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pinion] 일본 시티팝과 노스탤지어 [음악]

글 입력 2023.09.13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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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에 대한 동경, 향수를 '노스탤지어'라고 한다. 아마 누구나 마음속에 하나씩 품고 있을 단어일 것이다. 학창 시절은 늘 내가 회기하고 간직하고 싶은 소중한 추억이었다. 치열하지만 비열하지 않아 뿌듯했던 고등학교 생활부터,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초등학생 때 토요일 학교를 마치고 따스한 햇살을 만끽하며 400원짜리 떡꼬치를 사 먹던 나와 친구들의 모습까지.

 

오감이 기억하는 과거의 공기는 잡을 수 없지만 이렇게 선명하다. 하지만 경험해 보지 않은 것에 대한 노스탤지어는 무어라고 설명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런 생각이 들었던 건, 시티팝이라는 음악 장르를 처음 접했을 때였다.

 

시간을 거슬러 정말 더웠던 어느 여름, 집으로 가는 지하철 안에서 우연히 일본 시티팝 음악을 들었다. 제목은 ‘Plastic Love’. 일본의 여성 싱어송라이터 타케우치 마리야가 1984년 발표한 노래다.

 

그때 처음 접했던 이 음악은 처음 듣는 신선한 사운드에 눈을 뜨게 해주었다. 특히 절제된 사운드는 부담스럽지 않아 나 같은 입문자를 사로잡기에 충분했고 잊을 수 없이 포근한 여름을 선사해 줬다. 또 특유의 포근한 분위기와 구름 위를 걷는 듯한 멜로디는 귀로 사탕을 머금은 듯 한참을 음악을 귀로 데굴데굴 굴리며 감상하게 했다.

 

당시 일본의 경제 상황도 노래와 같았다. 80년대 말 전례 없는 경제 호황기를 누렸던 일본은, ‘내일이 없는 오늘 밤’이라는 말이 모든 걸 설명해 주듯, 하루하루가 경제 걱정 없이 누릴 수 있었던 시기였다. 생활상과 문화, 그중에서도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존재처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일본의 경제 호황기, 1980년대 버블 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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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대전 이후 일본은 히로시마 원자폭탄 등 사회 경제 문화적으로 많이 무너진 상태였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연대 및 확립하려는 미국은 전쟁 이후 외면했던 일본에 다시 고개를 돌렸다. 일본 경제 부흥을 도와 공산주의 체제에 맞서는 반공 보루로 만들 속셈이었다.

 

이에 미국은 한국전쟁 몰품을 일본에 맡기게 되고, 샌프란시스코 조약을 통해 일본 국가 안보를 돕는다. 이에 일본은 중화학 공업이 크게 발달하는 등 경제적 기반을 다질 수 있게 된다. 또 국가의 자본을, 세계대전 이후 무너진 산업을 살리는 데에만 온전히 쓸 수 있게 되며 빠른 회복이 가능해졌다.

 

미국에서도 일본의 제품이 큰 인기를 얻어 매출이 증가했는데, 이에 적자 상황을 보게 된 미국은 일본의 시장을 확대해 자품을 더 많이 수출하려 한다. 이에 일본의 금리를 낮춰 사람들이 부담 없이 돈을 빌리고 사용하도록 유도해 시중에 돈이 더 많이 풀어지도록 했다.

 

자연스럽게 일본은 1986년부터 1991년까지 경제 호황기를 누리게 된다. 이 시기를 ‘버블 경제 시대’라고 부른다.


이때는 일본의 도시를 번쩍이는 불빛들이 수놓았던 때였다. 화려함으로 국민들을 비추고 모두가 연예인이 될 수 있었던, 또 모두가 주인공이 될 수 있었던 대형 무대였다. 지상에 내린 천국. 그 시기를 정의해 보자면 이 수식어가 가장 잘 어울리겠다.

 

이런 배경에서 70년대부터 등장한 시티팝 음악이 발달한다. 특정한 장르라기보단, 음악 분위기에 집중한 것으로, 시티팝 노래의 분위기는 천국을 거니는 듯한 여유로움이 특징이다.

 

또 호황기를 누리던 사람들의 화려하면서도 어두운 도시의 밤 모습을 담고 있으며 이면에 가려진 외롭고 쓸쓸한 삶도 음악에서 느낄 수 있다. 특히 비싼 장비들을 활용해 음악을 제작하고, 해외 유명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등 음악에서 부유함이 흐른다. 펑키한 기타, 신시사이저를 중심으로 악기를 편성하고 재즈 코드로 진행하여 도회지의 느낌이 가득하다.

   

하지만, 거품은 금방 터져 사라지듯, 이 달콤했던 시간이 흐른 뒤 일본은 대지진, 규제, 오일쇼크 등을 겪게 된다. 때문에 90년대 초부터 10년 정도를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불리는 극심한 경제 불황기를 맞이한다. 폭풍전야라는 단어와 걸맞게 아마 시티팝 음악을 만들고 즐겼던 사람들은 몇 년 뒤 찾아올 비극을 예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음악에 담긴 그 시절 그들은 오늘만을 사는 사람들처럼 절대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그저 그 순간만을 즐길 뿐이다.

 

 

 

미래를 동경하는 나의 노스탤지어


 

노래가 좋아서 찾아본 배경을 알고 나니, 가보지도, 살아보지도 못한 곳에 대한 향수가 더욱 짙어짐을 느꼈다. 그때만 느낄 수 있는 특유의 세련되고 여유가 넘치는 분위기가 그리운 것이다.

 

어쩐지 그런 음악과 일본 사람들의 모습은, 때때로 힘이 된다. 계절을 막론하고, 지치거나 모든 걸 놓아버리고 싶을 때면, 여유가 넘치던, 또 가장 화려했고 영롱했던 과거를 머릿속으로 그려본다.

 

바쁜 하루 하루를 지내며 마음에서 바라는 여유를 노래에서 찾기 때문일까? 시대적 상황과 음악의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때면, 나도 이 시대의 진정한 주인공이 된 것만 같다. 그런 마음은 다시 적당히 신나는 노래의 템포, 그리고 비슷하게 뛰는 나의 심장박동으로 느껴진다.

 

그렇게 인생의 주인공이 되었다는 힘으로 다음 단계를 밟을 용기를 얻는다.


과거를 동경하는 것이 노스탤지어의 전부인 줄 알았으나, 바라는 미래에 대한 동경도 노스탤지어임을 알게 됐다. 그 노스탤지어를 향해 끝도 없이 뒤로 떠밀려 가는 내일을 채색하고 있다.

 


[박정빈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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