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통 책을 고를 때 뒤표지에 적힌 글을 본다. 3문장 남짓의 간단한 요약과 추천사 정도만으로 책을 선정하기 때문에 정작 스토리는 잘 모른 채 시작한다. 하지만 여가시간을 위한 재미용 책 말고, 좋은 리뷰를 써내고 싶은 책임감이 드는 책이었기에 스토리부터 글의 배경, 흐름 등을 어느정도 알고 펼쳤다. 배경 지식을 조금이라도 예습하면 확실히 책을 진지하고 제대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첫 시작은 좋았다. 문장을 혀에서 여러 번 굴리지 않아도 잘 들어왔고 사용되는 예시나 문구들이 흥미로웠다. 하지만 점점 고개는 책에 파묻을 듯 앞으로 쏠렸다. 이해 안 되는 문장들을 어떻게든 이해하고 넘기고 싶어 아등바등하다 보니 자연스레 시야가 좁아진 것이다. 보통 그런 책은 중간에 포기할까, 100번도 넘게 생각한다. 그런 주저가 있었는데도 당당하게 완독하고 리뷰를 쓸 수 있는 이유는 포기하려 할 때마다 눈앞에 등장했던 문장들에 있다. 나머지 문장들이 크게 와닿지 않아도 흐름을 위해 참고 읽다가 보석 같은 문장들을 발견하면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느낌이었다. 아, 이걸 위해 이 책이 존재하는구나! 다와다 요코 작가의 독특한 문체가 쉽지 않음에도 이 책을 추천하는 이유는 직접 견뎌야지만 알 수 있는 짜릿함이 있기 때문이다.

2011년에 국내에 처음 출간된 이 책은 독자들의 오랜 시간이 담겨있는 요청으로 15년 만에 다시 복간되었다. 이 책에는 [유럽이 시작하는 곳], [부적], [해외의 혀들 그리고 번역] 등 여러 작품이 엮여있는데, 모두 산문형식이며 에세이에 가깝다. 하지만 그의 문체를 보면 의심할 것 없는 에세이 형식임에도 불구하고 읽다 보면 어딘가 소설 같은 느낌을 받는다. 아마 독일어와 일본어로 이중 언어를 사용하는 작가로서 독일어 작품과 일본어 작품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장소에서 일어나면서 겪은 사건들에서 비롯된 사색을 담고 있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영혼이 이 세상 어딘가에서 동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간다고 생각하는 것은 근사한 상상이다. 이 영혼은 그 사람으로부터 독립되어있다. 나는 영혼이 없는 사람처럼 보인다. 내 영혼은 항상 어딘가 떠돌아다니고 있기 때문이다.”
책의 제목은 [영혼 없는 작가]이지만 작가의 글에서 숨 쉬는 문장에서 비롯된 생각을 들여다보면 누구보다 영혼을 다해 삶을 이끄는 느낌을 받는다. 다만 그 영혼의 주인이 본인이 아니라 영혼 그 자체를 영혼답게, 자유롭게 만들어준다. 일상과 여행에서 마주하는 궁금증과 사유들을 다와다 요코만의 표현법으로 늘어뜨린 이 책 속에 독자의 영혼도 함께 자유롭게 만들어주는 문장들을 몇 개 소개해보려고 한다.
“그 여자가 연필에 대고 욕을 했을 때 문득 연필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연필은 또 남자로 느껴졌는데, 독일어에서 그것은 남성 명사이기 때문이다. (중략) 독일어 단어들의 문법 성을 익히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는 단어와 성이 아무 관련이 없기라도 하듯 단어의 성을 바로바로 잊어버렸다. (중략) 이를테면 만년필을 보면서는 그게 실제 남자라고 느끼려고 애를 썼다. 남자,남자,남자.. 책상 위의 작은 왕국은 하나씩 성을 갖게 되었다.” - p.44-45
대학에서 프랑스어 수업을 들으며 공부를 할 적에 비슷한 생각을 했다. 단어에 성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고는 속으로 비웃기까지 했던 것 같다. 하지만 외우기 위해서 단어와 성을 반복하다 보니 다른 단어를 공부할 때마다 앞에 붙는 성이 궁금해졌고 이제는 프랑스어 단어에 성이 빠지면 섭섭할 정도다. 사람 남녀 성을 구분하는 것에도 피로를 느끼는데 단어까지 성을 구분해야 한다니. 도대체 성이 뭐길래? 라고 생각했던 것도 잠시, 조금 1차원적으로 생각하니까 한결 마음이 편해졌다. 사물에 성을 부여할 수 있다는 건, 마치 사물에 영혼을 부여하는 것 같았다. ‘너는 남자,남자,남자..구나’, ‘너는 여자,여자,여자..구나.’하다보면 연필에 대고 욕을 하는 여자를 봤을 때 작가가 느낀 것처럼 사물이 살아 있는 생명체처럼 느껴졌다. 동물도 식물도 사람처럼 존중해주는 시대에서 사물에는 영혼을 부여하지 못할 게 있나 싶다. 사물도 영혼이 있다고 믿으면 좀 더 소중히 다뤄줄 수 있을텐데!
“내가 말하고 싶은 단어는 다른 단어와 혼동이 되어 버린다. 잃어버린 아이는 다시 나타나지 않고, 입양한 아이는 믿을 만하고 논리적이고 무엇보다 사람들이 바로 알아듣는다. 자기 친자식을 꼭 다시 찾아와야 할 이유는 없다. 그러나 때로 기분 나쁜 뒷맛이 남았고 나의 말을 마비시켰다.” - p.246
종종 이럴 때가 있다. 근래에는 늘 이러는 지도 모르겠다. 전하고 싶은 완벽한 단어를 머릿속에 담아두고 있다가도 말할 때는 전혀 생각지 못한 단어로 나가거나, 비슷하지만 엄연히 다른 말이 튀어 나간다. 그러면 떠올렸던 완벽한 단어를 구사하지 못한 것에 대해 깊이 아쉬워하곤 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를 잘 전달했어도 스스로는 어딘가 찝찝한 구석이 남아있는 것이다. 하지만 이 구절을 읽고 나서 나만 이상해서, 내 능력이 부족해서 이런 사태가 벌어진 게 아니라는 생각에 위안이 됐다. 다음에 또 이런 상황이 생기면 튀어 나간 단어는 단어대로 전해진 의미가 있을 것이니 최종적으로 전달된 단어에 집중하기로 해본다. 머릿속 단어는 이미 떠나갔는데 바짓가랑이 붙잡고 집착하다 보면 해야 할 말 전체를 잊어버리기도 하니까 얼른 이 방법을 도입해봐야겠다.
“‘흘려듣다’(überhören)라는 독일어 단어가 떠오른다. 흘려듣는다는 건 듣지 못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흘려듣다’(overhere)는 영어단어는 어떨까? 이 말은 ‘우연히 뭔가를 얻어듣다’라는 뜻이다. 사람들이 지나가다 들어도 뭔가를 얻어듣는다는 말인가? 이 말들은 같은 쌍둥이 말이 다른 장소에서 자랐다는 이유로 거의 반대의 뜻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 p.250
다와다 요코 작가는 이런 식으로 단어를 재조명하는 매력적인 문장을 구사한다. 단어와 단어를 비교하고 그 안에서 짜릿한 쾌감을 찾아내는 작가 덕분에 책을 읽는 독자도 같이 단어의 매력 속으로 퐁당 빠질 수 있다. 단어를 더 깊이 탐구해보는 건 우리말 백과사전을 보는 게 전부라고 생각했던 것이 안이하다고 느껴진다. 모어에만 머물러있지 않고 다양한 국가의 언어를 접하고 공부하면 자연스럽게 세상이 넓어질 수밖에 없겠다는 것을 문장을 통해 몸소 깨닫는다. 흘려듣(überhören)던 단어들을 다와다 요코 작가를 통해 흘려들으(overhere)면서 내 세계도 점차 넓어진다.
“만약 내가 –예를 들어 독일어 같은- 다른 언어를 말했다면 내 유년 시절은 얼마나 간단했을까. 나는 아주 간단하게 그냥 ‘이히(ich)’라고 말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말을 사용할 때는 자신이 남자인기 여자인지를 느낄 필요가 없었다. (중략) 나이도 계급도 역사도 태도도 성격도 따질 필요가 없다.” - p.233
일본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며 말을 시작할 때 ‘보쿠’(남자가 본인을 칭하는 단어)나 ‘아타시’(여자가 본인을 칭하는 단어) 중 본인을 나타내야 했던 다와다 요코 작가는 단어 선택에 있어 어려움을 느꼈다. 본인을 정확히 어떤 단어로 칭해야 할지 정확히 성립되지 않았기에 갈등이 있었던 것이다. 나는 한국에서 자라 ‘나’라는 단어로 성을 구별한 적도 본 적도 없었기 때문에 미처 인지하지 못했던 문제였다. 단어의 쓰임으로도 한 개인 안에서 갈등을 만들어 낼 수 있는 나라에서 자라 독일로 떠났을 때 그가 느낀 해방감이 ‘나’라는 단어에서 분출했다는 것이 신선했다. 생각해보면 ‘나’라는 단어는 모든 말하기에 있어 생략할 수 없는 단어인데, 그동안 너무 당연시했다. 다른 언어를 공부하면 스스로 능력적으로 편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보다 스스로 마음이 편하게 구사할 수 있는 언어가 따로 존재함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다와다 요코는 아래 문장으로 독일어를 받아들이는 것을 볼 수 있다.
“나는 마치 주머니에 밀어 넣어지듯 일본어 속으로 밀어 넣어져 태어났다. 그래서 이 언어는 나의 바깥 피부가 되었다. 그러나 독일어는 내가 삼켜서 몸 안으로 내려온 언어였고 그 이후로 내 배 속에 머물고 있다.” - p.248
작가의 문장들은 처음에는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도록 하나하나 친절하게 설명해주는 것도 아니고 그가 내보이는 생각도 편안하게 다가가기 쉽지 않은 주제들이다. 다른 사람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게 느껴졌다. 하지만 분명한 건 이해되지 않는 건 이해되지 않는 대로의 매력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해되지 않는 것을 결코 이해되지 않는 채로 내버려 두고 싶지 않아지는 글들이 책 속에 숨쉬고 있다. 한 번 이해해봐달라고 문장의 영혼이 말하는 듯이 느껴진다. 그래서인지 반복했을 때 더욱 울림이 있는 담백한 문장들을 두 번 세 번 곱씹어 보고 싶게 한다.
“독자에게 친절한 번역을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텍스트 자체가 알기 어렵거나 이상하거나 막히는 문학 작품의 경우 그 낯섦 자체를 번역물도 품고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대신문화재단, [세계작가와의 대화 x 다와다 요코]
리뷰를 쓰기 앞서 최종적으로 내 마음을 한결 가볍게 만들어 준데에는 다와다 요코 작가가 실제로 지닌 태도에서 비롯된다. 책을 잘 들여다보고 싶은 나머지, 책에 대한 부족한 이해도를 스스로 지닌 능력 탓을 했었는데 책에서 느껴지는 낯섦과 부조화 자체도 품어야 한다고 보는 작가의 말에 부담감은 내려가고 확신을 올라갔다. 나에게 어려운 책이었지만 다른 이에게는 눈에 쏙쏙 들어오는 흥미진진한 책일 수도 있다. 하지만 나 또한 어려운 책을 몸에 체화시키려 노력하는 과정이 꽤 흥미진진했다. 포기하지 않고 읽어낸 뒤에 얻은 문장들을 돌아보니 이렇게나 쌓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