돌았던 그들은 자신이 겪었던 이탈 과 낙오의 이유를 그들이 속한 세계의 부조리와 연결한다.


그렇기에 이들의 분노는 더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는다. 만연한 실패에 비해 성공한 사람들의 삶이 너무나 쉽게 전시되는 요즘 세상에서 많은 사람들은 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실패 이후 새로운 기회를 얻기가 너무 어려운 사회에서 혐오는 너무 쉽게 힘을 키운다.


물론 우리가 사는 세상은 여전히 부조리와 불공평이 곳곳에 존재하는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하지만, 복잡하게 얽힌 다양한 층위의 불평등과 갈등, 권력과 질서가 만들어낸 고정관념을 보지 못한 채 세상의 문제들을 모두 특정 집단의 탓으로 돌려 버린다면 이는 그저 화풀이 대상을 만드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그럼에도 권력을 손에 쥔, 혹은 그것을 얻고자 하는 많은 이들이 복잡한 문제를 쉽게 풀기 위해 너무나 단순하지만 잔인한 방식으로 희생양을 만들어 낸다. 하지만 이러한 방식은 결국 계속해서 극단을 추구할 수 밖에 없고, 더 이상 극단으로 갈 수 없을 때 자멸한다.


<맵핑히틀러>는 누구나 쉽게 괴물이 될 수 있는 시대에 괴물이 되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을 되묻는다. 아직 정답을 알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답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너무 쉬운 풀이를 선택해서는 안된다는 것을 안다.


이를 위해서는 들불처럼 번지는 분노를 경계하고, 공론장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우리가 겪는 이탈과 낙오의 원인을 제대로 마주해야 한다. 우리의 분노와 좌절이 세상을 바꾸는 동력이 될지, 폭력을 재생산하는 무기가 될지는 결국 우리 스스로 결정해야 한다.


 

 

김효중 컬쳐리스트 태그.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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