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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신이 남자를 만들다 변성기를 깜빡하면 [음악]

우타이테 ‘월피스 카터’를 영업합니다

by 이지선 에디터
2025.09.04 17:13

 

 

월피스 카터, 그는 누구인가


 

‘우타이테(歌い手)’라는 개념은 아마 많은 사람에게 생소할 것이다. 하지만 ‘하츠네 미쿠’ 정도는 몇 번 들어봤을 수도 있다. 하츠네 미쿠는 보컬로이드 가수이자 일본 서브컬처를 대표하는 캐릭터 가운데 하나로, 소위 오타쿠가 아닌 일반 대중에게도 인지도가 높다. 여기서 ‘보컬로이드(VOCALOID)’란 일본의 기업 야마하에서 개발한 음성 합성 엔진 프로그램을 말한다. 즉 보컬로이드 가수는 실존 인물이 아니라 보컬로이드를 사용해 만든 음원 라이브러리와 그것의 마스코트 캐릭터를 가리키는 개념이다. 


하지만 오늘날 보컬로이드라는 용어는 프로그램뿐만 아니라 그것을 둘러싼 문화 전반을 아우르는 총칭처럼 쓰이고 있다. 일본의 UCC 커뮤니티 ‘니코니코 동화(ニコニコ動画)’는 본격적인 보컬로이드 문화의 발상지라 할 수 있다. 하츠네 미쿠를 비롯한 보컬로이드 가수들의 오리지널 곡을 제작하는 프로듀서들이 이곳을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지금의 보컬로이드 문화가 자리 잡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 곡들이 인기를 끌다 보니 그것들을 자신의 목소리로 커버하는 사람들이 생겨났는데, 이들이 바로 ‘우타이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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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5 ウォルピス社

 

 

이 글에서 소개할 우타이테 ‘월피스 카터(ウォルピスカーター)’는 중성적인 보이스와 시원한 고음의 뚜렷한 특색을 갖춘 가수다. 닉네임의 유래는 일본의 음료 ‘칼피스 워터(カルピスウォーター)’에서 ‘카’와 ‘워’의 위치를 바꾼 것이며, 투고 영상의 제목을 ‘【ウォルピス社】~を歌ってみました【提供】(【월피스 사】~을(를) 불러보았습니다【제공】)’로 쓰는 관습 때문에 ‘사장’이라는 애칭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전설’이라 불리는 기록을 보유할 만큼 우타이테 가운데서도 이름난 아티스트다. 나는 그가 가진 독보적인 매력이 보컬로이드 문화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충분히 어필될 수 있다고 믿는다. 백문이 불여일견이라 하였으니, 이제부터는 월피스의 노래와 함께 그의 매력을 파헤쳐보기로 한다.

 

 

 

<새벽과 반딧불이(夜明けと蛍)> / n-buna


 

이 글의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성별을 특정하기 어려운 중성적인 음색은 월피스의 아이덴티티 가운데 하나다.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가 인기를 얻기 시작할 무렵에는 이런 특성이 더욱 도드라졌다. 오래 활동한 만큼 그의 음색 변천사에도 몇 차례의 변곡점이 있는데, 지금의 월피스 카터가 소년에 가까운 미성이라면 2014~2015년의 월피스 카터는 남성인지 여성인지 분간이 안 갈 정도의 미성이다.

 

 

 

 

이 시기에 투고한 곡들 가운데 <새벽과 반딧불이(夜明けと蛍)>는 데뷔 후 약 2년간 이어진 그의 무명 생활에 있어 종지부와도 같다. 제목처럼 어스름한 쪽빛의 새벽을 연상시키는 감성적인 선율과 월피스의 호소력 짙은 가성이 맞물려 큰 시너지를 발휘한다. 눈을 감고 들으면 그의 신비로운 음색과 함께 여름밤의 꿈속으로 빠져들어 갈 것만 같다. 가사도 어딘가 곱씹게 되는 아련한 매력이 있어 무척 좋아하는 곡이다.

 

 

朝が来ないままで息が出来たなら

아침이 오지 않은 채로 숨이 쉬어졌다면


遠い遠い夏の向こうへ

멀고 먼 여름 너머로


冷たくない君の手のひらが見えた

차갑지 않은 네 손바닥이 보였어


淡い朝焼けの夜空

엷은 아침놀의 밤하늘

 

 


<천성의 약함(天ノ弱)> / 164


 

이렇게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그의 무명 생활이 2년이나 이어진 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간단히 말해, 못 불렀기 때문이다. 보통 노래 실력은 후천적인 훈련보다는 선천적인 재능으로 좌우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의 경우는 예외라 할 수 있다. 월피스는 치열하고 꾸준한 연습으로 실력을 향상한 노력파 아티스트로 유명하다.

 

 

<천성의 약함(天ノ弱)> ver. 2012

 

 

 <천성의 약함(天ノ弱)> ver. 2021

 

 

월피스는 데뷔곡인 <천성의 약함(天ノ弱)>을 총 4번 투고했는데, 2021년의 첫 번째 투고에서 2021년의 마지막 투고로 이어지는 흐름은 그의 성장 과정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들으면 알 수 있듯 처음에는 음정도 불안하고 기교도 전혀 잡혀있지 않았다. 아마추어 가수라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다. 하지만 2년 사이의 눈부신 성장을 거쳐 가장 최근에 앨범에 수록된 버전을 들어보면 그야말로 혀를 내두를 정도다. 

 

그가 연습에서 특별히 노력을 기울이는 부분은 바로 고음이다. 4옥타브에 육박하는 초고음은 월피스의 트레이드마크 가운데 하나다. 2021년에 발간된 그의 에세이 『자신의 목소리를 힘으로 삼다(自分の声をチカラにする)』에는 지극히 평범한 고등학생이었던 그가 음역을 1옥타브 반이나 높인 보이스 트레이닝 비법이 담겨있다. ‘고음계 남자’가 아닌 ‘고음을 내고 싶은 계열의 남자’라는 자기소개는 더 높은 소리를 내기 위한 그의 노력이 현재진행형임을 보여준다.

 

월피스의 시원한 고음은 록 계열의 강렬한 음악과 무척 잘 어울린다. 그래서인지 그의 커버 목록에는 록 음악으로 유명한 보카로P 164의 작품들이 심심치 않게 등장한다. 월피스의 초기 앨범들에서 오리지널 곡을 작업해 주기도 했다. 개인적으로는 Orangestar와 더불어 그와 가장 강력한 시너지를 발휘하는 프로듀서라고 생각한다.


 

この両手から零れそうなほど

이 양손에서 넘쳐 흐를 정도로


君に貰った愛はどこに捨てよう?

너에게 받은 사랑은 어디에 버릴까?


限りのある消耗品なんて僕は要らないよ

끝이 있는 소모품 따위 나는 필요 없어

 

 

 

[COSMOS] / Aquamarine



 

 

월피스가 워낙 고음으로 유명하다 보니 간과되기 쉽지만, 저음에서의 표현력 역시 상당하다. 저음부터 초고음까지 발성을 자유자재로 변환시키며 부를 수 있다는 그의 장점은 음역의 폭이 넓은 곡에서 힘을 발휘한다. 그 정점이 바로 < COSMOS >다. 이는 그룹 Aquamarine(프로듀서가 아닌 원곡 가수)의 혼성 4부 합창곡으로, 일본의 교내 합창부에서 종종 부르는 노래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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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피스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의 네 파트를 무려 혼자 소화하는 저력을 보여준다. 심지어 아주 자연스럽다. 반짝이는 은하수를 닮은 몽환적인 선율과 동요처럼 순수한 아름다움을 간직한 가사는 그의 여린 미성과 환상적인 조화를 이룬다. 이 놀라운 결과물에 대한 유튜브 댓글들도 인상적이다. 현재 그의 음역은 lowF#, G~hihiD# 정도라고 알려져 있는데, 아직 넓혀가는 중이라니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君の温もりは 宇宙が燃えていた

그대의 따스함은 우주가 불타고 있었던


遠い時代のなごり 君は宇宙

머나먼 시대의 흔적, 그대는 우주

 

 

 

<내일의 밤하늘 초계반(アスノヨゾラ哨戒班)> / Orangestar


  

 

 

<내일의 밤하늘 초계반(アスノヨゾラ哨戒班)>은 그를 니코동의 ‘전설’로 만들어준 대표곡이다. 2015년에 밀리언을 달성한 뒤 현재까지 약 1700만 회의 조회 수를 기록했으며, 2020년 6월 30일에 역대 니코동 ‘불러보았다(우타이테의 투고 카테고리)’ 1위를 달성하며 그야말로 전설이 되었다. 대표곡인 만큼 그의 음악적 특성을 집약하여 보여주는 노래기도 하다. 빠른 템포와 시원한 고음의 경쾌한 조화는 그의 투고 리스트에서 자주 보이는 음악적 특성이다.

 

월피스 카터,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프로듀서인 Orangestar의 음악은 청량한 여름 바다를 닮은 피아노 라인과 밴드 사운드에 기반한 강렬한 비트가 특색이다. 이는 파워풀함과 서늘함을 겸비한 월피스 특유의 창법 및 음색과 최고의 상성을 자랑한다. <공주열차(空奏列車)>, < Alice in 냉동고(Alice in 冷凍庫) > 등 다른 유명한 예들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전설이라 불리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직접 들어보기를 추천한다.


 

空へ舞う世界の彼方

하늘로 흩날리는 세계의 저편


闇を照らす魁星

어둠을 비추는 괴성


『君と僕もさ、また明日へ向かっていこう』

『너도 나도 말이야, 다시 내일을 향해서 가자』

 

 

 

<진흙 속에 피다(泥中に咲く)> / HarryP


 

 

  

<내일의 밤하늘 초계반(アスノヨゾラ哨戒班)>이 니코동의 전설이라면, <진흙 속에 피다(泥中に咲く)>는 월피스의 새로운 전설을 유튜브에서 보여주었다. 무려 1억뷰를 자랑하는 그의 또 다른 대표작이자 이 글에서 소개한 노래들 가운데 유일한 오리지널 곡이다. 높은 음역의 록 음악과 더불어 감성적인 발라드는 아름답고 호소력이 뛰어난 음색을 지닌 월피스가 강세를 보이는 장르다. 

 

월피스의 세련된 비브라토(음을 진동시키는 기법)와 여린 팔세토(남성의 고음 발성), 물 흐르듯 매끄러운 레가토(둘 이상의 음을 부드럽게 연결하는 것)는 발라드의 섬세한 정서를 훌륭하게 담아낸다. 특히 <진흙 속에 피다(泥中に咲く)>의 서정적이면서도 강렬한 가사는 그만의 감성을 통해 더욱 생생한 울림으로 전달된다.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듯 애처롭다가도 포효하듯 삶의 의지를 토로하는 화자의 마음이 큰 감동을 준다.


 

僕は今人間です

나는 지금 인간입니다


今日き明日もその次の日も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 날도


認めるのはそのくらいでいい

인정하는 건 그 정도면 됐어


みんな別々の息を食べてる

모두 제각각의 숨을 삼키고 있어

 

 

 

영업사원의 한 마디



이 밖에도 <출항(抜錨)>, <잊히지 못할 언어(忘れじの言の葉)> 등 월피스의 다른 유명한 커버들과 <例えば、今此処に置かれた花に(예를 들어, 지금 여기 놓인 꽃에)>, <だれかの心臓になれたなら(누군가의 심장이 될 수 있다면)> 등 그의 앨범에서만 만날 수 있는 숨겨진 명곡들을 전부 소개할 수 없어 아쉬울 따름이다. 지나가는 사람마다 붙잡아 앉혀 놓고 하루 종일 그의 노래만 들려주고 싶은 심정이다. 그가 월피스 사의 사장이라면, 나는 영업사원인 셈이다.

 

나는 그의 음악적인 스타일 외에도 인간적인 면모에서 큰 매력을 느낀다. 이미 정상에 가까운 위치에 이르렀음에도 자신을 ‘노래는 잘 못하지만 목소리의 질은 좋다’라고 평가하며 겸손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 ‘고음을 내고 싶은 계열의 남자’라는 별명에서 알 수 있듯 끊임없이 자신의 한계를 돌파해 나가는 모습이 무척 멋지다고 생각한다. SNS나 방송에서는 가벼운 모습을 주로 보여주지만 내면은 단단한 점이 ‘갭모에(반전 매력)’랄까.

 

아쉽게도 그는 라이브 무대에 자주 서는 편은 아니다. 한국에서의 인기에도 불구하고 현재까지 내한한 적도 없다. 하지만 나와 같은 한국 지사 영업사원들의 노력을 통해 국내 팬이 늘어나면 언젠가는 본사 대표님을 가까운 곳에서 만나 뵙게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동안은 여력이 없어 매번 포기했지만 이제는 현지 라이브라도 열린다면 원정을 떠날 생각이긴 하다. 하지만 전설의 우타이테 월피스 카터의 음악은 영상만으로도 나에게 충분한 감동과 용기를 준다. 그의 아름답고 정직한 여정이 오래도록 이어지기를 먼 곳에서나마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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